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첫 화보 촬영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일단 아주 오랜만의 작업이라서 즐거웠어요. 20대 때 모델 일을 했었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재미있게 일하던 시절인데(웃음) 오늘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어요. 화보 촬영은 뭐랄까. 제게 신나는 놀이 같은 거라서. 담아야 할 것이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프로페셔널하게 작업하는 스태프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한국 스태프들은 정말 빨라요.
번잡한 거리에서 순식간에 카메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다 보면 잘해내기 힘드니까요. 정서적으로 주변을 차단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죠.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스태프가 장비를 들고 현장에 서 있는데, 제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안 되죠.
레더 코트는 Juun.J. 터틀넥 톱, 프린지 펌프스는 Prada. 나비 모티프의 ‘플라이 바이 나이트’ 귀고리는 Stephen Webster.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 입고 있는 사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한국 브랜드라고요?
자가격리를 끝내고 쇼핑을 해야겠다 싶어서 동대문에 있는 두타에 갔어요. 한국에서의 첫 바깥 나들이였죠. 거기서 언밸런스한 라인이 마음에 드는 치마바지와 커다란 로고가 들어 있는 블라우스를 샀죠. 어때요? 전 아주 마음에 들어요.
영화 〈고요한 아침〉 촬영을 위해 매니저도 없이 혈혈단신 입국했죠? 자가격리 2주를 각오하고요.
일단 전 혼자 여행 다니는 것에 익숙해요. 한국은 워낙 치안이 좋다고 들어서 걱정스러운 부분도 없었고요. 매니저가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14일 격리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던데요?(웃음)
일단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제가 연기한 알리스는 외과의사이고 강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죠.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무엇보다 동떨어진 나라에서 온 여자가 타지에서 사건을 파헤쳐가면서 그 나라에 점차 흡수되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톱, 스커트는 Sacai. 아코야 진주가 돋보이는 ‘데이드림’ 귀고리는 Tasaki. 프린지 사이하이 부츠는 Roger Vivier.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잖아요. 극중에서 알리스가 한국에 적응해가는 과정은 실제 올가의 모습과도 비슷했을 것 같네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역할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한국에서 거의 모든 촬영을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한국에 가면 제가 알리스와 똑같이 생활할 것 같다고 직감했죠. 전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해요. 처음 방문하는 나라가 있다면 쉬운 단어들은 미리 익혀두고 신기한 음식도 맛보고요. 프랑스 사람들과 비교해서 사는 모습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아, 그런데 이제는 혼자 여행하는 건 좀 힘드네요.(웃음) 이제는 엄마이니까. 아이가 영국에 있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 매일매일 영상을 보내고 전화 통화를 해도 그리운 마음이 더 커지네요.
이 영화의 관건은 프렌치 감성, 할리우드 문법, 한국 로케이션,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는 거겠죠?
저도 그 세 가지가 어떻게 재미있게 섞일지가 가장 궁금해요.(웃음) 한국 배우들은 한국어로 말하고, 저는 프랑스어로 대사를 하고, 또 유연석 씨와는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까 현장에서의 느낌도 굉장히 새로웠거든요.
시퀸 드레스는 Bottega Veneta. 미니 핸들 백은 Moschino. 리나일론 백은 Prada. 중지에 착용한 ‘지터 버그 쿠쿠 비’ 반지는 Stephen Webster.
일단 영어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친절하고. 항상 주위를 살피면서 혹시 제가 뭔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신경 써주었어요. 제가 김을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는데, 어디서 들었나 봐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제게 김 선물을 주어서 감동받았죠. 유연석 씨가 출연 중인 뮤지컬 〈베르테르〉에 초대받아서 즐겁게 관람했고요. 하루 종일 아주 성대한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들떠 있었어요. 사람들과 모여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코로나로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잖아요. 한국에서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웃음)
〈투 더 원더〉〈007 퀀텀 오브 솔러스〉〈오블리비언〉 모두 특유의 짙은 흑갈색 머리로 강한 인상을 남겼죠. 금발의 올가는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그 덕에 검은 머리 한국인들 사이에서 더 낯선 존재로 보이는 것 같고요.
