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예술가의 아틀리에는 어떤 모습일까? 1

불변하는 장인정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날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루이 비통과 현대미술가의 협업인 ‘아티카퓌신(ArtyCapucines)’프로젝트가 그 두 번째 행보를선보인다. 발걸음을 함께한 6인의 작가가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예술과 패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BY황동미2020.10.19
 
 

Josh Smith

조시 스미스
 
페인팅, 조각, 도예 등 그의 관심사가 드1러16나는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페인팅, 조각, 도예 등 그의 관심사가 드1러16나는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페인팅, 조각, 도예 등 그의 관심사가 드1러16나는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페인팅, 조각, 도예 등 그의 관심사가 드1러16나는 스튜디오 전경. ©Paul Wetherell

 
뉴욕에서 활동 중인 조시 스미스는 197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자랐다. 판화가로 훈련을 받으며 반복적이고 순환하는 이미지의 연속에 대해 탐구를 하게 되었고, 그 관심은 페인팅, 조각, 도예, 책, 포스터를 아우르는 작품의 핵심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본인 이름의 시각적, 철학적 가능성에 대해 풀어낸 시리즈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물고기, 나뭇잎, 야자수, 해골, 사신(Grim Reaper) 등을 주제로 시리즈 작품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페인팅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스미스의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등 전 세계 많은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당신의 배경에 대해 소개해달라. 나는 군인 집안에서 자랐다.해외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 테네시에서 성장했다.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주변에는 산이나 종교적 이미지 외에는 예술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 뉴욕으로 이사했다. 
어떤 계기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나? 아무도 나에게 아티스트가 되라고 권하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 예술가가 되지 말라고 말한 사람들이 가장 나를 자극했다. 어머니가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학교 게시판의 그래픽 작업을 도우며 자랐다. 1학년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자 결과물을 만들곤했다. 결국 비슷한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지만,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창의적인 사람일 뿐이다. 
당신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무엇인가? 야자수, 거북, 물고기, 해골, 사신 등이 있다. ‘조시 스미스’라는 내 이름을 주제로 한 페인팅이 가장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작품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한 주제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O, S, J와 같이 캔버스나 종이 혹은 이번 사례에서는 가방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모양의 심플한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왜 자신의 이름을 그리는지 물어보면 나는 그냥“글쎄요, 다른 많은 것들보다 훨씬 낫지요.”라고 대답한다. 어떤화가들은 알 수 없는 대형 추상화를 그리고, 어떤 이들은 얼굴을, 나는 내 이름을 그린다. 
 
 
조시 스미스의 작업물. ©Paul Wetherell

조시 스미스의 작업물. ©Paul Wetherell

카퓌신 백에 당신의 이름을 새긴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나는 정말 이것이 가장 비난을 받기 쉽고 도발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루이 비통도 모든 것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으니 나는 내 이름이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요점이다.“조시 스미스라는 사람이 누구야?” 어떤 두 사람이 만나 칵테일을 마시며 내 이름을 화두로 대화 나누는 것을 상상해본다. “네가방에 있는 저게 뭐니?” 대화가 친근하게 이어진다면 성공이다. 내 목표는 삶에 기쁨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카퓌신 백은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본으로 돌아가 나무, 캔버스, 금속 등 자연 소재에 대해 연구하였다. 루이 비통의 공예팀이 이 새로운 소재들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고,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주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이 가방이 보다 가벼우면서도 가죽만큼이나 견고하기를 바랐다. 수준 높은 장인들은 물론 멋진 디자인팀 및 공예팀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나에게 진정한 사치였다.
 
 

Jean-Michel Othoniel

장-미셸 오토니엘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장-미셸 오토니엘은 유리구슬을 엮어 만든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을 가진 조각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는 유리의 가역적이고 반사되는 성질에 매료되어 1990년대 초반부터 유리를 이용해 작업하기 시작했고,이탈리아 무라노부터 인도 피로자바드까지 각지의 유리 장인들과 협업을 거쳤다. 갤러리 전시를 위한 비즈 또는 유리블록 작품들과 2000년 파리 지하철 입구의 〈야행자들의 키오스크 (Kiosque des Noctambules)〉, 2015 년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 2019년장 누벨이 설계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1백14개의 유리구슬 분수대 〈Alfa〉 등 대규모 공공기관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시립 현대미술관, 도쿄 하라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어떤 계기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나? 지역 미술관 외에 특별한 것이 없는 프랑스 마을 생테티엔(Saint-E´tienne)에서 자랐다. 당시 미술관은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같은 미국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는나를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미술관을 찾았고 때때로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소질 있는 아이였고 모든 학업에도 뛰어났지만 예술가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무언가 되는 것이 아닌 선택받은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성인이 되었을 때 내 세대는 에이즈로 인해 비탄에 빠졌고 친구들을 잃으며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어두운 시절이 유일하게 긍정적인점은 내가 더 급진적이고 호사가가 되지 않고 진정으로 예술에전념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무엇인가? 나는 조각가이지만 내 작품의 중요한 측면은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더 넓은 열망이다. 최근 내 작품이 어떻게 세상을 재조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내 작품은 기쁨과 희망이 우울함과 섞여 있는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번 프로젝트를 하나의 건축물로 접근하여 마치 가방이 실물 크기 빌딩의 축소 모형인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 가방은 나에게 생트로페즈의 여름, 브리지트 바르도가 상징하는 문화, 햇빛 그리고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해변’과 동의어이기도 한 라피아를 소재로 사용했다. 핸들은 나의 시그너처인 검정 비즈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가방의 건축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보다 미니멀하고 그래픽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영롱한 유리 소재의 작업물들. ©Christophe Coenon

루이 비통 장인들과 함께한 작업은 어땠는가? 프랑스 금속공과 수공예 장인들,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과 같이 전문 장인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내 작품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루이 비통의 장인들과 작업하는 것은 진정한 호사였다. 색상 선택부터 촉감, 탄력 있는 품질의 가방 소재까지 모든 디테일은 정밀함에서 왔다. 나는 루이 비통의 공방과 같이 풍부한가능성과 완전한 효율성의 기능을 갖춘 스튜디오를 갖는 것을꿈꾼다. 그것은 마치 거장 뮤지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것과 같다.
카퓌신 백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오브제로 당신의 작품이 공공장소를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어떠한가? 나는 항상 미술관을 넘어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내 작품들이 종종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이유다. 이 가방이 햇살을 받으며, 장난기 넘치고 기쁨과 생기에 찬 누군가의 차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프로젝트를 예술로 보나 아니면 패션으로 보나? 예술에 경의를 표하는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다. 작가의 스튜디오, 아틀리에라는 단어에 두근두근
반응하며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냅다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