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아틀리에는 어떤 모습일까? 2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예술가의 아틀리에는 어떤 모습일까? 2

불변하는 장인정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날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루이 비통과 현대미술가의 협업인 ‘아티카퓌신(ArtyCapucines)’ 프로젝트가 그 두 번째 행보를 선보인다. 발걸음을 함께한 6인의 작가가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예술과 패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BAZAAR BY BAZAAR 2020.10.20
 
리우 웨이와 그가 디자인한 아티카퓌신 백. ©Jin Jia Ji

리우 웨이와 그가 디자인한 아티카퓌신 백. ©Jin Jia Ji

 

Liu Wei 

리우 웨이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베이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리우 웨이는 빠르게 장르와 미학을 전환하며 조각에서부터 오일 페인팅, 영상, 드로잉, 설치까지 넘나드는 도발적이고 분야를 특정할 수 없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만연한 소비지상주의, 근대도시의속성, 멈출 수 없는 도시화와 같은 문제들을 다루며 주제에 따라 소재를 선택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통해 상징적인 건축물의 모형을 소가죽으로 된 개껌으로 표현한 〈Love It! Bite It!〉(2006), 폐기된 타르로 만든 2미터에 걸친 배설물 모양의 〈Indigestion II〉(2004), 세탁기, 팬케이크 팬 등 버려진 소재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한 〈New World〉(2019)와 같은 대형 조각작품이 탄생하였다. 그의 작품은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최근 대형 추상조각작품 두 개는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정되기도 했다.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리우 웨이의 추상조1각25 작품들. ©Jin Jia Ji

 
어떤 계기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나? 어려서부터 함께 놀 친구 혹은 장난감조차 없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상상 속 이야기를 그리곤 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많은 사람들이 소질을 칭찬했다. 의사인 부모님은 미술과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내가 열네 살이 될 즈음 미술 선생님을 불러 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는 “당신의 아들은 꼭 그림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내가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베이징의 중앙미술 학원에 부속된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1학년 때 한 수업이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수업의 제목은 ‘착한 앤디와 나쁜 앤디’였는데, 여기서 ‘착한 앤디’는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이고 ‘나쁜 앤디’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나는 워홀에대한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 강의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예술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내는 것에 제한되지 않고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도시다. 건축적 측면이 아닌 도시 그 자체. 나에게 있어 내가 살고 활동하는 베이징과 같은 도시들은 아마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우리의 실제 생활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예술은 아름답거나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예술은 실제 삶으로부터 나오고,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였던 당신의 대형 설치작품 〈Microworld〉를 카퓌신 백에 담아낸 이유는 무엇인가? 〈미시세계(microworld)〉라는 작품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불분명한 경계를 탐험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거시세계(macroworld), 즉 우리가 보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어떠한 시스템에 기반한 것이다. 반면, 미시세계는 현실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이다. 나의 예술, 그리고 그것을 창조해내는 과정은 내가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돕는 도구일 뿐이다. 아티카퓌신 작업에 있어, 단순한 아름다움보다는 특별함을 갖춘 가방을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방의 기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가방은 한 개인 자신만의 미시세계를 담아내는 공간과같은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방 그 자체는 설치작품이기도 하며 가방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 될수 있다. 
루이 비통 장인들과 함께 당신의 작품을 가방에 표현하는 작업은 어땠는가? 루이 비통 장인들은 모든 종류의 소재를 가지고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디자인적인 측면으로는, 당신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여러 가지 디자인 옵션을 제안하며, 짧은 시간 안에 실물로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렇게 완벽한 수준의 장인정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1차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나? 의미 전달 혹은 멋진 오브제를 전달하려는 것이었나? 뚜렷한 구분은 없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매일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헨리 테일러. ©1P2a7ul Wetherell

헨리 테일러. ©1P2a7ul Wetherell

 

Henry Taylor

헨리 테일러
 
헨리 테일러가 디자인한 아티카퓌신 백.

헨리 테일러가 디자인한 아티카퓌신 백.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1958년에 태어난 헨리 테일러는 캘리포니아 옥스나드에서 자랐다. 훗날 그는 옥스나드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테크니션으로 근무하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의 스승이자 멘토인 미술가 제임스 자베이즈(James Jarvaise)는 테일러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지원하도록 격려하였다. 그 덕분에 1995년 테일러는 무사히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전업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1997년 부터 테일러는 캔버스, 시리얼 박스, 표백제 통, 담뱃갑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페인팅, 조각, 혼합재료(mixedmedia)설치작품 등 지역사회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 근처의 노숙자들 또는 마일스 데이비스, 시실리 타이슨과 같은 전설들을 그린 페인팅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서의 경험을 탐구한 것으로 깊은 공감과 정치적 비판이 담겨 있다. 그는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 PS1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다. 파리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헨리 테일러의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페인팅에 관한 가장 첫 기억은 무엇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50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 옥스나드에서 자랐다. 7학년 영어 선생님은 화가였는데 그 선생님 집에서 처음으로 페인팅을 접했다. 당시 나는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을 읽고 비록 전문기술이 없어도 내가 읽은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20대에는 카마릴로 주립정신병원에서 정신과 테크니션으로 근무했다. 그 무렵 제임스 자베이즈를 만났다. 그는195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도로시 밀러가 기획한 «16명의 미국인들»이라는 그룹 전시에 프랭크 스텔라, 로버트 라우션 버그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자베이즈는 나의 페인팅을 보고 “헨리 너는 나의 페인팅 수업을 들어야 해.”라고 말해주었다. “잠깐만요. 예술가가 되려면 학교를 가야 하나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당시 나는 순진했다. 그는 진정으로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나는 내 사촌이 ‘황금 금괴(Golden Nugget)’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고, 그것이 어릴 적 내 별명이 되었다. 정신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수많은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겪는다는 뜻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알고 지낸 노숙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스며들고 영향을 미쳐, 풍경화든 로스앤젤레스 스키드 로(Skid Row, 노숙자가 많기로 유명한지역) 지역에 있는 누군가의 초상화이든, 그림을 그릴 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카퓌신 백에 표현한 2017년 작품 〈A Young Master〉에 대해 이야기해보자.이것은 예술가이자 로스앤젤레스의 언더 그라운드 뮤지엄의 설립자였던 노아 데이비스(Noah Davis)의 말년 초상화이다. 노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나는 가족 중 막내인데 그는 나보다도 어렸다. 그래서 그를 매우 똑똑하고 열정이 많은 동생으로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그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다. 노아는 언더그라운드와 같이 민중의 지역사회 박물관을 함께 만들어낸 선지자다. 언더그라운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간이다. 내가 그의 초상화를 가방에 담은 것은 그를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카퓌신 백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오브제로 당신의 작품이 공공장소를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분명 노아는 사람들이 그 가방을 들고 다닐 때 누군가 “가방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라고 질문하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할 것이다. 마틴 루서 킹이나 밥 말리를 가방에 담을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노아에 대해 궁금해하도록 그를 가방에 담아낸 점이 맘에 든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1차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나?의미 전달 혹은 멋진 오브제를 전달하려는 것이었나? 둘 다. 완성된 가방을 보는 것은 아름답다. 이 가방은 나를 울고 싶게 만든다.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려면 가끔은 당신 이 길을 잃기도 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발견한 것에 대한 것이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다. 작가의 스튜디오, 아틀리에라는 단어에 두근두근 반응하며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냅다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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