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제가 웃겨서 좋아하시죠?
윤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경외심으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존경하는지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윤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진실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됨은 내 삶에서도 구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진짜다. 그것이 내가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스티븐 연(배우)

〈죽여주는 여자〉
선생님이 보기는 까칠해도 누구보다도 마음이 약하고 안된 사람을 안쓰러워 하시죠. 원래 고생한 사람 마음은 고생한 사람이 안다고, 본인의 힘들었던 연기 생활을 떠올리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른 척 못하십니다. 이른바 ‘말림의 역사’지요. 검증 하나 안 된 제 영화에 출연료 없이 나와주신 건 시나리오가 좋아서도 아니고 저를 눈감지 못하셨기 때문일 거예요. 선생님이 자주 하신 말을 떠올려봅니다.
육십 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영화 찍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사치다.
그런데도 작업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능력과 재능을 떠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작업할 때 저는 또 한 번 선생님의 멋진 면을 보았습니다. 대본에서 손을 안 떼고 연구를 하시더니 제 대본에서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억양과 발음으로만 역할을 재정비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남들보다 뭘 먼저 해서 신여성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 힘으로 살겠다는 마음. 밥을 먹고 사는데 연기로 살겠다는 강인한 다짐은 배우의 자의식을 뛰어넘은 것임을 느낍니다. 처음 뵌 62세 때나 지금이나 그래서 그렇게 선생님은 똑같나 봅니다.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를 할 거라 하셨죠. 제가 더블 개런티를 드릴 때까지 건강히 오래오래 웃으면서 제 곁에 있어주세요. 글/ 김초희(감독)

