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술계의 새로운 숨결! 엘리자베스페이튼의 작품 세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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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술계의 새로운 숨결! 엘리자베스페이튼의 작품 세계

영국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시대. 그 시대를 이끌었던 왕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아티스트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자신만의 획기적인 작업 방식으로 21세기 미술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BAZAAR BY BAZAAR 2020.05.06

The Elizabethan Age

Elizabeth Peyton, 〈David〉, 2016. ⓒ Elizabeth Peyton

Elizabeth Peyton, 〈David〉, 2016. ⓒ Elizabeth Peyton

프리다 칼로, 나폴레옹, 데이비드 보위, 엘리자베스 여왕…. 지난 30여 년 동안 구상화 부활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초상화에 등장한 명사 중 일부다. 1965년 코네티컷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셀러브리티, 귀족들을 직관적이고도 감성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호평받고 있다.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획기적이고 새로운 회고전(튜더 왕가 시대의 걸작을 그의 작품과 나란히 배치했다)을 기획한 페이튼이 갤러리의 디렉터 니컬러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에게 명성과 독서,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감정이 작품 세계의 중심에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Elizabeth Peyton, 〈Princess Elizabeth’s First Radio Address〉, 1995. Courtesy Ringier Collection, Switzerland. Bridgeman images. ⓒ Elizabeth Peyton

Elizabeth Peyton, 〈Princess Elizabeth’s First Radio Address〉, 1995. Courtesy Ringier Collection, Switzerland. Bridgeman images. ⓒ Elizabeth Peyton

NICHOLAS CULLINAN(이하 N): 전시 이야기부터 할까요. 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ELIZABETH  PEYTON(이하 E): 열여덟 살 때부터 국립초상화미술관에 다녔지만, 이곳이 얼마나 고향 같은 존재인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었어요. 저는 여기 전시된 대부분의 아티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제 작업이 초상화 장르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전시를 계획하다 보니 ‘이곳에 온 게 옳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N: 그럼요. 작년 초 우리가 함께 돌파구를 찾은 이후부터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원래는 1층에서 단독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논의했고, 위에 있는 영구 소장품 층에는 당신의 작품 한두 피스를 걸어놓을까 했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이 장소 전체를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1856년 개관한 이래 전체 갤러리를 자신만의 작품으로 채워 소통하는 최초의 작가가 된 거예요. E: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어요. 특히 튜더 갤러리에 집중하기로 한 결정은 탁월했어요. 염색 머리에 하얀 얼굴을 한 커트 코베인 그림을 비롯해 제 예전 작품 몇 피스를 그곳에 둔 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그곳에 빨간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엘리자베스 여왕을 보러 들어갈 텐데 말이죠. 아마 그 둘의 차이점을 모를 수도 있겠죠! 거의 5백 년이 다 된 그림을 벽에서 떼고 제 작업을 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꽤나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건 사실 꿈만 같은 일이에요.
N: 이번에 준비한 모든 병렬식 배치는 매우 직관적이에요. 그리고 위층에서 작품 하나를 떼어서 당신의 전시에도 넣었고…. E: 1595년 신원 미상 작가의 존 던(John Donne) 초상화지요. 던은 이번 전시의 기준이 됐어요. 물론 전시 제목인 ‘Aire and Angels’에 영감을 준 그분의 시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고요. 전시 전반의 구성에 있어서 그의 역할이나 ‘그는 어떻게 보이고 싶었을까’, 또 ‘어떻게 기억되고 싶었을까’ 등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려했기 때문이지요. 초상화는 제가 시간을 간직하는 방식이에요. 누군가 그림의 대상이 된다고 할 때 그가 입고 나타나는, 예를 들어 밝은 블루 스웨터를 입고 등장한다 치죠. 그 선택은 사회적인 가치나 다른 무수히 많은 것을 수용하고 나온 결과일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거죠.
N: 그럼 당신의 예술은 인간성과 그 안에 담기는 역사에 대한 것들이겠군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는 것에 대해 강한 욕구가 있었나요? E: 네, 벽에 붙일 사진을 모으곤 했어요. 특히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체조 선수들요. 최근에는 하뉴 유즈루(Hanyu Yuzuru)라는 일본인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그렸는데 스케이트 선수를 그리는 것에 빠져 있었던 여덟 살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서 선수들이 몸을 사용하는 방식이란 정말로 초인적이에요.
N: 지금은 주로 어떤 것에서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나요? E: 지인들의 사진을 훑어보고 있어요. 저는 누군가를 관찰하는 데에 민감한 편이거든요. 혹은 제가 잘 모르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도 있고, 그들의 글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있어요. 이런 행위가 제가 뭔가를 하게끔 만들어요.
N: 일상에서 실제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과 사진을 보고 그리는 건 많이 다른가요? E: (실제 대상을 보고 그리게 되면) 어색할 수 있죠. 사람을 앞에 두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거니까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도 하고요. 뭐랄까, 누군가의 앞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예전보다는 그런 방식이 좀 더 편해졌고 일종의 소통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한 방에서 먹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음악을 들으며 둘이 함께 있는다는 건 아름다움 그 자체거든요. 마법이 흐르는 것만 같아요.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급한 게 덜하죠. 정지된 채로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저의 감정과 감각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포착해야 하는 마음은 여전히 다급할 거예요. 어떤 대상이든지 간에 늘 통일성과 조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Elizabeth Peyton, 〈Alizarin Kurt〉, 1995. Private Collection. Courtesy The Brant Foundation, Greenwich, CT. USA. ⓒ Elizabeth Peyton

