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정현의 불타오르는 초상

이정현이 뜨겁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BYBAZAAR2020.05.31
 
음악가, 배우, 아티스트. 최근에는 예능과 유튜브로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얼굴을 담고 싶었다. 
오랜만에 하는 촬영인데 편안했다. 이런 아방가르드한 의상을 언제 입어보나 해서 너무 좋았고.
아방가르드 하면 이정현이었다. 1996년 영화 〈꽃잎〉을 찍었고 1999년에는 가수로 데뷔해 시대를 앞서나갔다. 아니 시대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강렬했다. 
특별한 생각으로 한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빠져드는 집중력이 본능적으로 있었다. 되려 계획대로 하면 잘 안 됐다.(웃음) 모든 게 그랬다. 결혼도 20대에 하고 싶었다. 예쁜 영화를 찍고 싶은데 자꾸 센 작품만 들어왔고 음반을 만들어도 나는 이 노래가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다른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별다른 건 없고 눈앞에 상황이 놓여지면 잘하려고 한다.
나도 동시대에 가수 이정현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 왜 테크노를 들고 나오게 됐는지 그 당시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사나 이야기가 없었다. 
딸 다섯 중에 막내다. 언니들 덕분에 팝 음악을 접했다. 네 살부터 마이클 잭슨, 마돈나를 들으며 좋아했고 아버지가 LP를 모으셔서 클래식이나 인도 음악 등 제3세계 음악에도 심취했다. 그러다 보니 해외여행을 가면 가방 가득 CD를 사 올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영화 〈꽃잎〉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호주에서 하던 중 테크노를 접했다. 96년도였는데 밥을 먹는 일반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테크노가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열아홉 살 때 친구들이랑 유럽에 갔고 처음 간 클럽에서 제대로 된 테크노 문화를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퍼지지 않았던 때라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다. 준비하는 동안 테크노를 하는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레스는 Mulberry.

드레스는 Mulberry.

데뷔 곡인 ‘와’에는 온갖 아이디어가 쌓여 있다. 전적으로 본인이 의견을 냈고 소속사에서 반대를 많이 했다고 알고 있다. 
테크노가 들어온 시기가 세기말이랑 겹쳐서 사이버틱한 콘셉트가 정석이었다. 똑같이 가고 싶지 않아서 정반대에서 시작했다. 첫 방송을 하고 반응이 없었다. 그때는 SNS가 발달이 안 돼 3일 후에 반응이 왔다. 그 며칠 동안 사장님한테 엄청 시달렸다. “왜 주변 사람들 말을 안 듣냐, 동양적인 콘셉트가 말이 되냐, 부채에 눈은 뭐냐?”(웃음).
말 그대로 ‘세기말의 아이콘’이었다. 세기말을 어떻게 기억하나? 
정말 순진하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뭔가 설레고 과학이 확 발달돼서 세상이 변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거기에 딱 성인이 되는 나이니까 모든 게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열여섯의 이정현은 어떤 사람이었나? 
철없는 10대였다. 어릴 때 TV에서 봤던 분들과 연기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스크린을 통해 내 모습이 나오는 게 기뻤다. 연기를 처음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일이 마냥 좋았다.
 
상의, 깃털 헤어 피스는 모두 Dries Van Noten.

상의, 깃털 헤어 피스는 모두 Dries Van Noten.

첫 영화 〈꽃잎〉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온 신문에 날 정도로 유명한 오디션이었다. 연기학원에 다닌 적도 없었지만 무작정 응시했다.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덜컥 합격한 거다. 첫 촬영 때 장선우 감독님이 화를 내고 바로 접었을 정도로 모자랐다. 울고 울다가 다음 촬영 3일 전에 촬영 장소인 시골에 먼저 내려갔다. 어떻게 하면 정신 나간 아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해서 분장하고 동네를 넋 놓고 돌아다녔다. 예쁘장한 미친년이 동네에 굴러들어왔다고 소문이 났다. 인정 많은 할머님들이 데려다 씻기고 밥도 먹이고 그랬었다. 시장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사과랑 배를 두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상황이다.(웃음)
가수로 조명받았지만 연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할 테다. 
아역 배우로 데뷔해서 항상 누구의 딸, 여동생처럼 제한적인 역할만 들어왔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천천히 배우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가수 이미지가 강하니 또 기회가 없더라.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렸다. 중국과 일본에서 드라마를 찍고 해외 공연을 오가니 서른 살이 되었다. 딱 그때부터 연기에 목말랐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님과 작품을 하나 찍고 나서 다시 배우로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드레스는 Mulberry.

드레스는 Mulberry.

