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구본창의 백자는 달에 피고 지고

무욕의 아름다움을 담은 구본창의 달항아리는 우연과 필연, 피고 지는 인연의 질서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백자라는 필연적 선택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구본창의 삶이 있었다.

BYBAZAAR2021.07.11
 
 
〈Moon Rising III〉, 2004-2006, Archival pigment print, 100.0x80.0cm each. ⓒ Koo Bohnchang

〈Moon Rising III〉, 2004-2006, Archival pigment print, 100.0x80.0cm each. ⓒ Koo Bohnchang

 
구본창 작가의 사진집 〈White Vessels〉(2015) 중에서도 특히 한정판은 다채로운 백자의 존재를 담고 있는 데다, 백금 인화한 사진이 무려 13장이나 포함된 귀한 책이다. 특히 첫 페이지에 세계지도가 등장한다는 점이 퍽 인상적인데, 천상의 존재처럼 내려앉은 백자들이 간직한 사연과 생기, 즉 실존의 감동을 실감할 수 있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지도 위의 각 대륙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무수한 선들은 지난 2004년부터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백자를 찾아다닌 그의 여정이자 길 위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예술가의 의지와 성심이 그려낸 문화인류학적 증언이나 다름없다. 그가 백자 촬영을 위해 다닌 박물관만 해도 스무 군데 가까이 되는 데다, 소장가들의 개인 공간에도 부지런히 방문했으며, 그마저도 한 번에 그치는 일은 잘 없었다. 지난 1989년 젊은 사진작가 구본창이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와 달항아리가 함께 찍힌 옛 사진을 보며 “시간에 베인 자국과 이국 땅에 떨어진 서글픔을 무방비로 드러내는 백자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순간에도, 그로부터 15년 후 교토 고려미술관에 촬영허가를 청하는 간곡한 편지를 보낸 끝에 드디어 소담한 백자 사발을 처음 찍은 크리스마스 날에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백자의 시간은 여전히 구본창의 작업인생 한가운데서 의미 있는 인과관계를 탄생시키고 있다.
 
백자에서 기인한 우연과 필연의 행보는 늘 흥미로운 인연으로 귀결되었지만, 최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에서 전해온 낭보는 더욱 각별하다. 백자 중에서도 가치와 미학을 가장 높이 인정받아온 달항아리 연작 〈Moon Rising III〉(2004-2006) 12점과 분홍빛의 작품 〈AAM 01〉(2011)이 적도 너머 호주의 대표 미술관에 영구 소장된 것이다. 특히 달항아리 연작은 그 소담한 이름에서 착안해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형상을 12단계로 표현한 대작인데, 인류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담은 달항아리는 과학으로도 온전히 해석되지 않는 달의 존재만큼 무한히 신비롭다. 예의 달항아리 작품들은 내년에 완공될 해당 미술관의 새 공간에서 선보인다. 놀랍게도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6작품으로 추려 선보였을 뿐, 한국에서 전작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그 이유가 단순히 12작품 전부를 보여주려면 15미터나 되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식은 지난한 세월을 거쳐 화양연화를 맞이한 달항아리라는 문화, 묵묵히 한 길을 달려온 구본창이라는 사진작가, 이렇다 할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예술로서의 한국현대사진 역사에 공히 적용할 수 있는 격려다.
 
〈AAM 01〉, 2011, C-print, 154.0x123.0cm image; 197.0x158.0cm sheet. ⓒ Koo Bohnchang

〈AAM 01〉, 2011, C-print, 154.0x123.0cm image; 197.0x158.0cm sheet. ⓒ Koo Bohnchang

 
“꿈인가 생시인가 했을 정도였어요.(웃음) 이번 소식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자 보답이에요. 제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된 건 여러 번이지만 이런 규모는 한국 현대사진 역사를 봐도 처음인 것 같아요. 그동안 백자 작업이 세상에 알려진 후 조명받지 못했던 백자가 국내외에서 널리 회자되고, 연구되고, 예술작품으로 다뤄지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큰 보람이었어요. 처음엔 느닷없이 왜 도자기를 찍느냐는 질문도 많았고,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 이유와 명분을 늘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작가로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놓치고 있는 고유한 가치, 간직하거나 유지해야 하는 미의식을 구현하는 일에 의미를 둬요. 현재를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나 할까요. 백자 작업을 완전히 끝낸 건 아니지만, 그간의 작업이 터닝포인트를 통해 일단락되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결국은 백자, 특히 달항아리 작업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군요.”
 
