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스티븐연, 김도훈, 김초희가 말하는 윤여정

똑같은 세 글자인데 어떨 때는 삐죽하고 어떨 때는 뭉클한 이름.

BYBAZAAR2021.03.19

윤여정

 
제가 웃겨서 좋아하시죠?


윤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경외심으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존경하는지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윤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진실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됨은 내 삶에서도 구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진짜다. 그것이 내가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스티븐 연(배우)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

선생님과의 처음 만남을 떠올려보니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2009년 영화 〈하하하〉 촬영장이었습니다. 저는 경험 없는 스태프였고 촬영 현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오랜 연기 생활 동안 바깥 음식을 먹는 데 이골이 나 있었죠. 댁에서 반찬 몇 가지를 싸 와 조금씩 나눠 드시며 작업을 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밥이라도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드셨으면 했습니다. 펜션에 밥통을 놓고 쌀을 사다 밥을 지어드렸습니다.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소위 밥하다가 점수를 딴 것입니다.
 
선생님이 보기는 까칠해도 누구보다도 마음이 약하고 안된 사람을 안쓰러워 하시죠. 원래 고생한 사람 마음은 고생한 사람이 안다고, 본인의 힘들었던 연기 생활을 떠올리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른 척 못하십니다. 이른바 ‘말림의 역사’지요. 검증 하나 안 된 제 영화에 출연료 없이 나와주신 건 시나리오가 좋아서도 아니고 저를 눈감지 못하셨기 때문일 거예요. 선생님이 자주 하신 말을 떠올려봅니다.
 
육십 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영화 찍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사치다.
 
CF를 찍거나 돈 많이 줄 영화를 소개할 PD님들을 더 자주 보고 살면 좋으실 텐데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를 챙기시느라.
 
그런데도 작업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능력과 재능을 떠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작업할 때 저는 또 한 번 선생님의 멋진 면을 보았습니다. 대본에서 손을 안 떼고 연구를 하시더니 제 대본에서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억양과 발음으로만 역할을 재정비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남들보다 뭘 먼저 해서 신여성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 힘으로 살겠다는 마음. 밥을 먹고 사는데 연기로 살겠다는 강인한 다짐은 배우의 자의식을 뛰어넘은 것임을 느낍니다. 처음 뵌 62세 때나 지금이나 그래서 그렇게 선생님은 똑같나 봅니다.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를 할 거라 하셨죠. 제가 더블 개런티를 드릴 때까지 건강히 오래오래 웃으면서 제 곁에 있어주세요. 글/ 김초희(감독)
  
 
윤여정은 오로지 윤여정이다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

아마도 열일곱 번째다. 윤여정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이 왔다. 대개의 경우 부드럽게 거절한다. 아, 그리 부드럽지는 않았다. 내세운 이유는 “이미 윤여정에 대한 글은 너무 많이 써서 뭘 또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였다. 청탁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또? 니네 말고도 윤여정에 대해서 써달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게으른 기획 말고 남다르게 구체적인 글감을 던져주지 그래? 이를테면 윤여정이 어떻게 지금까지 놀랍도록 시크한 몸매를 유지하는가? 라거나? 응?
 
그러니 그간 내가 부드럽게 거절한 모든 에디터들에게 일단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결국 나는 윤여정에 대한 글을 또 쓰기로 했다. 보통은 윤여정 선생님이나 윤여정 배우라고 지칭하는 편이 예의 바르다는 것을 알지만 호칭은 윤여정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그래야 글이 윤여정답게 시크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당신은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인간은 윤여정에 대해서 무슨 위대한 글을 쓰겠다고 이렇게 알맹이도 없는 긴 서문을 쓰고 있는가. 그런 거 없다. 윤여정은 위대한 배우지만 나는 위대한 글쟁이가 아니므로 위대한 글을 쓸 능력이 없다. 다만 나는 윤여정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내가 윤여정을 처음 만난 건 영화 잡지에서 일하던 때다. 편집장이 윤여정에 대한 글을 누군가 써야겠다고 했다. 내가 쓰겠다고 했다. 편집장은 윤여정을 만나지 않고 써보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윤여정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러브레터를 쓸 때 그 사람을 정말로 만나버리면 글은 어째 좀 쑥스러워지게 마련이다. 혀에 문드러지는 찬사만 늘어놓게 될 요량도 크다. 그래서 만나지 않고 썼다. 윤여정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는 그가 도무지 한국에서 존재할 리가 없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견 여배우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대부분 그들은 엄마다. 한국에서 ‘엄마’라는 역할은 어떤 드라마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년이 넘어선 배우들은 엄마 역할을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인다. 그리고 작품이 뜸할 때면 〈아침마당〉에 나와서 며느리 이야기를 한다. 윤여정은 달랐다. 그에게는 여전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종이처럼 쓱 베어버리는 날이 있었다.
 