오랜 공백을 깨고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으로 돌아왔을 때 이정현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 신들린 연기.
언젠가 언론에도 직접 밝혔는데 원래 문소리 선배 역할이었다. 임신으로 하차하시면서 내가 하게 된 거다. 그 몇 주 전에 우연히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다.  〈꽃잎〉의 이정현 씨 아니냐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최민식 선배와 친분이 있는데 그렇게 통해서 출연하게 됐다.
다시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우리나라 영화계에 없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기를 하지 않는 줄 알고 있었고 싫어하는 줄 알았다더라. 기가 죽어 있었다. 정말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때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다. 영화학도 때 〈꽃잎〉을 인상적으로 봤다면서 영상자료원에서 〈꽃잎〉을 찾아 DVD로 만들어 건네줬다. 이 작품을 잊지 말라고, 빨리 배우로 돌아오라고 했다. 〈꽃잎〉은 나에게 참 버거운 작품이었다. 어릴 때 찍었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박찬욱 감독님과의 만남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범죄소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명량〉 〈군함도〉까지 넓은 범주의 영화들에 출연한 이유가 설명된다. 
서른 살을 기점으로 조바심은 다 버렸다. 영화 고를 때는 시나리오가 최우선이다. 감독님과 만나 생각을 나누고 그게 맞으면 규모와 상관없이 한다. 출연료를 안 받은 작품도 많다.
 
 플리츠 언밸런스 새틴 톱, 이너로 입은 니트 톱은 모두 Peter Do by 10 Corso Como.

플리츠 언밸런스 새틴 톱, 이너로 입은 니트 톱은 모두 Peter Do by 10 Corso Como.

영화 〈반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7월안인데 상황을 더 봐야 한다. 연상호 감독님이 애니메이션을 다뤄서 그런지 머릿속에 모든 것을 그리고 있다. 계획대로 움직이고 연출과 디렉션도 정확하다. 아침부터 저녁으로 스케줄을 잡아놓고도 점심 시간에 끝난 적이 많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너무 좋아했다.(웃음) 액션 장면이 많았지만 동선을 잘 맞춰서 하니까 다치지도 않고 힘든 것도 하나 없었다. 감독님이 늘 여자를 강하게 그린다. 그런 점이 나와 잘 맞았다.
이정현이 그리는 강한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말 그대로 강하다. 좀비랑 싸우는데 어지간하겠는가. 이번 영화에서는 목소리 톤을 많이 낮췄다. 차분한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이 무척 새로웠고 좋은 경험이었다.
요즘 정말 만능이다. 못하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리로 스트레스를 푼다. 어릴 때부터 음식 영화나 음식 다큐 보는 걸 너무 좋아했다. 맛집에 가서 뭘 먹고 집에 와서 따라 해보면 얼추 비슷했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맛있는 거 해 먹고 수다 떠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청소랑 설거지도 엄청 잘하는데 대중들이 그런 모습까지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신상출시 편스토랑〉을 통해 지금의 이정현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신비주의 아닌 신비주의를 고수했는데 요즘 어떤가? 
그동안 많은 예능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왔다. 연출이 많거나 일회성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들. 〈신상출시 편스토랑〉(이하 〈편스토랑〉)은 콘셉트가 오로지 요리였다. 요리를 정말 좋아하니까 하고 싶었지만 리얼 예능이라 두려움도 많았다. 한창 〈반도〉 촬영 중일 때라 감독님과 상의를 했는데 지금까지 너무 가려져 있었다, 정현 씨의 모습을 더 솔직히 보여줘도 될 것 같다라고 얘기하더라. 이제 좋아하는 걸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요리 잘한다고 놀라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드레스는 Iro.

드레스는 Iro.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훤히 보인다. 유튜브도 정직하게 요리만 한다.(웃음) 
사람들이 나의 다른 모습을 궁금해할까? 요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게 내 채널의 목적이다. 촬영은 남편이 해주고, 편집은 영화과 나온 친구가 해준다.(웃음) “남편이 된장찌개를 싫어하는데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직접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은 다음에 감상을 댓글로 달아주면 그렇게 기쁘더라.
만능간장처럼 특별한 레시피가 아직 많을 텐데. 
영화 촬영 때문에 <편스토랑>을 쉰다. 요리 수십 개를 하면서 영화랑 병행은 못하겠고 나머지는 유튜브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이정현의 집밥 레스토랑〉이라는 책도 나온다.
새로운 팬층도 많이 생겼겠다. 
조카보다 어린 고등학생이 팬레터를 보낸다. 요즘 자주 보이니까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옆집 언니 같은?
맞다. 아직도 젊다. 
피부과 다닌다.(웃음) 집에서 팩도 열심히 한다. 큰언니가 50살인데 나와 비슷한 나이 대로 보인다.
이걸 꼭 물어보고 싶었다. 좌우명이 뭔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후 쭉 통지표를 보면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이 쓰여 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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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스타일 디렉터/ 정윤기
  • 사진/ 주용균
  • 스타일리스트/ 정겨운
  • 헤어/ 이순철
  • 메이크업/ 정덕
  • 어시스턴트/ 문혜준,이다인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