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도 발끝이 훤히 보이는 김녕해수욕장에서 사진 찍기, 함덕해수욕장에 텐트를 지어놓고 수다를 떨다가 그대로 잠들기, 그 사이 어딘가 바닷가에서 우중수영하기, 그러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수영복을 입은 채 정자로 몸을 숨겨 캔맥주 까먹기. 맛있는 건 왜 그리도 많은지. 동문시장에서 모닥치기로 시작을 알린 후 딱새우를 사서 숙소에 돌아가 판을 벌이는 맛, 각재기국을 시키면 딸려오는 일타쌍피 같은 행운의 접짝뼈국, 겡이죽 조개죽 전복죽 보말죽 온갖 죽들의 천국, 농협에서 제주도산 흑돼지와 멜젓, 콩잎을 사서 질릴 때까지 구워 먹기. 어렴풋이 떠올려봐도 지금까지 내가 제주에 가서 한 일은 이렇다. 이중섭, 김영갑, 김창열, 김택화 한 줄로 세우기도 황송한 이름들이 붙은 미술관과 안도 다다오와 이타미 준이 자연 위에 빚어놓은 공간들도 몇 곳이나 있건만.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이 놀고 먹었다. 그러니까 제주도에서 미술관을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이다. 한편, 동네 친구는 한 달에 두세 번 제주도에서 1박2일을 보낸다. 들어보니, 1만원대의 비행기표가 많아 다른 지방에 가는 것보다 교통비가 적게 들고, 미리 공항에 가는 시간을 합쳐도 비행 시간이 짧아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런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흥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1박2일 예술 기행을 그려봤다. 하지만 드래곤볼처럼 전역에 흩뿌려진 미술관을 둘러보기에 나는 차가 없고 면허도 없다. 순간적으로 몇 년 전 기억에 기대 행선지를 원도심으로 정했다. 공항에서 택시로 15분 걸리며 갤러리 세 개가 걸어갈 만한 거리에 모여 있는 곳. 그 기억이라는 걸 구구절절 말해보자면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친구의 결혼식으로 도내 최고라는 라마다호텔에 갔고, 몇 시간 동안 끝나지 않는 연회를 보았다. 거기에 제주도의 바람은 듣던 대로 매서웠고 눈발 또한 그랬다. 결국 비행기는 결항되고 그 혼돈 사이에 우뚝 서 있던 빨간 건물 하나가 무정하게 눈에 남았다.


나를 야속하게 했던 건물은 1995년 문을 연 최초의 복합상영관 ‘탑동시네마극장’. 기능이 쇠락하고 기운은 얌전해진 원도심의 상징 같았던 폐허는 아라리오뮤지엄으로 변모했는데 내부는 상당하게 남았다. 이를테면 코헤이 나와의 유리구슬 사슴이 줄지어진 바닥에는 맨홀 뚜껑이, 백남준 작가의 설치작품은 영사실 자리와 맞닿아 있다. 3층과 2층의 경계를 없앤 자리에는 과거 계단이 조각처럼 남아 있다. 딸기케이크 위의 딸기를 제일 먼저 먹는 사람, 아니면 마지막에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구경은 위층부터’인 나는 가장 꼭대기인 5층부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다. 내 고집, 버릇과는 상관없이 5층에서 열린 아라리오갤러리의 설립자이자 작가인 씨킴의 개인전은 뒤이어 방문한 세 개의 아라리오 갤러리를 관통하는 주제 그 자체라서. 시멘트를 입힌 버려진 마네킹, 작업실 바닥에 깔려 작업의 과정을 흡수한 카펫 작품은 지금껏 생명과 영혼이라는 꿈을 좇은 씨킴의 메시지를 강렬하고 무거운 볼륨으로 내뿜는다. 참, 아라리오 탑동시네마는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백화점과 편집숍 사이의 크기다. 지그마르 폴케나 마르쿠스 루퍼츠, 다니엘 리히터, 안젤름 키퍼처럼 책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독일 거장의 작품이 눈앞에 있어 얼떨떨하다. 전설인 백남준과 전설이 되고 싶은 젊은 작가 김인배가 함께 있어 흥미가 솟는다. 수보드 굽타가 갤러리 안으로 불러들인 인도의 집기가 가득 실린 20미터 크기의 배와 소 1백 마리의 가죽으로 직조한 중국 작가 장환의 〈영웅 No.2〉가 거대함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모든 작품을 보고 받은 감흥을 글자로 적으려면 바닥이 모자라고, 말로 풀어놓는 데도 영화 상하편 분량은 된다. 시간을 바짝 비우고 짐은 꼭 맡기자.


10분을 걸으면 아라리오 동문모텔이 나온다. 이제 감이 잡힌다. 도색을 하고 간판을 새로 걸었지만 원래의 쓰임이 보인다. 주변 건물은 거의 모텔이고 갤러리 입구 바로 옆에는 다방 백조가 있다. 탑동시네마보다 적극적인 보존과 창조의 공간. 동일본 대지진으로 파괴와 상실을 경험한 일본 센다이 출신의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는 모텔의 잔재를 재료 삼아 동화적이면서도 섬뜩한 세계를 남겼다. 매트리스를 겹겹이 쌓고 그 위에 문갑을 올리고 굴러다니던 쓰레기를 심었다. 다른 전시장 역시 모텔로 쓰일 당시의 벽지와 창틀, 변기마저 남아 있다. 공용 대중탕에는 가오 레이의 오브제가 있고 불 꺼진 방에서는 빌 비올라의 영상이 점멸한다. 채프먼 형제와 트레이시 에민, 조나단 메세의 작품들이 들어차 있는데 이로써 내가 품은 의혹은 기정사실이 된다. 2001년 막 대학생이 되어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고 타셴출판사에서 나오는 〈현대작가 100인〉 같은 책을 보며 예술을 글로 배울 때 언급된 이름과 작품을 눈앞에서 보고 있었던 거다. 현대미술이 대중에게 정착될 그 무렵과 겹쳐지면서 소름이 오소소소.
아라리오 동문모텔 2는 1과 1백50미터쯤 떨어져 있다. 모텔을 개조한 건 마찬가지이지만 동문재래시장과 산지천을 끼고 있어 사뭇 차이가 난다. 이 건물은 통째로 구본주 작가에게 맡겨졌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조각가의 왕성한 작업물을 보고 또 본다. 눈치를 보면서 죽어라고 달리느라 목이 빠지고 다리는 날개처럼 날아갈 듯 도약하는 모습의 샐러리맨 〈미스터 리〉가 나무로 청동으로 땅에 붙었다 하늘에 매달렸다 야광으로 빛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한숨을 내쉬었을까?(나 역시.)
갤러리 세 군데를 돌고 나면 하늘의 빛깔이 바뀐다. 원도심이 욕심난 건 막 생긴 디앤디파트먼트 제주가 있어서. 모험심 없고 무사안일주의인 나는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이 반가웠다. 제주 향토음식을 단단히 사랑하기에 제주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는 D식당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디룸(d room)은 내 집이었으면 싶고 내 집 같은 모습이다. 룸 넘버가 없는 것도 넓은 거실이 있는 것도.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채색 액자와 오징어 집어등이 있다. 노상호와 부지현 작가의 작품이 소품으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정말 하루 종일 예술만 바라보았네.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활동반경이 좁지만 더 많은 도시와 더 많은 미술관에 가고자 마음먹었다.
INFO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 제주 제주시 중앙로2길 21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1 | 제주 제주시 산지로 37-5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2 | 제주 제주시 산지로 23 D&DEPARTMENT JEJU | 제주 제주시 탑동로2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