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경기도에서만 즐길 수 있는 예술 기행

돌에서 시작해서 돌에서 끝나는 ‘K스러운’ 해프닝을 찾아 떠난 아방가르드한 경기도 예술 기행.

BYBAZAAR2020.11.02

GYEONGGI

박현기, 〈무제〉, 1979, 돌 14개, 모니터 1대, 120x260x26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현기, 〈무제〉, 1979, 돌 14개, 모니터 1대, 120x260x26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3백여 점의 작품을 대충 보든 열심히 보든 놀라운 건 어렴풋하게나마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술사가 그려진다는 거다. 그중 아무래도 발걸음을 붙잡는 건 박현기를 포함한 한국의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이다. 제6전시실은 좀 조심해야 한다. 성능경, 김구림, 곽덕준, 김영진 등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강소의 〈소멸 – 화랑 내 술집〉은 그 당시 사진으로만 봐도 충격적이다. 1973년 이강소는 명동화랑에 선술집을 차렸다. 그게 전부다. 그게 작품이었다. 술집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의자와 탁자는 물론이고 무교동에서 주워온 낙지집 입간판까지 붙여놓아, 화랑이 술집으로 변한 줄 알고 되돌아간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하긴 화랑에 닭도 푼 그가 아닌가. 추위와 가난의 고단함, 선술집이 가진 박애주의적 의미가 ‘탁주 1잔 100원’이라는 글씨에 담겨 있다. 1968년 5월 2일 오후 7시 세시봉 음악감상실에서 열린 ‘현대미술과 해프닝의 밤’ 글 자료도 눈에 띈다. 존 케이지의 해프닝 아트를 한국적으로 해석하려는 몸짓으로, 그날 밤 ‘색 비닐의 향연’이라는 퍼포먼스가 열렸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비닐에 물과 색소를 넣은 다음 터트리는 퍼포먼스였다. 집단 퍼포먼스 ‘한강변의 타살’로 유명한 강국진, 정찬승이 구성한 것으로, 애석하게도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이 무슨 미친 짓이냐"라는 빈축을 많이 샀던 것 같다. 한국의 부조리한 근현대사를 마주하지 않고 미술관을 떠날 순 없다.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 앞에 섰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강동원으로 박제된 1987년 6월 이한열의 모습을, 조습이 2002년에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재현한 사진이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던 티셔츠인데. 여기서는 그렇게 싫진 않다. 요즘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에선 얼마쯤 하려나?
 
