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에르메스의 역사를 정리한 캡슐 컬렉션

에르메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가 증류한 에르메스의 시간 그리고 10가지 룩

BYBAZAAR2020.08.08

ABOUT TIME : HERMÈS

유고 그릭카르가 디자인한 브라이드 드 갈라 패턴을 질감이 느껴지도록 수놓은 바이커 재킷. 에르메스의 가죽 가공 기술을 함축한 플리츠 드레스.
삶의 가치에 대한 숭고한 자각은 대개 교통사고가 나듯 찰나에 이루어진다. 지금 통과하고 있는 팬데믹이라는 터널 속에서 우리는 육체와 정신 위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화려한 날갯짓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짧고 강렬한 기쁨을 주던 세상의 환락적인 즐거움으로부터 빠져나와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성향, 기울어진 자아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삶 속 가치의 순위를 재편성한다.
에르메스가 하우스 역사상 처음으로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제껏 길게 이어져온 하우스의 역사를 잠시 되돌아보고, 그들이 태초부터 추구했던 가치란 무엇이었는지 대해 다시 한 번  패션을 통해 설명한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파도가 세계를 잠식하기 이전에 기획된 이 캡슐 컬렉션은 코로나 이후의 삶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지나쳤던 것이었음을 환기시킨다. 코로나는 예정된 미래의 수순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지, 결코 우리가 전혀 모르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미래이다.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은 7월의 어느 날, 화상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에르메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Nad`ege Vanh´ee-Cybulski)를 만났다. 에르메스의 캡슐 컬렉션은 비단 소비되기 위한 패션이 아니며, 그보다는 오히려 에르메스의 시간을 정의하는 컬렉션이다. 그렇기에 꼭, 만든 이의 설명이 필요했다. 파리 시간으로 아침 10시 즈음, 패션쇼장도 사무실도 아닌 자신의 집에서 파란 셔츠 실크 셔츠를 입은 그를 화상을 통해 마주했다. 여전히 코로나가 진행 중임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유고 그릭카르의 브라이드 드 갈라 패턴을 새긴 오픈워크 셔츠. 클로 메도르 디테일이 적용된 더블페이스 캐시미어 코트.
이번 시즌의 캡슐 컬렉션은 에르메스의 새로운 도전 같은데요.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캡슐 컬렉션은 제가 출산휴가를 가기 전부터 진행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까요? 저희는 이번 캡슐 컬렉션을 최대한 심플하게 준비했으며, 컬렉션이 마무리되고 내부적으로 공개했을 때 흥미롭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특히 시즌리스, 타임리스한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모두들 매우 의욕적이었고 작업은 매우 유기적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컬렉션을 위한 촬영을 했지만, 저희는 패션쇼의 형태로 알리는 것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소문으로 전달되는 접근방식을 사용했죠.
구체적으로 캡슐 컬렉션과 일반 컬렉션의 준비 과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캡슐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은 이미 이전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의상들을 재가공한 것이에요. 이전 컬렉션에 등장한 드레스를 보면서 ‘여기에 좀 더 볼륨을 넣어주면 어떨까? 이 드레스를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과거의 드레스를 재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블랙 브라이드 드 갈라(Bride de Gala) 재킷은 지난 겨울 컬렉션에 선보였던 의상입니다. 저는 이 재킷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캡슐 컬렉션을 준비하며 우리가 이전에 좋아했던 컬렉션을 다시 재검토하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거나 또는 발전시키지 못한 요소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컬렉션과 비교했을 때 헤리티지와 아카이브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며 이 둘의 가치를 담았습니다. 이번 캡슐 컬렉션의 주제는 오브제와 오브제의 영속성 그리고 헤리티지 부분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아카이브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재탄생시킬 수 있을지 재검토하는 과정이 있었죠.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고찰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다음 시대를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는 현재를 통과하며 새로운 미래로 연결되었죠. 즉, 이번 캡슐 컬렉션은 에르메스의 노하우와 아카이브의 연구소라 할 수 있습니다.
울 크레이프 조젯 소재로 다이아몬드 모양의 디테일, 원형 자수가 가미된 오픈워크 스커트. 에르메스 매장 바닥 장식에서 모티프를 얻은 모자이크 패턴의 투피스.
총 10개의 룩을 선보였습니다. 이 룩들을 보면 에르메스 유니버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컬렉션에서 개수나 순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컬렉션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룩의 수를 정하지 않고 여성복 컬렉션 또는 시그너처 룩에서 아이코닉한 피스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셔츠나 주름 원피스, 바이커 재킷 또는 판초를 만들어보자” 라는 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이 컬렉션은 에르메스 여성복의 시그너처 룩이자 에르메스 스타일의 상징이 되는 룩으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함이 깃든 스타일, 그러면서 자연스러움과 정교함이 균형을 이루는 컬렉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고 여성복에 대한 본질을 끄집어내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되었죠.
캡슐 컬렉션은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팬데믹 이전에 이미 기획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캡슐 컬렉션 출시 시점이 절묘했고, 그 덕에 대중에게 던지는 의미도 더 커졌습니다. 
사실 이번 컬렉션은 현재의 상황과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는 에르메스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고찰, 시간에 대한 존중, 양질의 시간 그리고 이와 창작의 적절한 비율입니다. 이 캡슐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바로 시간에 대한 고찰이 에르메스의 기본 철학이라는 점입니다. 이 캡슐 컬렉션은 어쩌면 현 상황에 혜택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에르메스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근간이 된 개념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하우스의 요소 중 하나라는 건 변함없습니다.
장인들과 함께하는 컬렉션의 준비 과정은 어떤가요? 
장인들과의 작업은 저의 작업에 있어 기본이 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예전부터 수작업을 통해 옷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재단, 재봉 기술…. 물론 작금의 상황들이 우리의 작업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순 있겠지만 그건 좀 더 발전된 방향일 거예요. 장인과 저희는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니즈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변화하는 취향도 염두에 두고 있고요. 장인들과의 작업은 늘 그렇듯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에르메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퀄리티입니다.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이는 어떤 의미가 있고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네, 품질은 제가 작업할 때뿐 아니라 제 삶의 방식에서도 기본적인 가치에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가치의 질, 태도의 질도 해당이 되는데요. 제가 디자인하는 방식에 내재되어 있고 저는 이를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블페이스 캐시미어 소재의 오픈워크 케이프 재킷. 클로 메도르 장식을 덧댄 더블페이스 캐시미어 소재의 스커트.
캡슐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에피소드 같은 게 있었나요? 
이 컬렉션은 제가 임신한 상태에서 진행을 하였고 종종 검진을 받으러 가느라 부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샘플을 확인하고 화상전화를 통해 마지막 피팅 작업을 하고 출산이 임박 때까지 컬렉션을 계속 만들어야 했죠.
이 질문을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딸의 출생이 예술적 비전에 변화를 가져왔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엄마가 된 지 이제 겨우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꼭 엄마가 되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챕터별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모든 사람들은 창의적인 면이 있습니다. 또 창의적인 사람들은 뛰어난 투과력(poros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요소이든 외부에서 오는 요소이든,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을 투과하며 새롭게 해석됩니다. 물론 엄마가 되어서 저 또한 그러한 변화를 겪은 것 같습니다. 아직 이건 이렇게 변화했다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항상 그렇듯 변화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이죠. 아이를 낳으면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습니다. 규율(discipline)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를 갖게 됨으로써 미래 세대를 투영하게 되고 ‘나는 이제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져야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좀 전에 요즘 시국에 관련된 사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이 사태가 저에게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으킵니다. 자신이 어떻게 소비하고 창조하고 생활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져야 된다고. 우리는 후세대에게 유익한 지구, 환경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밴대너에서 모티프를 얻은 자수를 덧댄 실크 캐디 소재 드레스. 유고 그릭카르의 브라이드 드 갈라 패턴이 섬세하게 수놓인 더블페이스 캐시미어 코트.
매우 보편적인 관념이어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으로, 또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새롭게 다가온 의미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 사태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역량, 정체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겪는 동안(물론 아직도 지속되고 있죠) 에르메스는 결속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저를 비롯한 하우스의 모든 직원들에게 은신처가 되어주었죠. 경제적 은신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심각한 경제적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계속해서 급여를 받았습니다. 또한 심리적 은신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개개인을 존중하고 위생법을 준수하는 작업조건하에 우리는 계속 일을 해나갔죠. 그럼으로써 에르메스는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은신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이번 사태를 통해서 느끼는 결속 또는 연대감은 손의 리듬(Rhythm of the Hand)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의 재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에르메스의 사람들에게 이제껏 하우스가 추구해온 가치와 존재감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다시 작업실에 나올 수 있었을 때 모두들 매우 행복해했어요. 또한 우리 늘 고찰해왔던 인간의 자질, 소재에 대한 존중, 자연의 대한 경의, 이 모든 것이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죠. 저희는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이런 가치들을 연결하고, 또 이어가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우스의 의무이자 철학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희에게는 이런 작업을 해나가는 것에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에르메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가 증류한 에르메스의 시간 그리고 10가지 룩. 