Elizabeth Peyton, 〈Alizarin Kurt〉, 1995. Private Collection. Courtesy The Brant Foundation, Greenwich, CT. USA. ⓒ Elizabeth Peyton

N: 아까 음악을 언급했는데요, 오랫동안 좋아했나요? E: 전 언제나 작업할 때 음악을 재생하곤 해요. 제 주변에 흐르게 만드는 거죠. 어떤 곡의 특정한 포인트를 좋아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20초가 흐른 딱 그 부분이라든지. 제가 붙잡고 싶은 어떤 느낌을 설명하기도 하거든요. 최근에는 바흐부터 비킹그루 올라프손(Vikingur Olafsson, 아일랜드 피아니스트),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고 있어요.
N: 열렬한 독서광이기도 하죠. E: 네. 학교 다닐 때 훌륭한 미술 선생님을 만났어요. 역사가이면서 작가이신 더글러스 블라우(Douglas Blau) 선생님은 제게 읽어볼 만한 작가 리스트를 주셨어요. 그중에는 청소년기에 즐겨 읽은 오스카 와일드도 있었고 마르셀 프루스트와 오노레 드 발자크,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있었어요. 사람들에 대해 기술한 작가들의 묘사를 읽어보면, 예를 들어 누군가의 얼굴에 있는 어떤 주름의 느낌이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이거든요. 읽으면서 저도 제 그림에 그런 걸 표현하고 싶다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1백 페이지 정도는 제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놨어요. 주인공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들과 파티에 가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는지 깨닫는 부분인데요. 그때 시간이 붕괴되는 개념을 이해했고 이를 통해 제가 작업을 하면서 느낀 감정도 많이 바뀌게 되었어요.
N: 최소한의 몸짓으로 누군가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결과물이 실제 그들과 얼마나 똑같이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잘 포착한다고 할까요. E: 작품에 공기와 여백을 많이 남겨두는 편이에요. 그림을 완전히 끝내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그림자 하나하나를 모두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 어깨를 툭 치며 지적할 상사는 없으니까요. 모든 게 저에게 달려 있죠.
N: 당신은 기본적으로 화가라고 생각하지만, 아름다운 데생도 하고 판화, 수채화도 작업하죠. 다른 종류의 미디어도 본인에게 중요한 분야인가요? E: 아주 중요해요. 때로 유화 작업이 힘들 때는 한 가지 색이나 선으로 줄여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를 약간 느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전혀 다른 종류를 다루면 부드러움이랄까, 또 다르게 푹 빠져 열중하게 되는 무엇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 작업을 오가며 그리는 걸 좋아해요.
 
Elizabeth Peyton, 〈After Michelangelo〉, 2017. Ringier Collection, Switzerland. ⓒ Elizabeth Peyton

Elizabeth Peyton, 〈After Michelangelo〉, 2017. Ringier Collection, Switzerland. ⓒ Elizabeth Peyton

N: 당신의 작업엔 굉장히 즉흥적인 구석이 있어요. 대단한 노동의 결과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알고 있기론 모든 작품이 힘겹고 어렵게 완성된다고 알고 있어요. E: 맞아요. 애쓰지 않은 듯한 느낌은 오랜 시간 누군가를 관찰하는 데서 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급하고 열정이 샘솟기도 하지만, 그 후에 작품을 실제로 만들 때까진 몇 달, 몇 년이 걸리기도 하거든요. 초상화가 거의 끝날 즈음, 그러니까 작품이 피사체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곤 해요. 그러면 ‘작품이 거의 다 완성됐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죠.
N: 같은 주제를 몇 년에 걸쳐 여러 번 그린다는 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강아지, 특정한 인물들, 그리고 자신이라든지. 같은 주제로 돌아가서 다시 그 대상을 바라보면 뭔가 더해지는 것이 있나요? E: 그럼요.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을 좀 더 친밀하게 드러낼 수 있거든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제가 그림에 늘 목말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누구나 변하잖아요. 그런 변화는 참 아름다워요.
N: 전시를 통해 확실하게 깨닫는 바는 유명한 사람의 사진에서 출발해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물은 매우 개인적이라는 것일 텐데요. 은밀한 헌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E: 그렇죠. 제가 명사를 그리는 이유는 명확해요. 그들이 가진 명성에 혼돈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실은 명성의 중요한 본질을 잊고 있어요. 개개인은 그들이 하는 일로 알려지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지요.
N: 그럼 자신에 대한 명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E: 제가 어디쯤 있는지, 혹은 저의 기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등 제 자신에 대한 것은 작업을 통해 충분히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뭔가 더할 필요는 못 느껴요. 요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는 걸 보면 약간 혼란스러울 정도예요.
N: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 자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솔로 전시 데뷔가 갤러리에서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뉴욕에 있는 첼시 호텔에서 선보이셨죠. 런던에서의 첫 전시는 브릭스톤에 있는 프린스 앨버트 펍이었고요? E: 저는 제 그림들이 갤러리 공간 밖에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저는 저의 작업들이 사람들이 실재하는 공간에 있기를 바라요. 그래야 누구나 접할 수 있으니까요.
N: 당신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장르를 엮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보통의 시간과 맥락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E: 이 모든 것의 중심은 그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제 자신이라는 거예요. 모든 것은 그곳으로부터 출발하고 또 밖으로 나가는 것이죠.
 
니컬러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은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의 디렉터이다.
 
«Elizabeth Peyton: Aire and Angels» 전시는 2019년 10월 3일부터 2020년 1월 5일까지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열렸다.(www.npg.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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