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힐의 빈티지 보물 창고로 불리우는 렐릭 (Rellik). 통유리 외관에 간결하게 진열된 빈티지 컬렉션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매장은 포토벨로 시장과 좀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인터뷰를 위해 메자닌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오너 피오나 스튜어트 (Fiona Stuart)와 앉아 한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동안 매장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다. 단골 고객이자 컬렉터인 한 여인이 들어와 70년대 미국 삭스 백화점에서 팔던 사탕색의 예쁜 란제리 슬립과 속옷 세트들을 봉투에서 꺼냈고 피오나는 안경을 끼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그 자리에서 승낙의 사인을 보낸다. 제품들은 곧 세탁을 거쳐 진열될 예정이고 단골 고객은 매장 크레딧을 얻게 된다. 조금 후에는 배우의 새로운 작품을 맡게 된 스타일리스트가 벨을 누르고 매장에 들어서더니 이내 프린트로 유명한 실리아 버트웰 (Celia Birtwell)과 70년대를 풍미한 비바 (Biba)의 드레스 두 개를 시작으로 셀렉션을 구성했다. 이어지는 고객들의 방문에도 피오나는 인터뷰를 이어갔고 적절한 한마디 한마디를 던지며 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대처해 나갔다. 렐릭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매장 방문은 처음인 오늘 이 모든 경험을 온전하게 흡수하며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렐릭의 처음 시작부터 소개해달라. 케이트 모스부터 시작해 많은 패션 베스트 드레서들이 렐릭을 애정하는 매장으로 꼽는다.
숍은 1999년부터 이곳에서 시작했다. 그에 앞서 5년전부터 빈티지 시장에서 팔다가 이곳에 매장을 오픈할 당시에는 빈티지 숍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가 초창기 매장 중 하나다. 오픈한 첫날이 마침 고스트 (Ghost) 디자이너의 샘플 세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매출을 올려줬다. 시작이 좋았다. 처음에는 3명이 시작했는데 스티븐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남성복을 클레어는 영국 팝 (Brit Pop) 컬렉션을 많이 소개해주며 정말 재밌었다. 당시에는 리폼 작업도 많이 했는데 최근 그게 다시 유행으로 돌아오더라.
패션은 역시 돌고 도니까, 게다가 빈티지 패션이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화두다!
맞다. 렐릭에도 패션 피플2세들이 많이 온다. 그들은 중고 패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패션으로 소화는 능력이 있다. 또 빈티지 패션을 입었을 때의 특별함을 잘 안다. 특히 샤넬이나 이브생로랑 등 특정 브랜드에 이끌리지 않고 쿨한 패션을 찾는데 캐런 밀렌 (Karen Millen)이나 쿠카이 (Kookai) 같은 하이스트릿 패션 브랜드를 중고로 사기도 한다! 우리 매장에는 이런 제품을 취급 안하지만 디폽 (Depop)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Y2K 패션으로 대변되는 카고 팬츠와 크롭 톱 등 정말 신선하다!
이곳은 매장을 알고 방문하는 단골 고객 위주일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는 편인가?
코비드 이전에는 렐릭을 찾아 여행 오는 이들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맡은 스타일리스트나 패션 학생들, 퍼스널 쇼퍼, 컬렉터 등 다양하다. 셀러들도 찾는다. 빈티지 컬렉션으로 알려진 덕에 정말 놀라운 제품들이 우리 손에 들어올 때가 많다.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가장 큰 재미다!
Vivienne Westwood Bondage Boots
Celine Wooden Block Sandals
빈티지 컬렉션을 판다는 건 패션 역사에 남다른 깊이와 조예를 요구할 것 같은데?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다. 한 여인은 매거진에서 본 드레스를 구입했는데 이후 매거진과 함께 보관하다 우리에게 넘겨 지금 아래 함께 진열되어 있다. 사람마다 다른 취향을 그들의 옷장을 통해 보는 건 정말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다! 디자이너들의 컬렉션도 흥미롭고 도버 스트릿 마켓처럼 남성복이 잘 큐레이팅 된 공간을 보는 것도 좋다. 크레그 그린 (Craig Green)의 캣워크 쇼를 보며 다음 시즌에 어떤 룩을 진열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도 한다!
70년대 룩 중에서 긴 기장의 섹시한 크레이프 소재 드레스는 늘 잘 팔린다. 이브 생 로랑이나 오지 클락 등의 클래식한 아이템은 보면 바로 구입해서 매장에 진열한다. 바로 팔리는 의외의 룩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최근에는 끌로에 중에서도 스텔라 맥카트니 시절 컬렉션이 흥미롭다. 매장에서 산 후 사진이 찍혀 유명해진 끌로에 톱도 있다! 셀린은 언제나 잘 팔리고 특히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 같이 좋은 브랜드다. 사람들은 여전히 피비 파일로 시대 옷을 좋아한다. 80년대 모스키노나 알라이야도 늘 호응이 좋다.
Vivienne Westwood Corset Dress
70's Thea Porter Ikat Kaftan
새로운 걸 발견하는게 빈티지의 묘미일 것 같다!
항상 그렇다. 게다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좋아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15년전에 누가 장 폴 고티에 매쉬 컬렉션이 이렇게 히트 칠거라고 예상했을까? 지금은 없어서 못 산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꽂힌 것 말고, 다른걸 찾고 싶은 흥미도 유발되는데?
