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새벽 한 시 반, 아무런 증상이 없는 나 또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보건당국의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들의 결과는 음성. 잠든 아이들로부터 당장 떨어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화기 너머로 숨 가쁘게 들려왔다. 잠들기 전이면 꼭 엄마를 찾는 첫째 그리고 모유를 먹는 둘째와 어찌 떨어져 지내야 하나. 걱정에 손이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급하게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데리러 집으로 오셨고, 나는 구급차를 타고 음압병동으로 이송되었다. 그날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날을 지샜다. 아이들 걱정에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붙어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유를 먹이고 안아준 시간, 뽀뽀를 해준 순간, 서로 마주 보고 들숨 날숨을 내쉬며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동안 아이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시켰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며칠은 악몽 같은 하루였다.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단 가족과의 갑작스러운 격리와 추가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병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내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달리 생각하면 적어도 아이들과 친정엄마는 음성이지 않나. 증상이 없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이 음성임에 감사하고, 우리 부부로 인한 확진자가 없음에 감사하고,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하고, 확진 소식을 빠르게 확인해준 보건소에 감사하고, 나를 챙겨주는 의료진에 감사하고, 따뜻한 연락을 남겨준 지인과 응원의 댓글을 달아준 익명의 이웃들에게 감사하다. 코로나로 인해 하나 배운 점이다. 사소했던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고령의 부모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이웃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지 돌아본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확진자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구호대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의 마음은 어떨지 살펴본다. 내가 처한 상황에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들을 생각하니, 비록 몸은 병원에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이미 격리해제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진짜 격리해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의료진은 나의 코로나 완치를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해줬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때론 유머로, 때론 위로로 나를 챙겨준 의료진들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조심스러운 부탁에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구해다 주시기도 했다. 의료진이 내게 베풀어준 ‘병실이 빛나는 친절의 마법’이 내 안에서 코로나가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정말 감사했다.
나는 전 세계 1백만 명의 확진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증상이 없거나 독감 수준에 그치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지만 아이들은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심각한 경기침체로 사람들의 일자리와 생계가 위협당하고 있다. 상춘객을 막기 위해 유채꽃밭을 갈아엎었고 벚꽃 축제는 문을 닫았다. 가슴 아프지만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버리게 내버려둘 순 없다.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배워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감사한 일을 찾아내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28일간의 내 격리생활에도 마침내 좋은 소식이 왔듯이, 모두가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가 소중한 사람들과 꽃향기를 만끽할 그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