호주의 미술평론가인 존 맥도널드(John McDonald)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의 지면에 달항아리 연작을 대서특필한 바 있다(2020년 9월 11일). 그는 이번 소장이 발표되기 전 이미 지난해 8월 주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 «Light Shadow»의 전시 서문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구본창의 호주 첫 개인전이었다. “조선백자를 찾아 사진을 찍으려는 구본창의 탐구는 그를 세계 도처로 이끌었으며, 이는 한국의 보물들이 지난 세기 동안 얼마나 광범위하게 흩어져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특히 독특한 달항아리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구본창은 그것들의 위품과 소박함에 감동받았다. 모든 사소한 요소들이 백자를 둘러싼 오라를 형성한다. 우리는 미세한 얼룩과 결함 같은 불완전함에도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이번 전시는 ‘보이는 것만이 믿을 수 있는 것(seeing is believing)’이 아닌, 그 반대가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뒤섞인다. 구본창은 실체가 있는 것과 표현해낼 수 없는 것, 즉 물리적 대상과 그 대상이 내뿜는 ‘오라’를 사진 속에 담는 불가능한 작업을 수행해냈다. 놀라운 건 그가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이다.”
 
작품 〈AAM 01〉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지만, 〈Moon Rising III〉는 각기 다른 백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색과 빛의 농도는 물론 형태도 리드미컬하게 변주된다는 게 특징이다. 달처럼 소리 없이 피고 지는 말간 사진 속에는 여럿의 그림자가 서린다. 술 한잔 걸친 날이면 달항아리를 끌어안고 “달이 뜬다”고 흥얼거리면서 춤췄다는 김환기도 있고, 그의 절친이자 달항아리의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애쓴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도 있다. 이들이 ‘백자대호(白磁大壺)’라는 웅장한 이름 대신 ‘달항아리’이라 부르며 예찬했던 건 불완전함의 비애가 아니라 미학, 위대함이 아니라 평범함, 동시에 삶의 비정형성을 인정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물론 구본창의 백자가 이뤄낸 사진기술적 성과, 이를테면 백자와 배경의 윤곽을 절묘하게 흐림으로써 공기감을 부여한다거나, 빛과 그림자를 섬세하게 다루어 순백색의 온기를 전달한다거나,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적 이미지를 자아낸다거나, 인물 초상의 느낌을 연출하는 등의 시도는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물질적 형태에 형이상학적 차원을 부여한다”는 맥도널드의 말처럼, 침묵함으로써 발언하는 구본창의 백자는 기교 이전에 이를 만들고, 보고, 아끼던 이들의 마음을 무심히 드러내 보인다. 소설가 박완서는 생전에 구본창의 백자를 두고 “대범한 듯하면서 애절하고, 친근한 듯하면서 요원하다”고 쓴 바 있다.
 
언젠가부터 해외 유명 박물관에 ‘메이드 인 코리아’ 백자 상설전시관이 생겨나고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업들이 나날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면, 백자가 ‘진화한 한국성’을 가장 세련되고 고아하게 보여주는 대표 오브제로 자리매김한 것이 분명하다. 이른바 ‘모두의 백자’가 된 상황에서도 감히 ‘구본창의 백자’라 지칭할 수 있는 건 그의 사진이 이들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본창은 백자를 보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백자를 재현하거나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감 자체를 구현한 것이다. 그의 백자는 박물관의 유리 쇼케이스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백자도 아니고, 김환기가 그린 백자도 아니며, 책에 실린 백자도 아니다. 오히려 도공들의 심연에 자리하며 행복한 좌절감을 안길 궁극의 백자, 검박한 선비들이 곁에 두고 썼을 법한 백자의 이상형에 가깝다. 구본창의 열망과 상상으로 완성된 백자는 곧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백자의 상징이자 원형이다.
 