나는 윤여정의 캐릭터가 임상수의 〈돈의 맛〉에서 김강우 캐릭터와 잠을 자는 장면을 보고 박수를 쳤다. 나이 많은 여자가 자신의 권력으로 젊은 남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어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그런 역할과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윤여정이 연기한 재벌 마님은 젊은 남자와 섹스한 다음 날 손을 하늘로 뻗으며 “시원하다”고 말한다. 내가 윤여정과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건 윤여정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결코 ‘영화적 엄마’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영화적 엄마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랄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봉준호는 〈마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김혜자 말고 다른 배우를 잠깐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윤여정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여배우들〉

〈여배우들〉

그 글을 쓰고 나서 윤여정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윤여정을 만난 건 중식당에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식당은 윤여정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한 것을 대접하고 싶을 때 가는 장소였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동네 중국집에서 얻어먹어도 황송할 텐데 이렇게 황송할 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윤여정은 말했다.
 
아니, 이젠 기자들이 나를 만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렇게 나를 안 만나고도 글을 쓸 수 있는데.
 
물론 그것은 눈앞의 나를 위한 칭찬이었다. 이후로도 윤여정은 자신을 인터뷰한 몇몇 기자와 자신에 대한 글을 쓴 몇몇 기자들을 후하게 내 앞에서 칭찬했다는 사실을 꼭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운좋게도 그 글을 쓴 나는 지독하게 사랑하던 배우 윤여정의 부름을 받고 종종 함께 모여 와인을 마시며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떠드는 모임의 멤버가 됐다.(그렇다. 나는 이걸 자랑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당신이라면 안 그렇겠는가?) 가수가 있고 건축가가 있고 감독이 있고 과학자가 있고 사회학자가 있고 미술가가 있는 그 모임의 이름은 ‘지풍년’이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말도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어느 날 난립하는 대화를 듣던 윤여정은
 
정말 여기는 지랄도 풍년이다.
 
라고 말했다. 그게 모임의 이름이 됐다. 그 모임에서 나는 가장 덜 재미있고 덜 신기한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모임을 지켜본다. 윤여정과 사람들이 있는 장소는 식당이든 와인 바든 윤여정의 집이든 카페 드 플로르가 된다. 영화와 음악과 미술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넘치듯이 이어진다. 사르트르와 카뮈와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모여서 철학과 문학과 삶에 대해 떠들던 20세기 초 파리의 카페가 여기에 있다. 윤여정은 우리를 모두 ‘친구’라고 부른다. 예전의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두 배를 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안다. 윤여정은 70년대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포크의 열풍이 시작된 무교동의 음악클럽 ‘쎄시봉’에서 그는 이장희, 윤영주, 송창식, 김민기, 박목월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윤여정에게는 언제나 당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탁월한 후각이 있다. 당대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탁월한 청각이 있다. 당대의 냄새를 풍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곁에 모으는 탁월한 포용력이 있다. 그의 곁에서는 언제나 멋진 지랄이 풍년이다.
 
