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인스타그램 속 리처드 프린스의 예술 세계

SNS에 업로드된 사진을 캡처해서 인쇄한 작업물을 예술이라 칭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인 ‘회색 영역’에 위치해 있다고 칭하는 리처드 프린스는 지금껏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꿋꿋이 나아가고 있다.

BYBAZAAR2020.06.03

ON HIS WAY 

때는 1984년, 리처드 프린스가 초상사진을 찍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작업물은 전통적인 초상사진과는 달랐다. 그에게 작업을 원하는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담은 다섯 장의 사진을 가져와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사진들이 의뢰인의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프린스는 다섯 장 중 한 장을 고른 후 이를 다시 촬영하여 상대방의 초상을 완성했다. 심플하다. 직접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할 염려가 없었다. 피사체는 결과물을 위해 인위적인 배경을 뒤로한 채 스튜디오에 앉아 있거나 따로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으며, 결과물 또한 실망스럽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애초에 프린스에게 제출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 다른 이점은 타임라인에 있다. 만약 60대 노인이 30년 전 자신의 사진을 가져오고 프린스가 그 사진을 촬영했다면, 그의 초상사진은 일종의 타임머신 역할을 한 셈이다. 미래로는 가지 못해도 과거로는 돌아갈 수 있었다. 프린스에게 작업을 의뢰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좋아했다고 한다.
 
친구들의 사진을 시작으로 초상사진을 작업했던 프린스는 곧 영역을 넓혀 일면식 없는 이들의 초상까지 촬영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워너 브로스 사의 파일에 접근 권한이 있었던 덕에 모델들의 사진을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있었다. “만난 적도, 대화해본 적도 없는 이들의 사진을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저를 흥분케 했어요.” 그의 작업은 보통 초상사진들이 촬영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유연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스튜디오도, 메이크업도, 스타일리스트도 필요 없었으며, 피사체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됐다. 프린스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최고의 장점이었죠.” 당시를 회상하며 그가 말했다. 하지만 1984년 이후부터 그는 더 이상 초상 작업을 하지 않았다. 40장가량의 작업물은 서랍 한편에 자리 잡은 채 어느새 잊혀져갔다.
 
새로운 초상사진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 것은 30년이 지난 후였다. 2010년 무렵 소셜네트워크의 부흥기가 찾아오자 프린스 또한 트위터를 거쳐 인스타그램에 가입했다. 그가 가입했을 당시 이미 엄청난 수의 사람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지인인 제시카 하트(Jessica Hart)에게 물었다. “누군가 당신의 피드에 있는 사진으로 초상화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제시카는 흔쾌히 승낙하며 프린스에게 작업해볼 것을 제안했다. 프린스는 제시카의 피드로 들어가 스키복과 퍼 부츠를 착용한 제시카의 사진을 캡처한 후 이를 프린트했다. “이 행위는 제가 1984년에 했던 초상사진 작업을 상기해줬어요. 제시카의 인스타그램엔 다섯 장보다 훨씬 많은 사진이 있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프린트된 게시물을 본 그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추가적인 작업을 더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게시물을 캡처하기 전의 피드 속에서 일어나길 바랐다. 프린트된 후의 사진에 개입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입이 게시물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린스는 곧 제시카의 피드를 조작해 모든 댓글을 삭제하고 자신의 댓글만 남기는 방법을 찾았다. 방법은 쉬웠다. 댓글 창을 누른 후 원치 않는 댓글을 왼쪽으로 스와이프하면 빨간 느낌표가 나타난다. 그 느낌표를 클릭하면 세 가지 옵션이 뜬다.
 
‘이 댓글을 신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스팸입니다. 2. 폭력적인 내용입니다. 3. 취소.’
 
“특정 댓글을 없애고 싶다면 ‘스팸입니다’라는 버튼을 누르면 돼요. 그렇게 제 댓글만을 제시카의 게시물에 ‘포함’시킬 수 있었어요. 삭제된 댓글의 주인들이 화를 낼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는 스팸 신고를 한 본인의 피드에만 반영되거든요.” 그것이 그의 새로운 초상사진 시리즈의 시초였다.
 
그가 게시물에 다는 댓글은 사전에 운영하던 트위터의 ‘버드톡(Birdtalk)’에 기반한 내용이다. 그 중에는 TV에서 바로 인용한 글도, 광고로부터 기인한 것도 있다. 의미 있어 보이는 단어들이 몇 줄에 걸쳐 나열되어 있는 식이다. 무슨 의미인가 묻자 그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면서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좋게 들린다면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이는 시각적으로도 똑같이 적용돼요. 저는 좋아 보이기 위해 소설 〈피네간의 경야〉 323페이지를 펴서 인용한 적도 있는 걸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작업 초반, 그는 사진을 인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여러 질감의 종이를 시도한 끝에 지난봄, 돌기가 거의 없는 반질반질하고 매끈한 캔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밝고 새하얀 캔버스예요. 잉크가 캔버스에 도포되는 방식이 매우 놀라웠어요. 이미지가 초점에서 살짝 빗나간 듯하게 프린트되었죠. 잉크는 캔버스 안과 밖 동시에 자리 잡았어요. 완벽했지요. 컴퓨터 파일에서 프린터로, 프린터에서 캔버스로 옮겨간 색의 배합은 강렬하고도 풍부했어요. 파란 머리를 가진 이의 작업물을 프린트했을 땐 캔버스에 바로 그 색을 입힌 것처럼 보였을 정도로 선명했어요.” 그렇게 초상사진 시리즈를 작업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차근차근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작업 방식은 단순하다. 인스타그램 플랫폼과 어울리는 사진을 찾기 위해 해당 SNS를 서핑하고, 사진을 저장하고, 댓글을 지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는 위아래가 뒤바뀌었거나, 돌아갔거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찍힌 사진을 선호한다. “쿠닝(Kooning)의 말을 빌리자면, ‘두 팔을 벌린 만큼의 공간이 내게 필요한 전부’예요.” 그가 말했다.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그는 2014년,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를 시작으로 새로운 초상 시리즈(New Portraits)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가끔 사람들은 그의 행위가 예술로 정의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하곤 한다. 그 또한 자신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아닌 듯한 것에 대한 의문, 그것이 바로 제 작업의 요점이에요. 이 새로운 방식의 초상사진들은 정의되지 않은 채 회색 영역에 속한 셈이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위치한 이 사진들은 역사도, 과거도, 작품명도 없어요. 그것으로서 오롯이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곧 저마다의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 생각해요. 책임은 제가 아닌 작품 자체에 있어요. 결국,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제가 평생 해왔던 작업 중 이 작업만큼 저를 행복하게 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확신으로 가득 찬 리처드 프린스는 인스타그램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초상사진 시리즈를 계속 작업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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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 사진/ Jeff McLane,Courtesy Gagosian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