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 근처에 살겠다고 말할 것이다. 2016년 도쿄에서 영화 작업을 할 때 취재차 일본 최초의 식물원인 고이시카와 식물원에 가본 적이 있다. 오래된 나무들과 어우러진 식물원 내부의 산책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식물원 주변 동네 풍경도 아름다웠다. 낮은 담장 너머에는 집집마다 화단이 있었고 문 앞에는 어김없이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외부인을 향한 주민들의 다정한 호의와 여유 있는 시선은 분명 가까운 곳에 오래된 식물원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언젠가 식물원이나 수목원 근처에 살아보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시간이 될 때마다 여러 식물원과 수목원을 방문했다. 가장 좋아하게 된 곳은 바로 광릉 국립수목원이다.
지난주에는 수목원 근처에서 살고 수목원에서 일도 하는 이소영 식물 세밀화가를 만나 식물 산책을 했다. 나에게 그는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 그의 안내로 늦봄의 수목원을 거닐었다. ‘키 작은 나무 언덕’을 둘러보았다. 전문가가 설명해주는 식물들의 이름과 생태를 메모했다. 당매자, 으아리, 자주받침꽃, 가침박달나무, 매자나무, 개느삼 등등. 처음 보는 식물들이 많았다. 특히 노란 꽃을 피운 개느삼을 알게 된 것이 기뻤다. 평범한 야생화의 군락지로 보여 혼자 갔다면 분명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개느삼은 한국에서만 자생한다는 천연기념물 제327호. 식물학자의 안내 덕분일까. 스치는 가벼운 만남과는 달리 제대로 상견례라도 한 듯 정확히 기억하게 되었다. 이름이 참 신비하기도 하다. 개느삼이라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감의 한글이다. 학명은 ‘Echinosophora koreensis NAKAI’. 개느삼의 학명에 붙은 ‘나카이’라는 사람에 관심이 생긴다. 나카이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팔도를 누비며 미지의 식물들을 발견한 식물학자라고 했다. 한국에 자생하는 5백27종의 식물 중 나카이가 등록한 학명은 3백27종.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부운〉의 남자 주인공은 식민지의 삼림조사라는 본업보다는 여비서와의 사랑에 집중한 사람이었는데, 학자 나카이는 열심히도 조선팔도를 누비며 미지의 식물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데 집중했다니.
나카이 씨는 그렇다 치고. 국립수목원은 연구를 병행하는 수목원답게 정원 구성이 단조롭지 않다. 조선 초부터 관리된 광릉 숲과 더불어 다양한 식생과 귀한 식물이 있다. 날씨가 흐린 날을 골라 야생화와 사초과 식물들이 풍성한 그래스원과 습지, 양치식물원을 둘러보고 싶다. 태양이 뜨거운 여름날은 전나무숲과 침엽수원을. 매일 아침 집에서 나와 수목원 둘레를 걷고 있는 나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정재은(영화감독)

여름밤에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던 중 문득 들어간 곳에 놀이공원이 있었다. 알고 보니 ‘경포놀이동산’이라는 곳인데 이미 오래전 폐업했다는 이야기, 여름철에만 문을 연다는 이야기가 있다. 뭐가 맞는지 확실치는 않다. 강릉 현대호텔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하룻밤을 묵기 위해 강릉으로 달려간 때였다.
이윤호(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