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 1967.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올해 앤디 워홀의 대형 전시가 두 번 열렸다. 매해 돌아오는 프로야구 시즌 같다. 심드렁하다가도 막상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앤디 워홀 전시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와 커다란 캠벨 수프 기둥 앞에서 V자를 그리지 않은 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실크스크린과 폴라로이드로 찍어낸 그의 작품은 방대하고 수북하다. 코카콜라, 매릴린 먼로, 꽃처럼 전시의 단골 레퍼토리는 순서를 바꿔가며 관객을 찾는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10월 벽두에 열리는 《앤디 워홀: 앤디를 찾아서》전은 온통 얼굴뿐이다. “미래에는 누구든 15분 동안 유명인사가 될 것이다”라고 빠른 예언을 그리고 또 빠른 실행을 한 앤디 워홀. 6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얼굴을 촬영해 매번 높은 값을 갱신하며 팔아치운 그의 자화상 시리즈를 모았다. 다른 초상화 작품도 전시되지만 1963년 초기 시리즈에서부터 1986년 제작된 후기 사진까지 자화상의 연대기를 되짚어보려 한다. 자화상 작품들은 소위 그의 생애 가운데 특정 시기를 묘사하거나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평범한 포토 부스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이후 다양한 형식, 색채와 포즈로 변화를 줌으로써 방대한 컬렉션을 이루는 캐릭터들로 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화상 작품 속 워홀은 짙은 색의 커다란 안경 뒤 모습을 가린 채 등장하는가 하면 자신이 직접 고른 배경색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가며 출현하기도 한다. 이후 1980년대 초 워홀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매개로 스스로를 남성과 여성의 모습으로 동시에 묘사하며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다루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드래그 퀸(Drag Queen) 역할을 자청해 진한 화장을 한 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사진가 크리스토퍼 마코스(Christopher Makos)와의 협업으로 자신을 다양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워홀이 1987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제작한 초상화는 유령 같은 얼굴로 관람객을 관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은 워홀의 불멸성이 시야에 포착되듯 강렬함을 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앤디 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저와 제 페인팅, 영화의 표면을 보면 됩니다. 그곳에 제가 존재할 뿐, 이면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 형식과 기법으로 연출된 장면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앤디 워홀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 여정에서 그를 만나거나 아닐 수도 있다.
앤디 워홀이 1960년대 작업한 세 개의 자화상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에서 시선을 돌리고 자신감 있으면서도 침착하다 못해 절제된 자세로 손을 입 가까이 갖다 댄 워홀은 본 자화상에서 유명인사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진지하고 침착하면서도 매혹적인, 다양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작가와 관람객의 대조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그리고 오히려 이를 통해 가까움과 무관심을 통합하는 예술가의 전형적인 형상을 구현하고 있다.
〈Self-Portrait〉, 1978.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동일한 크기의 사각 판형 자화상 4점으로 구성된 폴립티크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 3장이 겹쳐진 형식의 이 작품은 앤디 워홀이 스냅샷으로 촬영한 하나의 사진을 기반으로, 중심점에서 약간 비껴난 위치에 사진을 차례로 덮어씌워 미묘하게 그의 머리가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얼굴의 4분의 3 지점까지 보이는 첫 번째 사진에서 워홀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를 향하고 있다. 두 번째 사진에서 그는 측면을 보고 있으며, 마지막 사진은 그의 옆모습이나 다름없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세 개의 얼굴이 겹쳐진 자화상에서 워홀의 형상은 서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지된다. 본 작품은 워홀이 회화, 사진 실크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혼합해 제작했다는 점에서 워홀이 다루어온 자화상 작업과 구분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Self-Portrait〉, 1986 – detail.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다른 자화상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워홀의 목이나 어깨가 드러나지 않으며, 얼굴만 희미하게 클로즈업된 형태로 프레임 전체를 채운다. 몸에서 분리된 채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은 데스 마스크처럼 공중에 떠 있다. 헝클어진 은발이 곤두세워진 가발을 쓴 워홀은 공허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늙어가는 자신을 관조적이지만 강렬한 느낌으로 표현한 형상에서 작가의 뒤엉킨 절망과 고뇌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거대한 판형이 극적인 효과를 증폭시키듯이 얼굴을 덮은 강렬한 보라색은 슬픈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Self-Portraits in Drag〉, 1980-1982.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Self-Portraits〉, 1977-1986.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1977년부터 1986년에 걸쳐 촬영한 폴라컬러(Polacolor) 시리즈 작품 속 앤디 워홀은 스스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띤 분장을 한 모델이 되었다. 미국 출신의 사진가 크리스토퍼 마코스와의 협업을 통해 직접 여장을 하고 드래그 퀸의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워홀은 할리우드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와 같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표현된다. 진한 화장을 하고 카메라 렌즈를 응시한 극적 효과는 모델이 가진 연약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The Shadow〉, 1981.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Self-Portrait in a Fright Wig〉, 1986.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 Primae / Louis Bourjac.
〈The Shadow〉 작품에서 1931년 출간된 발터 B. 깁슨(Walter B. Gibson)의 통속 소설에서 범죄와 싸우는 허구적 캐릭터 ‘섀도(Shadow)’ 역할을 취했다. 워홀은 실체가 없으며, 빛이 통과할 수도 없는 그림자의 모티프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그림자의 속성은 자신의 작품이 갖는 모호함을 반영해주었고 또 다른 작품 〈Shadows〉(1979)이라 명한 수수께끼 같은 시리즈를 통해 이미 수년 전부터 그림자를 깊이 연구한 바 있었다. 그가 사망하기 일 년 전인 1986년, 그의 마지막 자화상 중 한 점에서 워홀은 산발한 가발과 선글라스를 끼고 마치 유령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소장품전 《앤디 워홀: 앤디를 찾아서》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10월 1일부터 2022년 2월 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