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예멘 최초의 여자 사진가가 말하는 히잡의 의미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이 재집권하던 날, 거리의 벽에서부터 여자의 모습은 지워졌다.

BY박의령2021.1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Boushra Almutawakel, 〈Mother, Daughter, Doll〉, 2010.
예멘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일부를 미국에서 생활했다. 극적으로 다른 문화권에서의 경험이 사진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예멘의 사나에서 태어났고 1976년 6살 때 가족과 함께 처음 미국에 갔다. 워싱턴 DC에서 거의 6년 동안 살았는데 정말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미국을 오가다 결국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의 생활, 문화, 교육 등의 경험은 나의 아주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나의 조국인 예멘의 문화, 언어, 종교, 가족, 예멘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내 세계를 더 넓고 포괄적인 방법으로 항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동서양의 두 가지 면을 보면서 각 문화의 고정관념, 규범, 관점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예멘 최초의 여성 사진작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진작가가 꿈은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는 동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25가지 일을 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진을 배우는 것이었다. 여름방학 선택 과목인 흑백사진 기초 수업에 등록했다. 첫 흑백사진을 현상한 후 그 이미지가 마법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고 넋을 잃었다. 즉시 사랑에 빠졌다! 학위를 마치고 사나로 돌아와 한 아티스트 그룹에 가입하고 그룹 전시를 했는데 내가 유일한 사진가였다.(웃음) 집에 나만의 암실을 만들고 다른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알할라카(Al Halaqa)를 설립해 예술가를 모았다. 예술가를 지원하고, 워크숍을 열고, 매달 전시회를 열고, 스튜디오 공간을 제공했다. 사람들이 점차 내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사진 의뢰를 받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1998년 사나 대학의 여성학 센터장이었던 라우파 하산 박사(Dr. Raufa Hasan)는 자전거를 탄 최초의 여성, 최초의 조종사, 최초의 간호사, 최초의 의사 등 예멘 여성 개척자들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다. 그때 예멘 최초 여성 사진작가의 영예를 안았다.
 
Boushra Almutawakel, 〈Where Can I Find from My Own Mind??〉, 2021.

Boushra Almutawakel, 〈Where Can I Find from My Own Mind??〉, 2021.

밀레니엄 직전에 처음으로 여성 사진작가가 명명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예멘의 예술계에서 여성 창작자의 위치나 작업 여건은 어떤가? 
1994년 예멘에서 사진을 시작했을 때 사진가는 사진기자나 풍경과 관광지 사진을 찍는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여자인 데다 예술사진을 했으니. 당시에는 여성 사진작가의 지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역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다양한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더 많은 전시회와 더 많은 노출이 필요하다. 정치적 불안정, 전기와 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 경제적인 어려움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공공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제한적이다. 문화적, 종교적 경계에 대한 지역 규범 때문에 여성이 사진을 찍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수상하게 보이는 현 정치 상황도 그렇다. 그럼에도 멋진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 지면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싶다. Eman Alawami, Amira and Hayat Sharif, Asiya Alsharabi, Thana Farouq, Somaya, Shaima, Yumna Alarashi, Sarah Ishaq, Rooj Alwazir, Maha Senan, Bushra Alfusail.
 
처음 찍은 사진을 기억하는가? 
여름방학 사진 강의를 듣고 있던 때. 여성 헬스장에서 일하는 개인 트레이너를 찍었다. 결과물은 엉망이었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 관찰하고 궁금해한 것,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화난 일, 여성이 겪는 문제와 여성의 신체에 대해 찍은 경험은 행복했다. 그 이후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순간과 사람을 찍는 맥락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Boushra Almutawakel, 〈Magical Twins in the Land of Mania〉, 2021.

Boushra Almutawakel, 〈Magical Twins in the Land of Mania〉, 2021.