처음 윤여정의 집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거실. 거기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가 쌍으로 놓여 있었다. 그게 이미 10여 년 전임을 미리 말해둬야겠다. 바실리 체어와 바르셀로나 체어가 한국 인테리어 잡지들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었다. 두 체어의 카피가 동대문을 통해서 전국으로 유통되어 네이버 블로그의 셀프 인테리어 사진들 속에 등장하기도 한참 전이었다. “바실리 체어st입니다. 저는 20만원이나 더 주고 진짜 가죽으로 제작했어요. 보통 st들이랑은 질이 달라요. 다만 직접 오셔서 가져가셔야 해요.”라는 글들이 당근마켓에 한 달에 하나씩 올라오기는 더욱더 전이었다. 나는 박물관에서나 만져봄 직한 두 체어에 앉아서 생각했다. 여기는 너무나도 윤여정의 집이다.
 
그에게는 사모님의 옷이 없다. 까만 콤 데 가르송 치마와 하얀 스니커즈를 신는다. 그에게는 어머님의 옷이 없다. 스키니 진과 가죽으로 된 단화를 신는다. 윤여정의 집에는 엄마의 소파가 없다. 마르셀 브로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가구가 있다. 그리고 아트페어에서 구입한 미국의 초사실주의 아티스트 캐롤 퓨어만의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조각이 있다. 나는 어떠한 한국 인테리어 잡지에서도 윤여정의 집처럼 주인과 똑 닮은 집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주인의 취향으로 하나하나 모은 것들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스윽 스며든 집이다.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지루한 말을 어쩔 도리 없이 다시 꺼내게 될 만큼 세련되고 모던한 집이다. 그러나 윤여정은 집을 공개하자는 당신의 요청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요청을 한다면 그건 분명히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일 테니 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제발 요청하지 마시라. 대신 상상해보시라. 바르셀로나 체어에 비스듬히 앉아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하며 과학자가 새로 펴낸 책이나 새 시나리오를 읽는 윤여정의 모습을. 그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다. 한국의 엄마도 아니다. 오직, 오로지,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먼 미래에 누군가가 펴낼 ‘한국 배우 백과사전’에 혼자만의 챕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먼저 걸어나갔던 배우가 있었다. 글/ 김도훈(작가, 전 〈허핑턴포스트〉 편집장)
 
 
윤여정의 대답
새 작품을 위해 출국을 앞둔 윤여정 배우에게 짧은 물음을 건넸다.
 
〈여배우들〉

〈여배우들〉

상의 숫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습니다. 〈벌새〉와 〈기생충〉이 영화계의 지축을 바꿨듯 ‘미나리, 윤여정’도 영화계에 큰 영향을 줄 신드롬이라고 여겨집니다.
영화의 중심에 선 것은 배우 한예리와 스티븐 연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조연 배우였어요. 수상도, 내가 지금 상패를 받은 것도 없고 미국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어서 실감을 못 하고 있습니다.
 
