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아이돌, 굼허와 나눈 이야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패션계의 아이돌, 굼허와 나눈 이야기.

고정화된 성을 뛰어넘는 파격과 실험적인 스타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패션계의 아이돌, 굼허(Goom Heo). 런던에서 새로운 컬렉션 발표를 앞두고 있는 디자이너 허금연과 만났다.

BAZAAR BY BAZAAR 2021.03.05
 

생각의 전환

브랜드 네이밍이 독특하다.
2011년,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파운데이션 코스를 시작한 첫 학기였다. 한 교수님이 나의 이름인 허금연을 발음하기 어려워해 ‘굼(Goom)’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영국에서의 애칭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내 성을 더해서 굼허라는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다.
 
굼허는 남성복 브랜드로 알려졌다. 여성복을 전공하다가 남성복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세인트 마틴 학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 겐조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당시 지원 분야가 아니었던 맨즈 라인의 헤드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남성복 팀에서 일했다. 이 경험이 졸업 컬렉션에서 남성복을 디자인해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 프로젝트로 여성복을 디자인하면서도 항상 남성복 패턴을 먼저 떠서 발전시키는 것으로 시작하곤 했었다. 숍에 가면 남성복을 먼저 살폈고 좋아하는 디자이너들도 대부분 남성복 디자이너였다. 다만 스스로 남성복은 마냥 어려울 것이고 틀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졸업 컬렉션을 통해 남성복으로 전향했다.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그래서 더 열정과 에너지가 불타올랐고 스스로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옷은 성별을 초월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젠더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매 시즌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에 기반해서 옷을 만든다. 그것을 누가 입는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결정해서 옷을 규격화한다면 그것 또한 제한적이지 않나.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남성복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달까. 전문적으로 남성복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점도 오히려 상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야말로 즐기면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남성복인지 여성복인가를 질문하는 자체도 너무나 재미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학부와 석사 졸업쇼에서 모두 1등을 한 최초의 학생이고, 런던 패션 이스트에서도 한국인 최초다.
당연히 좋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많다. 학사 패션쇼 1위를 했을 때는 마냥 좋았고 신기했는데 석사 1위를 했을 때는 덜컥 겁이 나더라. 요즘은 스스로 매번 새로운 컬렉션을 할 때마다 이전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것이 매 시즌 더욱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킴 존스, 찰스 제프리, 시몬 로샤 등의 디자이너들이 거친 런던 패션 이스트 지원은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덕분에 유학생 신분으로서 영국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느덧 세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델 캐스팅, 음악, 메이크업까지 전반적인 기획과 연출에 대해 많이 배웠다. 
 
사실 굼허의 옷은 일상복으로 입기 어렵다. 상품성에 대한 고민은 없나?
소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당연히 숍에 입점이 되고 팔리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나의 비전과 취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결과적으로 일상에서 쉽게 입을 수 없는 옷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다고 믿으니까. 당장은 소수이지만 언젠가는 대중이 인정해줄 날이 오지 않을까? 일상에서 매일 입지 않더라도 옷장에 넣어뒀다가 특별한 날 혹은 멋을 내고 싶을 때 찾는 옷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저명한 매체와 해외 바이어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광이다. 굼허의 옷을 새로운 시각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게 더 큰 감명을 주는 것은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패션에 관심 있거나 내 옷을 좋아해주는 대중들에게 받는 따뜻한 관심과 메시지다. 특히 한국에서 소셜미디어로 보내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면서 정말 많은 힘을 얻는다.
 
굼허 스타일을 정의한다면?
특별한 철학은 없다. 매 시즌 새로운 걸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무조건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을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새롭게 느껴진다면 창의력이 폭발하는 것 같다. 졸업쇼를 통해 선보였던 재킷 위에 브리프를 입었던 룩은 당시 언론에서 새로운 남성의 스타일이라 정의했다. 2020 F/W 컬렉션을 통해 선보였던 사이클링 쇼츠와 레깅스, 울트라 크롭트 실루엣 등은 파격이라는 이름으로 굼허의 스타일을 대변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결코 남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실험정신과 용기를 가진 누구나 입을 수 있으니까.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영국에서 처음 패션을 공부하면서부터 빠져든 마틴 마르지엘라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존 갈리아노, 1960년대 피에르 카르뎅, 그리고 앤트워프 6인방 출신의 디자이너 월터 반 베이렌동크 등의 거장들이다. 


평소의 모습과 취향도 궁금하다.
일하지 않을 때 친구들과 만나 커피 마시고 수다 떨며 노는 걸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도 절실하다. 평소에는 스튜디오에서 인턴들과 함께 일하고, 비즈니스 미팅이 많아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주말 중 하루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요즘 식물과 빈티지를 좋아해 이런 오브제들을 모아 집을 꾸미는 것도 즐긴다.
 
인스타그램에 서울의 모습을 담아낸 피드를 보았다. 대한민국은 당신에게 어떤 곳이고 의미를 주는가?
영국으로 유학 오기 전까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서울은 낯설지만 그리운 동경의 장소다. 서울에는 언니와 동생이 살 뿐 아니라 영국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 한국에 방문하면 서울과 진주를 오간다. 지금은 영국을 베이스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고국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예를 들면 아우터와 이불 여러 개를 한데 뒤집어쓴 거리의 노숙자, 옛 동네에 위치한 오래된 사진관 같은 평범한 모습들. 이런 순간들을 포착해 인스타그램에 저장해두기도 한다. 나의 고향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일상처럼 편안하지만 감동을 주는, 늘 영감의 원천이 되는 소중한 장소.
 
2021 S/S 컬렉션에 대해 직접 소개해달라. 패션 필름에 등장하는 모델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뛰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컬렉션 주제는 ‘관음증’이다. 최근에 이사를 했지만 이전에 살던 집은 거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통유리 창문이었다. 코로나가 영국에서 심각하게 퍼진 3월 말, 첫 번째 봉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반대편 건물에 사는 사람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이더라. 물론 거리가 꽤 멀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도 나를 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또 내가 관찰 당하는 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내고자 했다. 또 본격적인 디자인은 독일인 아티스트 파울 분더리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에로틱한 조각과 판화 페인팅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드레이핑으로 보디를 감추거나 드러냈다. 이 디테일을 잘 보여주기 위해 모델들이 역동적인 느낌을 낸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2월 23일에 선보일 2021 F/W 컬렉션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으며, 공식 웹사이트도 오픈할 예정이다. 지난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프린트와 텍스타일을 활용한 티셔츠를 제작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서 곧 온라인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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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황인애
    사진/ Goom Heo,Getty Image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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