히잡을 예술적 매개체로 적극적으로 쓴 일은 보기 드물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히잡은 복잡다단한 물건일 것 같다. 당신에게는 어떠한가? 
사실 히잡 같은 머리 덮개는 아시아와 서구 사회에서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고, 그들의 예술에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성모마리아. 여성의 베일이나 머리 스카프는 이슬람 문화에 앞서 유대 기독교 시대부터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슬람 또는 아랍의 관습이라고만 생각한다. 사우디에선 남성들이 머리와 얼굴을 가리는 전통 의상을 입는다. 이슬람 여성으로서 예멘에서 성장해 살았고 히잡을 직접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 주제를 대할 때 복잡한 감정이 든다. 히잡 자체를 흑백 논리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히잡을 쓰는 건 의무이자 헌신 그리고 정체성의 한 형태가 되거나 실용적인 방편이 될 때도 있다. 니캅 역시 본인은 모든 사람을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본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되려 강력하다고 느끼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선택은 여성 스스로가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남성인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착용을 강요한다. 그들은 여성이 입는 옷 따위는 내버려두고 가난, 건강, 교육, 고용, 경제, 양성평등, 폭력, 투명성, 정직, 자애와 같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히잡은 무조건 검은색도 아니고 분명히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이슬람 복식에는 신체를 드러내지 않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것이 어떤 이름이며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다. 당신의 사진에서도 어떤 시리즈는 아름다움을, 어떤 시리즈는 공포와 폭력성을 담았다. 
어린 소녀들이 검은 니캅을 입은 걸 봤다. 심지어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들도 있었다. 검은 덮개로 가리는 현상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브 운동(Wahhabisim, 이슬람교 복고주의)의 확산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경악했다. 예멘의 어떤 지역은 드레스와 화려한 베일을 걸쳤고 어떤 지역은 얼굴을 아예 가리지 않았다. 보수주의나 극단주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여성이 밖에서 입는 겉옷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는 점점 더 검은 천과 검은 장갑으로 덮여가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도 남성들은 계속 쳐다보고, 논평하고, 괴롭힌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남성들이 그들의 성적 욕구를 억누를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남성들은 이슬람교가 가르치는 대로 자신을 통제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비단 이슬람 세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Boushra Almutawakel, 〈Keeping It Together in La La Land 2〉, 2021.

Boushra Almutawakel, 〈Keeping It Together in La La Land 2〉, 2021.

〈Mother, Daughter, Doll〉 시리즈에서 엄마와 딸, 인형마저 검은 복장으로 인해 사라지고 만다. 피사체는 바로 당신과 딸이다. 
내 딸 셰이든이 여섯 살일 때 찍었다. 그 당시에는 어떤 예멘 여성도 소셜미디어에 공유되거나 갤러리에 전시되는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불안을 충분히 이해했다. 내 사진에 출연해 비판, 거부, 안전의 위험을 감수하라고 하려면 내가 먼저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이 함께한 것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가족의 반응마저도. 여러 걱정이 있었지만 우리가 함께한 사진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중요한 것은 네 명의 딸과 함께 일하고 그들을 찍는 것이 엄마이자 작가로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풀라(Fulla)’라는 인형까지. 당신의 작업은 ‘여자’의 여러 모습에 초점이 맞춰 있다. 여성을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마냥 당연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풀라’는 이슬람 버전의 바비인형 같은 존재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하얗고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풀라를 만났을 때 나처럼 생긴 인형을 보게 돼 좋았다. 소녀들이 인형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소녀는 억압받고, 무력하고, 교육받지 못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 출신으로서 예멘 여성과 소녀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가족, 친구, 심지어 외딴 마을의 아는 사람중에서) 그들은 강하고, 재치 있고, 근면하고, 지혜롭고, 독립적이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풀라 인형을 사용하여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도전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말을 용감하게 하는 것과 정직해지는 것, 그리고 예술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과 딸들을 위해 용감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Boushra Almutawakel, 〈What If...?〉, 2008.
〈What If…?〉에서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전복되는 작업은 많은 경종을 울렸다. 세상이 정말 그랬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해봤을 것이다. 
나는 항상 내 인생과 세상에 대해 많은 ‘if(만약)’를 떠올려본다. 만약 남자들이 9개월 동안 임신을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젖을 먹인다면?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생활을 미룬다면? 아내가 일하러 가는 동안 집에서 일한다면? 아내와 같이 집안일을 동등하게 한다면?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되고, 여자들보다 낮은 지위로 인식된다면? 여자 CEO, 대통령, 세계 지도자들이 더 많다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을 물려받았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What If’가 너무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리즈는 판타지에 가깝다.
 