조습, 〈습이를 살려내라〉, 2002/2012,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51x11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습, 〈습이를 살려내라〉, 2002/2012,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51x11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이 작품 〈색동Ⅰ〉에 힘겹게 눌러 쓴 “보라 백남준은 꼭 재기한다” 문구를 마음에 품고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로 향한다. 가는 길, 선바위역에 들러 선바위를 본다. 이게 무슨 포스트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4번 출구 앞에는 선바위가 있다. 선바위는 말 그대로 ‘서 있는 바위’다. 2.5~3m 높이로, 예전에는 노인들이 앞에서 고수레를 하는 등 영험한 돌로 신성시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바위에 기대 쉬기도 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 벤치도 없고 스타벅스도 없던 시절, 사람들이 짐을 들고 가다가 차가운 바위 앞에 잠시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귀여운 위안을 주기도 하고 이상한 감흥도 준다. 선바위에 기대는 걸로는 성이 안 차는 현대인이므로 카페 언트에 들러 갈증을 채웠다. 아버지의 공장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자매가 리모델링해 카페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임영균, 〈백남준의 기억, 1983〉,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임영균, 〈백남준의 기억, 1983〉,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임영균 백남준, 〈색동 I〉, 1996, 패널에 아크릴릭, TV모니터, VCR, VHS비디오 테잎, 117x16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임영균 백남준, 〈색동 I〉, 1996, 패널에 아크릴릭, TV모니터, VCR, VHS비디오 테잎, 117x16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아트센터에 도착, 나가는 길에 백남준 티셔츠를 꼭 사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백남준 티브이 웨이브» 전시장으로 향했다. 관객의 주체적 참여, 관객과의 적극적 소통을 중요시한 백남준이 일본 공학자 아베 슈야와 함께 만든,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상 편집 및 합성 기계인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가 있었다. 요즘의 유튜버를 보면 백남준은 무슨 생각이 들까? 본인이 구상한 대로 모두가 예술 하고 모두가 TV를 적극적인 창작물로 다루니까 이 시대를 유토피아처럼 여길까? 구독자 수와 좋아요 수로 나뉘는 차별과 계급이 못마땅할까? 하나 확실한 건, TV 안에는 삼라만상이 다 있다는 거다. 참선과 구도의 길, 부처까지. 불상이, 자신을 비추는 TV 모니터를 마주보고 있는 작품 〈TV 부처〉가 그걸 말해준다. 백남준이 아버지 유산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맨해튼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불상이라고 들었다. 우상 파괴, 매체 파괴, 예술 파괴, 엄숙함 파괴, 그리고 피아노 파괴, 존 케이지의 넥타이도 파괴. 사기 치기 좋은 게 예술이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얼떨떨할 만큼 유효하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내부.  단경왕후 신씨의 온릉 앞을 지키고 있는 문석인. 카페 언트의 속 시원한 풍경.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역시 얼떨떨하다. 〈중앙선데이〉에서 본 어느 칼럼에 따르면, 생전에 장어덮밥을 좋아한 백남준의 마지막 식사는 장어덮밥이었고 마지막 말 역시 “맛있어, 맛있어.”였다고 한다. 그의 식성을 따라 자연스레 장어구이 전문점인 용인 만수정으로 간다. 만수정으로 가는 길, 만나정, 만우정 등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장어집이 줄지어 계속 나타난다. 뭐 이건 장어집 시뮬라크르라고 해야 하나? “백남준 씨가 장어 좋아한 거, 알죠.” 만수정 김민수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고창에서 장어를 가져와요. 얼음에 장어를 한 시간 동안 기절시켜 탱글탱글하고 더 맛있어요.” 좀 가혹하게 들리긴 하지만 구운 파, 묵은지, 생강 소스와 함께 숯불에 구운 쫄깃한 장어 1kg를 뚝딱 해치웠다. 예술이 우리를 장어집으로 데려다줬다. 다음은, 예술을 사기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그림은 가르치는 게 아니다”라고 했던 예술가를 만나러 갈 차례다. 살짝 더 멀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가본다. 밥을 먹고 와서인지 장욱진이 덕소에 있던 자신의 집 부엌 벽에 그린 〈식탁〉이란 벽화가 마음에 든다. 그가 그려 넣은 건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과 밥 그릇, 커피잔, 물잔과 넙치와 뼈다귀였다. 단순한 게 아름답다. 선(禪) 사상을 위한 목판화집 〈선 아님이 있는가〉를 위해 갱지에 매직펜으로 쓱쓱 그린 드로잉, 스스로 붓장난으로 불렀다는 가벼운 먹그림 등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듯이 그 역시 으스댐 하나 없이 천진난만하게 그렸다. 그는 말했다. “그리면 그만이지.” 초라한 차림에 꾀죄죄하게 다녀 멀리서도 냄새를 통해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일화와도 왠지 연결되는 것 같다. 〈선 아님이 있는가〉에서 진각선사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리면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이것이 선이다.”
 
장욱진, 〈무제〉, 1984, 한지에 먹, 35x67.5cm. 송수남, 〈나무〉, 1985, 94x138cm, 종이에 수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어떤 한국적인 추함도 다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너그러워진 생각과 태도로 마지막 산책길, 온릉으로 간다. 무덤에 오면, 도시에 죽은 자들을 위한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물리적으로 체감된다. 온릉은, 조선 중종의 첫 번째 왕비였지만 아버지가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7일 만에 폐출된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지난해부터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했지만 방문객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문석인 (왕·왕비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는 문관(文官))만이 무덤 옆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있다. 살아생전 호사를 전혀 못 누렸는데 죽어서 얻은 위계라니, 정말 한국적이다. 이보다 더 K스러운 엔딩이 있을까? 예술 기행답게 이제, 아까 옆으로 비켜뒀던 질문을 해볼 차례다. 예술과 삶, 삶과 죽음, 실재와 허구, SNS와 삶 중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 걸까? 일단 아까 찍은 사진, 인스타그램 업로드 좀 하고 생각해봐야겠다.
 
프리랜스 에디터 나지언은 K스러운 것이 주는 부조리와 짜증에 매력을 느낀다. 그 잘난 서양인들도 절대 흉내 못 내는 한국적인 것, 그게 제일 재밌다.
 
INFO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
전시: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2022년 7월 31일까지.
«이승조:도열하는 기둥», 10월 4일까지.
카페 언트 | 경기 과천시 남태령옛길 97
선바위 | 4호선 선바위역 4번 출구 밖
백남준아트센터 |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전시: «백남준 티브이 웨이브», 2021년 3월 7일까지.
만수정 |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정로 270-4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전시: «장욱진 에피소드 I», 2021년 3월 28일까지.
온릉 |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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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나지언
  • 사진/ 최용준,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사진/ 백남준아트센터,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