에르메스 스튜디오와 공방 간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뤄낸 캡슐 컬렉션은 기술적 세련미와 창의성이 만나 이뤄낸 결과물이다. 탁월한 노하우의 조합, 아이코닉한 특징의 변형이 겹치고 재구성되면서 에르메스의 시간은 10가지 룩으로 함축된다. 은 세공 기술, 예술적인 자수, 가죽 주름 및 기타 여러 가죽 가공 기술이 여성복을 만나 새롭게 표현되었다. 그래픽 스타일의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주 소재인 가죽은 마치 얇고 가벼운 울 패브릭 소재처럼 섬세하게 사용됐다. 이런 기술 사이로 에르메스만의 표식을 드러내듯,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는 아이코닉한 상징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두 개의 시그너처를 패션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실크 스카프에서 차용한 유고 그릭카르(Hugo Grygkar)가 디자인한 브라이드 드 갈라(Brides de Gala), 포부르 생토노레 24번지(24 Faubourg Saint-Honor´e) 에르메스 매장의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패턴이 바로 그 상징이다.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더블페이스(double-face) 캐시미어 소재의 코트에는 브라이드 드 갈라 디자인이 각기 다른 세 가지 컬러의 실로 전체에 수놓여 있다. 이 상징적 패턴은 염소 가죽 소재의 바이커 스타일 재킷을 통해 재해석된다.
또 다른 상징인 모자이크 모티프는 재킷과 미니스커트 앙상블에 등장한다. 톤온톤 컬러의 실로 수놓은 양가죽 소재의 기하학적 사각 패치워크는 에르메스의 마구용품 제작 기술과 쿠튀르적인 기교가 결합되었다. 아이코닉한 클로 메도르(Clou M´edor) 스터드는 본래 20세기 초 개의 목줄에 부착하던 장식으로 이번 컬렉션에서는 미니어처 사이즈로 재현되었다. 가죽 밴드를 따라 일일이 달아 놓은 스터드 장식은 캐시미어 오버코트 위에서 반짝인다. 캡슐 컬렉션의 모든 룩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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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정(프리랜서)
  • 사진/ 에르메스,Inez & Vinoodh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