윤여정은 오로지 윤여정이다

〈죽여주는 여자〉
그러니 그간 내가 부드럽게 거절한 모든 에디터들에게 일단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결국 나는 윤여정에 대한 글을 또 쓰기로 했다. 보통은 윤여정 선생님이나 윤여정 배우라고 지칭하는 편이 예의 바르다는 것을 알지만 호칭은 윤여정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그래야 글이 윤여정답게 시크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당신은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인간은 윤여정에 대해서 무슨 위대한 글을 쓰겠다고 이렇게 알맹이도 없는 긴 서문을 쓰고 있는가. 그런 거 없다. 윤여정은 위대한 배우지만 나는 위대한 글쟁이가 아니므로 위대한 글을 쓸 능력이 없다. 다만 나는 윤여정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내가 윤여정을 처음 만난 건 영화 잡지에서 일하던 때다. 편집장이 윤여정에 대한 글을 누군가 써야겠다고 했다. 내가 쓰겠다고 했다. 편집장은 윤여정을 만나지 않고 써보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윤여정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러브레터를 쓸 때 그 사람을 정말로 만나버리면 글은 어째 좀 쑥스러워지게 마련이다. 혀에 문드러지는 찬사만 늘어놓게 될 요량도 크다. 그래서 만나지 않고 썼다. 윤여정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는 그가 도무지 한국에서 존재할 리가 없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견 여배우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대부분 그들은 엄마다. 한국에서 ‘엄마’라는 역할은 어떤 드라마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년이 넘어선 배우들은 엄마 역할을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인다. 그리고 작품이 뜸할 때면 〈아침마당〉에 나와서 며느리 이야기를 한다. 윤여정은 달랐다. 그에게는 여전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종이처럼 쓱 베어버리는 날이 있었다.
나는 윤여정의 캐릭터가 임상수의 〈돈의 맛〉에서 김강우 캐릭터와 잠을 자는 장면을 보고 박수를 쳤다. 나이 많은 여자가 자신의 권력으로 젊은 남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어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그런 역할과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윤여정이 연기한 재벌 마님은 젊은 남자와 섹스한 다음 날 손을 하늘로 뻗으며 “시원하다”고 말한다. 내가 윤여정과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건 윤여정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결코 ‘영화적 엄마’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영화적 엄마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랄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봉준호는 〈마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김혜자 말고 다른 배우를 잠깐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윤여정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여배우들〉
물론 그것은 눈앞의 나를 위한 칭찬이었다. 이후로도 윤여정은 자신을 인터뷰한 몇몇 기자와 자신에 대한 글을 쓴 몇몇 기자들을 후하게 내 앞에서 칭찬했다는 사실을 꼭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운좋게도 그 글을 쓴 나는 지독하게 사랑하던 배우 윤여정의 부름을 받고 종종 함께 모여 와인을 마시며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떠드는 모임의 멤버가 됐다.(그렇다. 나는 이걸 자랑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당신이라면 안 그렇겠는가?) 가수가 있고 건축가가 있고 감독이 있고 과학자가 있고 사회학자가 있고 미술가가 있는 그 모임의 이름은 ‘지풍년’이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말도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어느 날 난립하는 대화를 듣던 윤여정은
라고 말했다. 그게 모임의 이름이 됐다. 그 모임에서 나는 가장 덜 재미있고 덜 신기한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모임을 지켜본다. 윤여정과 사람들이 있는 장소는 식당이든 와인 바든 윤여정의 집이든 카페 드 플로르가 된다. 영화와 음악과 미술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넘치듯이 이어진다. 사르트르와 카뮈와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모여서 철학과 문학과 삶에 대해 떠들던 20세기 초 파리의 카페가 여기에 있다. 윤여정은 우리를 모두 ‘친구’라고 부른다. 예전의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두 배를 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안다. 윤여정은 70년대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포크의 열풍이 시작된 무교동의 음악클럽 ‘쎄시봉’에서 그는 이장희, 윤영주, 송창식, 김민기, 박목월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윤여정에게는 언제나 당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탁월한 후각이 있다. 당대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탁월한 청각이 있다. 당대의 냄새를 풍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곁에 모으는 탁월한 포용력이 있다. 그의 곁에서는 언제나 멋진 지랄이 풍년이다.
처음 윤여정의 집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거실. 거기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가 쌍으로 놓여 있었다. 그게 이미 10여 년 전임을 미리 말해둬야겠다. 바실리 체어와 바르셀로나 체어가 한국 인테리어 잡지들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었다. 두 체어의 카피가 동대문을 통해서 전국으로 유통되어 네이버 블로그의 셀프 인테리어 사진들 속에 등장하기도 한참 전이었다. “바실리 체어st입니다. 저는 20만원이나 더 주고 진짜 가죽으로 제작했어요. 보통 st들이랑은 질이 달라요. 다만 직접 오셔서 가져가셔야 해요.”라는 글들이 당근마켓에 한 달에 하나씩 올라오기는 더욱더 전이었다. 나는 박물관에서나 만져봄 직한 두 체어에 앉아서 생각했다. 여기는 너무나도 윤여정의 집이다.
그에게는 사모님의 옷이 없다. 까만 콤 데 가르송 치마와 하얀 스니커즈를 신는다. 그에게는 어머님의 옷이 없다. 스키니 진과 가죽으로 된 단화를 신는다. 윤여정의 집에는 엄마의 소파가 없다. 마르셀 브로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가구가 있다. 그리고 아트페어에서 구입한 미국의 초사실주의 아티스트 캐롤 퓨어만의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조각이 있다. 나는 어떠한 한국 인테리어 잡지에서도 윤여정의 집처럼 주인과 똑 닮은 집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주인의 취향으로 하나하나 모은 것들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스윽 스며든 집이다.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지루한 말을 어쩔 도리 없이 다시 꺼내게 될 만큼 세련되고 모던한 집이다. 그러나 윤여정은 집을 공개하자는 당신의 요청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요청을 한다면 그건 분명히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일 테니 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제발 요청하지 마시라. 대신 상상해보시라. 바르셀로나 체어에 비스듬히 앉아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하며 과학자가 새로 펴낸 책이나 새 시나리오를 읽는 윤여정의 모습을. 그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다. 한국의 엄마도 아니다. 오직, 오로지,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먼 미래에 누군가가 펴낼 ‘한국 배우 백과사전’에 혼자만의 챕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먼저 걸어나갔던 배우가 있었다. 글/ 김도훈(작가, 전 〈허핑턴포스트〉 편집장)

윤여정의 대답
새 작품을 위해 출국을 앞둔 윤여정 배우에게 짧은 물음을 건넸다.

〈여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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