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그라운드의 안아라 셰프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영나의 전시 «물체주머니»의 작품들을 음식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코로나 시국은 미술관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게 했다. 오프라인 전시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온라인 콘텐츠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사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저도 과거엔 그래픽 디자이너였고 제 요리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생각하니까요. 단순히 맛있는 레시피를 소개하기보다는 플레이팅의 방법이라든지 작가가 작업에 사용한 연상법을 활용한 메뉴 같은 걸 구상 중이에요. 그녀는 이곳에서 식재료를 쌓아두고 토마토, 연근, 호박을 송송 썰어 식재료 저마다의 독특한 단면을 확인한다. 이 재료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평면에서 평면으로, 평면에서 입체로 오브제로서 ‘발견’될 것이다. 두껍고 단단한 이 나무 식탁이 일종의 무대이자 분장실인 셈이다. “어떤 음식으로 손님들을 반하게 할까 늘 고민해요. 제게는 테이블이 무대이고 손님들이 무대 앞의 관객인 거죠. 하지만 작업을 할 땐 무대 뒤편으로 변신하고요. 주방에는 설비나 도구보다 작업대의 사이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테이블도 앞과 뒤의 간격을 고려해서 최대한 크게 만들었죠.”
일 년 중에 80%는 대형 행사용 케이터링이 주된 스케줄이었던지라 코로나는 그녀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주 수입원이 사라진 거죠. 저 같은 소상공인들은 변화에 더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바로 대책 회의를 열었죠. 사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2월 말부터 델리숍을 시작했어요. 코로나가 절정이던 시기엔 확실히 매출이 오르는 게 보이더군요.”
아라홈그라운드의 또 한 가지 변화는 스튜디오에서 10인 이하의 소규모 맞춤식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종의 바이러스는 앞으로 더 자주 출현할 테고 대형 식당보다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예측에 대해 그녀는 ‘슬픈 일’이라고 했다. “수백 명이 모이는 대규모 커뮤니티는 일종의 연대 같은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어찌 보면 타액을 교환하는 것과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행위 자체에 공포심이 생겨버렸으니….”
“코로나 이전의 나는 과잉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예전엔 서울숲에 가면 빼곡히 돗자리 펴고 애인과 부둥켜 안고 있다든가 막걸리를 마시고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이 흔했어요. 지금은 간격을 지키며 서로를 조심하더라고요. 다들 틈 없이 살다가 이제야 타인을 마음속에 집어넣고 조금씩 간격을 만든 것 같아요.” 그녀도 요즘엔 가까운 지인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낸다. “봄에 나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읊어주고 꾀죠. 불 맛이 나는 적당한 산도의 간장피클에 국수를 말고 나물을 얹은 조개탕에 소면을 추가하고 완두콩과 봄나물에 반죽을 넣어 동그랗게 튀겨내는 거예요.”
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