그게 진정한 묘미이자 내가 할 일이다. 아직 좋아하지 않는걸 찾는 것! 정말 좋은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늘 새롭게 연마된다. 이세이 미야케도 그런 디자이너 중 하나다. 늘 더 나은 버전이고 더 좋은 룩을 만들 줄 안다.
빈티지 비즈니스도 변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20년은 되어야 빈티지라고 할 수 있었는데 2년된 릭 오웬 헤드 스카프도 바로 팔린다. 스타일리스트들이 특히 열광한다. 시즌이 지난 아이템들을 누군가가 찾는다는 건 무척 특별한 일이다. 시즌 이후 사라지는 제품들도 많으니까.
이젠 디자이너들도 빈티지를 매장에서 판다. 예를 들어 더 로우는 갤러리 작품처럼 애정하는 빈티지 아카이브를 매장에서 팔았는데 그런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미있고 타당하다! 누군가가 제품에 조명을 더하는 건 늘 특별한 일이다. 시즌이 지난 제품을 할인해 팔다가 이후에 다시 가격을 올리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 비오네 (Vionnet) 컬렉션처럼 박물관 소장품 단계인 옷들도 있고, 컬렉션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옷 보관에 대한 어려움도 많다. 보관 팁이 있다면?
한동안 안 입은 옷이 옷장 사이 스며드는 햇빛에 그을러 변색이 될 수 있다. 보관 중인 옷을 가끔씩 살펴보는게 중요하다. 드라이 클리닝할 때 받는 비닐 커버로 씌워만 놔도 큰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옷장 아래 낮은 곳에 보관하면 좀 벌레 습격을 그나마 좀 피할 수 있고 오래 보관하는 옷은 걸어 놓는 것 보다 접어서 트렁크 안에 티슈 페이퍼로 싸서 넣어 놓는게 좋다.
내 옷장 속 지금 이건 꼭 남겨둬야 할 특정 스타일이 있다면 뭘까?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누구도 모른다. 90년대에 소수의 패션 피플들에게 멤버쉽으로 운영했던 보야쥐 (Voyage)가 이렇게 가치 있는 컬렉션이 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당시 빈티지 제품을 수선하거나 재단하고 리폼해 제작한 컬렉션 중 정말 잘 만든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스타일이기 때문에 엄청난 수요가 있다. 시간과 공을 들여 수공 제작한 리폼 컬렉션이 더 성행할 거라고 예상한다!
빈티지와 중고 쇼핑이 떠오르는 지금 시대에 자신만의 보물을 찾는 팁이 있다면?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면 매장에 직접 가서 입어 보면서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찾는 걸 추천한다. 쇼핑은 본능적이라서 개인 취향이 중요하다! 온라인 쇼핑은 사진과 설명에 좌우되니 어려울 수 있다. 셀러에게 사진을 더 요청하거나 질문을 이어가는게 좋다. 렐릭에 오는 이들에게는 먼저 매장을 둘러보라고 권한다. 처음에 원했던 것과 다른걸 찾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과정이다.
렐릭 매장 안에 머천다이징은 어떻게 구성하는 편인가?
첫번째 룩을 정한 후 분위기를 맞춰 진열한다. 예를 들어 겨울, 파티, 캐쥬얼 등 룩에 따라 섹션을 구성하는 편이다.
해외에서 렐릭을 이용하고 싶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온라인 매장을 확인하거나 화상 컨설팅도 가능하다. 이메일로 원하는 스타일을 요청하면 그에 맞춰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대여도 시작했으니 매장에서 제품을 해외로 보내 대여 기간 후 돌려 보내거나 구입을 원하는 경우 대여비를 제하고 정산이 가능하다.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매장이 아카이브지만 판매를 위한 곳이기 때문에 나의 소장품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산 로베르토 카발리 (Roberto Cavalli) 코트나 푸치 (Pucci) 드레스처럼 절대 팔고 싶지 않은 개인 소장품 소수는 집에 두고 있다. 하지만 나의 열정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최애 아이템을 찾는 것이다. 빈티지는 최신 트렌드나 디자이너 이름을 쫓는게 아니라 나만 입는 특별한 룩이라 그런 재미에 빠지게 된다.
꾸레즈 처럼 부활되는 브랜드를 보는 소감은 어떤가?
꾸레즈 제품들 몇 개가 진열되어 있는데 무척 단정한 레이디 라이크 룩이고 두꺼운 울에 안감 있는 80년대 컬렉션이라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다. 60년대 옷은 십대 소녀가 드레스업하는 무드의 단아한 옷들이라 팔기 쉽지 않다. 60년대는 미니 스커트가 혁명적이었던 시대라 힙한 룩인 메리 콴트 (Mary Quant) 컬렉션도 무척 여성스럽다.
쿨한 바지와 톱 처럼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끌로에 (Chloe)도 좋고 스텔라 맥카트니나 피비 파일로 룩을 찾는 중이다. 피비의 귀환으로 모두가 들떠 있다. 셀린은 정말 클래식하고 발렌시아가도 늘 찾는 아이템이다. 1998년 미우미우나 구멍 뚫린 페브릭의 스포티한 프라다는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