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곳곳에 뜬 미스터리한 글귀의 정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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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곳곳에 뜬 미스터리한 글귀의 정체

언제나 시대를 앞서는 아티스트 제니 홀저.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수많은 프로젝트는 오늘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던 시절마저 제겐 끔찍했어요. 이 끔찍한 시대가 바로 제게 맞는 시대죠.”

BAZAAR BY BAZAAR 2020.10.18
거실에서 시프리앙을 보고 있는 홀저.

거실에서 시프리앙을 보고 있는 홀저.

6월 초, 홀저와 그의 그룹은 조지 플로이드가 죽기 전 했던 말을 브루클린의 주요 도로 근처에 있는 건물에 투영했다. 천천히 스크롤되어 내려가는 텍스트는 주민, 보행자, 운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품명 〈In Memoriam〉은 플로이드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단순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인종 폭력의 결과로 목숨을 잃은 1백15명의 흑인 명단을 포함한 집회의 외침으로도 사용됐다.
 
〈In Memoriam〉은 맨해튼의 어두운 밤에 밝게 빛나던 홀저의 초기 작품 같은 강렬한 메시지를 공유한다. 그의 조명 작업은 보통 몇 달간의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지만, 이번의 경우 협업 팀의 도움으로 플로이드 사망 2주가 조금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 “우리는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을 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빨리 진행했어요.” 그가 말한다.
 
진행 중인 작품 〈Red X〉 앞에 선 홀저.

진행 중인 작품 〈Red X〉 앞에 선 홀저.

지난 7월, 홀저는 1980년대부터 수차례 공공예술 작품을 소개했던 타임스퀘어에서 애니메이션 디스플레이 시리즈를 처음 선보였다. 저녁 7시 그의 작품은 42번가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디지털 광고판에 ‘보호(Protect)’부터 ‘간호사(Nurses)’, ‘의사(Doctors)’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봄부터 시작된 직장인들의 재택근무로 인해 삭막했던 도시를 디지털 불빛으로 비춰주었다.
 
애니메이션 텍스트는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 홀저의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었다. 때론 제니 홀저를 사칭하며 실제 작품의 텍스트를 올리는 가짜 트위터 계정이 판을 쳐 논란이 될 때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Jenny Holzer, Mom’이나 ‘Jenny Holzer, Cat’과 같은 계정은 최근까지도 소셜미디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홀저 대신 그의 작업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은 때때로 특정 형태와 콘텐츠에 꼭 들어맞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을 사로잡는 것을 목격하는 건 흥미로워요.” 홀저가 설명한다. “인스타그램을 계속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리한 건 사실이죠.”
 
〈In Memoriam〉, 2020. 제프리 엡스타인의 ‘리틀 블랙 북’의 한 페이지로부터 따온 〈Massage A- Island〉, 2019. 〈Protect Nurses Doctors Yourself〉, 2020. 〈Vote Your Future〉, 2018.
대화를 나눌 때, 홀저는 여성 활동가와 작가, 전문 예술가로 대부분이 구성된 ‘밴드 투게더(Band Together)’를 위한 밴대너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여러 아티스트가 만든 밴대너는 젊은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 멕시코계 미국인 유권자 등록 확대를 위한 단체에 판매될 예정이다. 또한 홀저는 11월 대선에 앞서 유권자 등록을 장려하고 유권자 억압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선거 관련 이슈에 초점을 맞출 거예요.” 그가 말한다. “우리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홀저의 작품은 오랫동안 정치 위기에 대해 경고해왔다. 수년 동안 진행된 그의 프로젝트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시행해온 고문에 대해 조사해왔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일어난 강간과 시리아 난민들이 겪었던 역경 등 말이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에이즈 위기를 다룬 그의 작품은 팬데믹을 다룬 가장 강렬한 예술작품 중 하나로 기록된다.
 
손주 방에 서 있는 홀저. 미국 정부 기밀 문서 기반으로 제작된 또 다른 작품 〈Doodle〉(2014)이 걸려 있다.

손주 방에 서 있는 홀저. 미국 정부 기밀 문서 기반으로 제작된 또 다른 작품 〈Doodle〉(2014)이 걸려 있다.

에이즈 팬데믹 기간 핵심 인물이었던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엄청난 속도로 퍼지는 치명적이고도 회복이 어려운 전염병으로 여긴다. “레이건(Reagan)은 에이즈 확산을 악화시켰어요.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고통을 받았죠.” 홀저가 말한다. “굉장히 낯익은 상황 같지 않나요?”
수년 동안 권력 남용을 폭로하고 대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홀저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19와 인종차별, 불평등, 정치 및 경제 갈등에 저항한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받아들이고 대응한다.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던 시절마저 제겐 끔찍했어요. 이 끔찍한 시대가 바로 제게 맞는 시대죠.” 그가 말한다. “지금은 쩔쩔매면 안 되는 시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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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Nicholas C. Morgan
    사진/ Maciek Kobielski
    번역/ 채원식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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