“백자를 안 찍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싶어요.(웃음)” 구본창은 이렇게 말했지만 1980년대 말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그의 작업이 멈춰선 적은 없었다. 특히 백자 연작은 작업세계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이정표 같은 작업이다. 백자에서 푸른색 그림이 그려진 청화백자로, 오래된 모던함이 돋보이는 검은색 곱돌 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지금의 명예로운 사건들은, 그가 백자를 단지 가능성과 잠재성을 품은 작업 소재로만 대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확신한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 선택이란, 예컨대 예술가의 영감이 그렇듯, 갑자기 내 품으로 떨어지거나, 내 시야에 들어오거나, 내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다. 선택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진정한 힘을 발한다. 선택과 선택 사이에는 우연으로 위장한 숱한 선택들이 포진해 있고, 모든 선택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작가의 행복한 반문에는 연대기적 가정들이 숨어 있다. 여백에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나 용기에 애잔함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하찮아 보이는 사물을 귀하게 여기는 감수성이 없었더라면…. 외로웠지만 고립의 정서를 즐길 줄 알았던 ‘소년 구본창’은 특히 하찮은 사물들에 애정을 쏟았고, 이로써 위안받았으며, 작은 상자에 소중한 대상을 보관하는 남다른 아이였다. 그가 결국 사진을 찍게 된 이유도 카메라야말로 어떤 사물, 어떤 감성, 어떤 풍경을 본인만의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본창의 백자를 본 누구라도 이들을 마음에 품을 법하다.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보다는 엄연히 존재함에도 사라지고 있는 듯한 구본창의 백자 특유의 초월적인 무심함에 본능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이들의 시간을, 이들과의 인연을 마냥 붙잡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런 불멸과 필멸의 시간성은 그의 작업 전반을 지배한다. 예컨대 〈탈〉 연작은 탈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을 넘어 실재냐 허상이냐의 문제를 제기했다. 〈비누〉 시리즈는 다 써서 작아져 버린 비누를 통해 이를 사용한 이의 시간을 예측하게 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찍은 〈숨〉 연작은 존재와 부재의 가장 날 선 경계를 기록한 작품이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나비의 영혼을 부활시켰고, 〈태초에〉는 존재의 시작을 탐험했으며, 〈시간의 초상〉은 텅 빈 벽의 흔적을 통해 시간성을 복기했다. 즉 우리는 구본창이 백자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간 존재와 부재, 우연과 필연, 채움과 비움이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우리 삶의 주효한 질서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자꾸만 돌아볼 때가 있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상상하는 과정에서 제 일상의 팍팍함이 후회, 회한, 기쁨, 안도 등의 온갖 감정과 서로 뒤엉킨다. 더욱이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을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수록 현실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 구본창의 말에서, 알량한 결과로 선택의 가치를 재지 않고, 언젠가 또 닥칠 선택의 순간을 향해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작은 단서를 얻었다. “며칠 전 젊은 생황 연주자의 앨범 커버를 촬영했어요. 생황이라는 악기도, 연주자의 행보도 흥미롭더군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자극받고, 도전해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여전히 너무 즐거워요. 행복이라는 건 대단히 거창한 걸 마침내 해낼 때가 아니라 작고 평범한 일들을 해나갈 때, 조금씩 쌓여 완성되는 것 같아요.” 〈밤이 선생이다〉의 고(故) 황현산 교수가 평한 바 “구본창의 새롭고 용감한 시선”은 결국 사소한 선택이 만들어낸 소소한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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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 사진/ 국제갤러리,구본창 제공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