특히 〈What If…?〉를 발표하고 많은 남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런 반응들이 작업에 위험 요소로 작용했나? 
작품을 전시하거나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 바로 직전까지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첫 번째 두려움은 항상 “나의 가족은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그들을 화나게 하지 않을까? 다치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는 신앙심이 깊고 편협한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게 된다. 자주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혹하고 혐오스러운 댓글을 받는다. 또한 이슬람 공포증을 지지하기 위해 내 작업을 남용하는 서구 우익 인종주의자들의 반응도 염려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이 나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제쳐두고 예술과 일을 하는 법을 배웠고, 어떠한 일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웠다.
 
Boushra Almutawakel, 〈Fulla-The Look V〉, 2010.

Boushra Almutawakel, 〈Fulla-The Look V〉, 2010.

이슬람 문화를 혐오하는 다른 세계의 반응 또한 작업자로서 넘어야 할 큰 산으로 보인다. 
일단 내 작업이 인종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것은 기쁘다. 특히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정세 때문에 작업이 더 널리 알려지고 있다. 〈Mother, Daughter, Doll〉이 한 남성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25만5천 번 이상 공유되었는데 제목도 틀렸고 이란 작가로 표기되어 있었다. 내 이미지는 대부분 백인이 공유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제국주의적이고 우월하며 구세주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와 나의 작업을 잘못 전달했다. “탈레반에 의해 억압받는 이 불쌍한 여성들을 보세요. 우리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이러면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그리고 나의 고향 예멘에서 서방 국가들이 자행하고 있는 모든 잔혹 행위와 인권 침해에 대한 격렬한 항의는 없다. 사람들의 무지가 솔직히 걱정스럽다. 언론과 세계 지도부가 부추기는 무지. 서방 세계가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어린이, 남성들을 폭격하고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탈레반과 다른 극단주의 단체들이 형성되는 것을 돕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 사회는 지금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불안한 정세나 상황 속에서 꾸준히 작품으로 항변하며 메시지를 지키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사진기자나 정치인이 아닌 아티스트다. 나 자신과 내게 중요한 주제와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여성, 편협, 불평등, 부당함, 정신 건강, 자기 사랑, 예멘 문화와 패션, 아름다움 등. 처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정말 행복하게 놀랐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다르지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나의 작업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그것이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고 논쟁과 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나는 내 일을 한 거다.
 
Boushra Almutawakel, 〈Fulla-Prayer (Salah)〉, 2010.

Boushra Almutawakel, 〈Fulla-Prayer (Salah)〉, 2010.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그곳에서 사진가로서의 삶은 어떤가? 
2013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사했고, 2019년에는 다시 두바이로 이사했다. 파리에서는 거의 사진을 찍거나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힘든 시간이었다. 서툰 프랑스어로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고 예멘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2016년 즈음 조울증을 진단받았다. 현재 나는 정신 질환과 건강에 관한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규범을 공유하고, 파괴하고, 도전하기 위해서다. 두바이에 살면서 레지던시 생활을 했다. 이 경험이 나를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갤러리 공간, 월별 전시물, 대형 인쇄물 제작 스튜디오, 사진 스튜디오, 암실, 보석 제작 스튜디오, 디지털, 바느질, 실크 스크린 프린팅, 예술가의 개별 스튜디오! 나는 이곳에서 사랑을 느끼고 지지와 영감을 얻는다. 내 고향 사나에 있는 알할라카 하우스가 생각난다. 언젠가 예멘에 비슷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아프간 여성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내 마음과 생각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가 있다. 그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무서운 일이지만 그들은 싸웠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강하고 유능하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지도자들, 언론들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무엇을 원하고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자신뿐이다.

Keyword

Credit

  • 에디터/ 박의령
  • 번역/ 백세리
  • 사진/ Boushra Almutawakel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