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Imaxtree, www.miumiu.com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가혹한 상황 속에 펼쳐진 2021 S/S 패션위크.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언택트 시대의 패션쇼는 생경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발맹은 객석을 스크린으로 채우고 안나 윈투어, 제니퍼 로페즈, 카라 델레바인 등을 온라인으로 초대했다. 모스키노는 인형을 제작해 한 편의 동화극 같은 패션쇼를 선보였다.
패션을 통해 환상을 선물하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어요.
피날레의 제레미 스콧 역시 인형으로 등장했음은 물론! 프라다에 합류한 라프 시몬스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모나코 경기장에서 무관중으로 런웨이를 펼친 셀린,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스트리트 룩의 정수를 보여준 발렌시아가, 사진가 닉 나이트와 몽환적인 비주얼을 선보인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는 모두 패션 필름으로 새 시즌을 대체했다. 반면 전통적인 패션쇼를 유지한 브랜드도 있었다. 샤넬, 루이 비통, 디올, 에르메스 하우스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소수의 게스트만 초대해 쇼를 열었다. 한편 셀린, 보테가 베네타, 마이클 코어스, 생 로랑 등의 하우스는 정식 패션위크 스케줄에서 탈피했다.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저마다의 방식으로 2021 S/S 시즌을 공개한 것. 전반적인 런웨이 트렌드는 보다 친숙하고 간결해졌으며 젊은 감각으로 코로나 시대에 대응했다. 또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패션계 이면의 윤리적 이슈에 더욱 몰입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성과 고통의 순간 더 빛을 발하는 창의력이야말로 패션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진짜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데 디지털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말처럼 패션의 신을 완성하고 또 이해하기에는 화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허나 지금, 우리가 고심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대에 패션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PINK TO ORANGE 암울한 현실에서도 디자이너들은 패션을 통해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핑크와 오렌지 컬러의 향연이 펼쳐진 이번 시즌 런웨이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화사하게 꽃피운다. 발렌티노와 발렌시아가의 매니시한 오버사이즈 셔츠부터 JW 앤더슨과 로에베의 풍성한 벌룬 실루엣, 릭 오웬스의 보호 룩, 베르사체의 섹시한 러플 드레스까지. 오렌지와 핑크 컬러가 모든 실루엣을 물들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IN-LIKE 이번 시즌 키 아이템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이것! 바로 ‘두 번째 피부’라 해도 무방할 만큼 몸에 착 감기는 실루엣과 소재가 돋보이는 스킨 피스다. 톱, 보디수트, 드레스, 레깅스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으며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담긴 프린트와 디테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올해에는 릭 오웬스, 샤넬, 버버리, 지방시부터 2019 LVMH 프라이즈 우승에 빛나는 테베 마구구, 힙스터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샬럿 놀스와 같은 신진 디자이너까지 합세해 보다 다채로운 스킨 피스를 만나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너가 아닌, 아우터로 활약했다는 것. 착용감과 신축성이 좋은 스판덱스, 니트, 메시 소재로 완성해 안팎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COLORS OF MOTHER NATURE 사진/ Imaxtree,Saint Laurent
여성들이여, 세상의 모든 컬러로 물들어라! 이번 시즌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연에서 온 다채로운 컬러의 룩을 선보였다. 흙, 모래, 숲, 바다의 색감을 녹인 컬러들은 이국적인 스타일과 어우러져 마치 대지의 여신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자연 모티프와 컬러 패턴, 다양한 소재가 어우러져 그 매력을 더욱 극대화한다. 특히 타이다이 카프탄에 멀티 컬러 스웨터를 허리에 두른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선보인 룩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채로운 컬러와 프린트로 뒤덮는 것이 스타일링 포인트.
THE STATEMENT COLLAR 소설 〈피터팬〉의 삽화에서 유래한 둥글고 넓은 형태의 칼라, 피터팬 칼라가 런웨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몇 시즌 전부터 꾸준히 트렌드 반열에 오르더니, 이번엔 한층 과감한 형태로 업그레이드된 것. 알레산드라 리치, 필로소피 드 로렌조 세라피니의 로맨틱한 버전부터 파투같이 어깨를 엎는 각진 형태까지 모양도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쉽게는 니트부터 베스트, 가죽 드레스, 트렌치코트와 다채롭게 매칭해볼 것. 칼라 하나만으로도 룩을 러블리하게 반전시킬 수 있다.
HOME SLIPPER 불안정한 환경일수록 안락함을 향한 욕구는 더 강해진다. 이번 시즌의 디자이너들은 그 열망을 발끝에서부터 채워나갔고, 집 안에서 신을 법한 슬리퍼가 안락함을 충족해줄 대안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예로 발렌시아가의 필름 속에서 모델들은 헐렁한 캐주얼 룩에 슬리퍼를 신고 파리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또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코치의 룩북에는 두툼한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여성들이 등장했으며, 몰리 고다드는 특유의 튤 드레스에 어그와 협업한 양털 슬리퍼를 매치했다.
WE WERE HERE 마치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거대한 사막 한복판에서 진행된 생 로랑의 2021 S/S 런웨이 쇼. 안토니 바카렐로는 ‘I Wish You Were Here’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선보이며, 근심으로 가득한 현재에 대한 응답을 전했다. 삶에 시련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고, 숨통을 틔우기 위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곤 한다. 팬데믹 시대의 디자이너들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자크뮈스는 프랑스 파리 남부에 위치한 광활한 밀밭에서 쇼를 진행했고, 6백 미터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런웨이는 그 자체로 장관을 이뤘다. 한편 안개 낀 숲을 배경으로 컬렉션을 선보인 버버리의 리카르도 티시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쇼 노트에 ‘Burberry in Nature’라는 문구를 담으며 자연과 공동체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