실제로 감독님이 알리스의 머리색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서 염색하게 됐죠. 그런데 지금껏 영화에서 보여진 진한 갈색도 원래 제 머리색은 아니에요. 실제로는 그 중간 정도? 아무튼 요즘은 뿌리 부분이 자랄 때마다 호텔방에서 제가 직접 염색하고 있어요.(웃음)
라텍스 보디수트, 스커트, 레깅스, 타이츠, 스트랩 힐은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외과의사 역할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있나요?
수술 도구를 손에 익히려고 했고 자르거나 봉합하는 등 수술 동작을 실습하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외형적으로 의사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보다는 실제 의사들이 할 법한 행동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강연하는 장면에서는 고생을 좀 했죠. A4 한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 전부 의학 용어 였거든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어렵게 느껴지길래 나중엔 ‘그래,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모두 의학전문가는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니 조금 낫더라고요.(웃음)
레더 톱, 팬츠는 Tod’s. ‘파인 링크’ 귀고리는 Tasaki. 니트 스카프는 Burberry. 벨트는 Roger Vivier. 장갑은 Miu Miu. 부츠는 Prada.
여러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이 배경이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우선 감독님이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요.(웃음) 한국 스태프들이 프로페셔널하죠. 이곳 특수효과 팀을 보고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에 두루 관심이 많아요.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러시아 출신이죠. 외할아버지가 바시키르 지역 태생이라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이유 없이 동양에 친근감이 있었달까요. 사실 제가 잘 알지는 못할 거예요. 아시아에도 여러 국가가 있고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은 분명히 다르니까요. 영화를 보면 배경이 한국이어야만 했던 어떤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요.
한국에서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언어의 장벽이죠. 제가 엄청난 수다쟁이인데 마음껏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웃음) 대신 한국에 와서 눈빛으로 감정을 나누는 버릇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라텍스 보디수트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아까 라텍스 슈트를 입고 나왔을 땐 보디라인이 아름다워서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죠.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미안해요.(웃음) 운동은 전혀. 하나도 안 해요.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액션영화를 찍을 때는 오직 영화를 위해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몸이 쭉 가더라고요. 아무래도 스포츠에 잘 맞는 몸으로 태어났나 봐요.
한국 음식을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죠? 한국 팬들은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가의 한국 음식 기행’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도 하더군요.
사진만 올렸을 뿐인데 한국 팬들은 제가 어디서 뭘 먹고 있는지 장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만두가 인상적이었어요. 시장에서 파는 납작만두라는 걸 처음 먹어봤거든요. 회덮밥도! 날생선과 야채를 좋아하는데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니. 라면도 자주 먹었고. 너무 많은 걸 먹어서 다 기억이 나질 않네요. 물론 그 중에서 제일은 불고기였고요.
레더 코트는 Junn.J. 터틀넥 톱은 Prada. 나비 모티프의 ‘플라이 바이 나이트’ 귀고리는 Stephen Webster.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 계속 영화를 찍는 것이 배우에겐 어떤 의미라고 보나요?
지금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는 영화인은 아마 없을 거예요. 저 또한 열심히 찍어두었던 작품들이 멈추었고 언제 개봉할지 알 수 없게 되었죠. 무엇보다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는 행위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슬퍼요. 넷플릭스나 애플 TV 같은 OTT 매체를 통해서 영화를 접할 수도 있지만 극장에 직접 찾아가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동안 아침 일찍 나와서 촬영하고 저녁 늦게 숙소에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보니까 생동감 있는 서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요. 한국인들이 그렇게 술을 좋아한다던데(웃음) 전 말로만 전해 들은걸요.
패딩 재킷, 셔츠, 레더 스커트, 타이, 벨트 백은 모두 Prada. 스트랩 힐은 Rachel Cox. 타이츠는 에디터 소장품.
〈고요한 아침〉은 내년 봄쯤 한국에서 개봉하겠죠? 그때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고, 지금처럼 잘 관리한다면 내년에 영화가 개봉할 때쯤 제가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혼자 걸어 다니며 산책도 하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서울의 정취를 더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 날이 꼭 올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