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영화를 오락으로 소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범죄영화를 오락으로 소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범죄 피해자의 시선에서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

BAZAAR BY BAZAAR 2020.06.15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 없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

 
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리즈 〈인간수업〉의 줄거리 설명이다. 주인공 오지수는 학교 안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지만 학교 밖에서는 성 착취를 알선하는 포주다. 성범죄에 발 담근 그가 화면에 비춰지는 방식은 여느 청춘 드라마 주인공 못지않다. 생계비를 보태줄 부모님의 부재는 그가 포주가 되어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당화하고, 도박 중독인 아버지가 아들이 (성 착취에 가담해서) 번 돈 6천만원을 비트코인으로 날리는 장면은 시청자들이 주인공의 입장에 감정이입해 분노하게 만든다. 또 다른 주인공 배규리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그의 인간다운 면을 부각시킬 뿐이다. 그렇게 초점은 자연스레 성 착취의 굴레에 빠진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에게 맞춰진다. 범죄자에게 적절한 서사가 부여되며 시청자들이 그를 안타까워하기에 이르게 된다. 범죄 영화의 뻔한 레퍼토리다.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두 사람이 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박사와 영화 저널리스트 이다혜 기자다. 두 사람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시작으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방송하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감상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방송은 인기를 얻어 동명의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흔히들 바라는 ‘사이다’ 대신 외면해선 안 될 불편한 진실 앞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때로는 과거의 경험이 오버랩되어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암담함을 느낀 적도 있다. 책에 쓰인 수많은 예시 중 한 가지 사례라도 겪어보지 않은 이가 과연 있을까. 몇 년 전 미투 운동 물결이 불었을 당시 김규항 칼럼니스트는 “어느 수준으로든 성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이나 목격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우리는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일상 속 성범죄는 차고 넘친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리가 좌절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것도 이에 대한 하나의 방증인 셈이다. 책에 쓰인 이수정 박사의 문장을 빌려 여성들에게 연대의 말을 건넨다. 
 
그럼에도 그것은 나의 탓이 아니며, 나는 불운한 범죄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사실, 내 전체 인생에서 그런 피해는 그저 일부일 뿐이고 내겐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사진/ 전소영
    웹디자이너/ 김유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