케리 테일러. Kerry Taylor. Photograph by Jonathan Player for The New York Times, June 26th, 2012.
1980년 21세의 나이에 소더비 경매 역사상 최연소 디렉터 자리에 오른 케리 테일러 (Kerry Taylor). 이후 2003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경매사를 시작한 이후 그녀는 패션 경매를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패션 옥션의 대모 케리 테일러에게 패션의 수집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히트했는데 이 드라마 속 의상은 컬렉터로서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정말 재밌게 봤다! 하루만에 다 보느라고 잠을 못 잤다. 첫 시즌에 나온 의상이 중요하다. 감시요원들의 유니폼부터 벽면에 디자인한 도식화 그리고 컬러를 활용한 모든 요소가 정말 특별하다! 서구에선 본 적 없는 완전 새로운 내용과 영상이다. 이건 컬트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내가 제작자라면 다음 시리즈에 새로운 의상을 선보인다고 해도 첫번째 의상들은 모두 자물쇠로 걸어 잠궈 보관해야 한다. 여배우가 입었던 피로 얼룩진 턱시도는 세탁하지 말고 그대로 보관해야 한다! 사실 이건 패션이 아닌 영화의 기념비적인 물품이기 때문에 가치가 상당하다. 첫 게임에 등장한 거대한 인형이나 손을 찌르는 칼 그리고 1번과 456번 유니폼은 정말 특별하니 꼭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옷을 입었던 배역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도 의미 있다. 다음 시즌이 무척 기대되는 시리즈다.
경매가로서 패션 디자이너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디자이너의 경우 지금 동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디자이너 컬렉션을 나에게 갖고 온다면 큰 가치가 없을지 몰라도 그들이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새롭고 흥미로우며 뭔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유의미하다. 한국과 중국인 디자이너들이 색상과 실루엣, 형태를 다르게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힘을 들이지 않고 새로운 걸 창조하는 에너지가 좋다. 아시아의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색을 이용하는 방식과 소재를 사용하는 혁신적인 방법이 놀랍다.
1998년에 만들어진 비비안 웨스트우드조끼와 캡. Time Machine collection AW1988
우린 꽤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패션 아이템들을 공수 받는다. 아직까진 한국에서 공수 받은 아이템은 없다. 예를 들어 존 갈리아노의 런던 라벨이나 크리스챤 디올을 위해 디자인한 룩들이 고가에 경매된다. 경매를 통해 당시 사회상과 역사를 반영하는 스토리가 담긴 패션을 만나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바로 몇일전에 가격대가 높지 않은 웨어러블한 아이템들의 경매를 시작했다. 원하면 직접 와서 혹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비딩한 후 낙찰을 받으면 해외 어디로도 배송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딩할 때 제품에 대한 품질 보고서를 받을 수 있으니 제품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경매 제품은 대형 박물관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이들에게 대부분 해외 배송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네타포르테도 리세일을 시작했고 베스티에르 같은 리세일 플랫폼도 성행 중이다. 빈티지 컬렉션에 대한 경쟁은 어떤가?
우리가 취급하는 경매 아이템은 대부분 몇 해 전 컬렉션이 아니다. 2000년 이전부터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진정한 빈티지 컬렉션으로 구성한다. 물론 이리스 반 헤르펜 (Iris Van Herpen)이나 일본 디자이너 컬렉션 중 무척 특이하고 독특한 아이템이 간혹 경매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쇼 피스나 매우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희귀한 아이템도 경매품으로 흥미롭다. 샤넬이라면 우린 아마 경쟁해야 할 것이다. 샤넬은 그만큼 수요가 높다!
이리스 반 헤르펜의 꾸뛰르 일렉트로닉 블루 아크릴 드레스
박물관이나 경매 사이트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건 제품을 통해 배울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매사는 이런 이야기를 찾고 알려주는 권위를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 우린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걸까?
한국 내 패션 박물관에서 예를 들어 디올 전시 같은 순회전을 열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컬렉션을 공유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뿐 아니라 패션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는 전시가 더 기획된다면 패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기회가 열린다. 예를 들어 1920년대, 30년대, 재즈 세대, 60년대의 글로벌 패션 트렌드는 어땠고 당시 한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함께 보여줄 전시가 열린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많은 이들이 아카이브의 중요성이나 필요에 대해 뒤늦게 인지하는게 현실인데, 우린 어떤 걸 보관해야 하는 걸까?
크리스챤 디올, 랑방, 발렌티노 같은 빅 하우스들은 모두 아카이브를 보관하며 그것에서 끊임없이 영감 받고 새롭게 재해석하며 컬렉션을 제작한다. 패션 시장 안에 그들이 진지한 위치를 갖게 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존 갈리아노 같은 브랜드는 초창기 아카이브가 거의 없어 컬렉션이 종종 우리에게 들어오기도 한다. 반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보관하는 영 디자이너들은 그 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덕인다. 그들에게 하는 조언은 모든 룩을 소장하지 말고 그 중 하이라이트를 선정해 보관하라는 것이다. 반면 각종 디지털 기록과 룩북, 영상 등은 모두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셀레브리티에게 대여해 시상식이나 무대 위에 올라 사진으로 기록이 남은 룩은 남다른 가치가 있다. 최근 디자이너 렌 스콧의 아카이브 컬렉션 경매를 했는데 주로 레드카펫 룩들이었다. 40년대에 영감 받은 그녀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아마도 기본 152파운드에서 많아야 1천 파운드 가치일텐데 마돈나가 입었기 때문에 2만5천 파운드에 낙찰됐다. 다이애나 비가 존 트라볼타와 백악관에서 춤출 때 입었던 블랙 드레스는 20만 파운드에 경매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