3월 3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어떤 마음으로 〈미나리〉에 참여하였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곧 관객을 맞이할 마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나는 몇 십 년 배우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지는 않아요. 마음가짐보다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인아라고 영화 프로듀서가 있는데, 2005년에 산드라 오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를 하려다가 프로젝트가 엎어진 적이 있어요. 그 이후에도 이인아 PD와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녀가 〈미나리〉 시나리오를 소개해줬어요. 당시 내가 우울증으로 너무 힘든 때였어요. 그때 의사가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굉장히 사실적이었어요. 그래서 이 시나리오가 혹시 감독 본인의 이야기냐 물었더니 맞다고 그래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촬영 과정은 아주 힘들었어요. 각오는 하고 갔지만 각오보다 더 힘들었어요. 그 영화를 5주 안에 찍어야 했어요. 마치 학교에 가듯이 매일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첫 세트, 첫 촬영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고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일 게 뻔해서 되도록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제가 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인아 PD에게 “한국 스태프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노인 대우는 해준다. 도착하자마자 5일을 스트레이트로 찍으면 나는 몸이 어떻게 되겠냐?” 말했어요. 그러나 정이삭 감독을 보니까 그 일정 내에 다 찍지 못하면 곤란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를 따르기로 했죠. 왜냐하면 그 감독이 참 좋았어요. 잘생겨서 좋은 게 아니고(웃음) 너무 스마트하고 현명한 사람인데 조용하고, 겸손했어요. ‘요즘 이런 친구가 있나?’ 놀랄 정도였어요. 그런 감독이 마음에 들어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임했고, ‘나는 빨리 찍고 튀자’ 하는 목적이었어요.(웃음) 한국 관객에게 〈미나리〉가 어떻게 보일지 조금 걱정이에요. 우리의 소망하고 현실은 언제든지 다르기 때문에 소망을 잘 안 해요. 그런데 처음 선댄스영화제에서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관객들이 너무 웃고 울며 반응이 좋아서 이상했어요. 한국 가족 얘기인데 이 외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웃고 울고 그러나 너무 얼떨떨했어요. 나는 내 영화를 보면서 울거나 그러지 않고 연기에 뭘 잘못했나 적발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장면에서 이렇게들 우나 싶어 이인아 PD에게 물었더니 “선생님만 안 울었어요.” 그러더라고요. 미국에 사는 내 친구도 영화를 보러 왔는데 그 친구도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정이삭 감독이 관객에게 인사를 하자 모두 기립박수를 쏟아냈는데, 나는 그때서야 울었어요.
 
다음 촬영지는 캐나다입니다. 이런 시대에 해외 촬영에 나서는 배우의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용감한가 봐요. 겁 없이 많이 따지지 않고, 나는 따질 게 없으니까. 내 나이에 작품을 고를 기회도 많지 않고요. 사람을 보고 하든지, 시나리오를 보고 하든지, 일이 순서대로 왔을 때 그 순서를 지키면서 하든지, 돈이 필요할 때는 돈 때문에 하든지 하지. 그렇게 근사한 의미는 없답니다.
 
평소 어떤 시간을 보내실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창한 하루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궁금해하는 것이겠지요. 잠들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술 이야기도 좋습니다.
육십을 넘어서 잠들기 전에 하는 일은 한 가지 있어요. 우리 증조할머니한테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하는 일이에요. 증조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죠. 어렸을 때 증조할머니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내가 늙고 나서 증조할머니한테 용서를 비는 기도는 하루도 안 빠지고 꼭 해요. 육십 넘어 조금 철들면서 우리 증조할머니가 너무 슬픈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북에서 잘 살던 할머니가 6·25 겪으면서 이곳에 넘어오셨어요. 우리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3대 독자였는데 서른여덟의 손자를 직접 염을 해서 보낼 때 할머니가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이 들면서부터 기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미나리〉에서도 ‘데이빗’(앨런 김)이 할머니 ‘순자’(윤여정)에게 못되게 구는 장면이 있는데, 첫 리딩 하는 자리에서 정이삭 감독이 울더라고요. 정이삭 감독도 할머니한테 많이 못되게 굴었구나 싶었죠. 좋아하는 책은, 내가 오래 살았으니까 교우관계가 많겠죠. 그래서 나는 책을 보내준 분의 책은 꼭 읽어요. 아니, 안 읽는 책도 종종 있네요. 읽다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건!(웃음) 저는 김병익 문학평론가 선생님의 에세이를 참 좋아해요. 저보다 연배가 위이신 분인데, 그 에세이를 읽고 또 읽고 그래요. 그분은 소설가도 아니고 문학평론가인데 어휘가 너무 고전적이고, ‘아 이런 말이 있었지’ 할 정도로 우리 말을 너무 아름답게 쓰세요. 나이가 드셨으니까 에세이를 많이 쓰시는데, 선생님이 에세이를 보내주시면 꼭 다 읽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읽을 때도 있고요. 그리고 술은 와인 좋아한다고 소문났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해서 누가 주지도 않더라고요.(웃음) 좋아하는 음악은 김동률 음악은 잘 듣는 것 같아요. 제가 김동률 팬인데, 잘 보내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성진 연주도 듣고,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왔다 갔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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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웹디자이너/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