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에게 듣는 구찌 전시의 뒷 이야기

조용한 주택가의 상가 건물이나 소란스러운 시장 한복판에 숨어 있는 작은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간들이 품고 있는 무한한 사유를 탐험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 구찌가 함께하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전은 현실에 자리 잡은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안내한다.

BYBAZAAR2020.04.25
 

Journey to Space

몇 년 전 아트 바젤 행사에서 만난 현지 미술인이 소개해준 홍콩의 작은 미술 공간을 찾아간 적이 있다. 주소지에 도착하였으나 어두컴컴한 골목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무정한 택시 기사를 원망하며 한참 동안 서성이다가 다시 우버 앱을 켜는 순간 허름한 건물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걸어 나왔다. 그 건물 지하 공간에 내가 찾던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본 이름 모를 아티스트의 실험적인 전시와 밤늦게까지 이어진 파티는 그 해 홍콩에서 본 아트 바젤 행사나 국제적인 갤러리에서의 파티보다 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시 내용도 내용이지만 거친 공간과 의외의 장소성이 만들어내는 야성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기 때문일 거다. 비슷한 경험을 뉴욕에서도, 베를린에서도, 서울에서도 했다. 대안 공간, 독립예술 공간, 신생 공간 등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을, 대안적 성격을 띠는 예술 공간은 어느 도시에나 있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찾아가면 언제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대체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자리 잡은 이 공간들은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비평적인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를 전개한다. 진보적인 담론이 오가는 미술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와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990년대 말 이후로 서울에도 많은 대안 공간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 공간들에서 만들어진 담론과 의미 있는 소음, 예술을 향유하는 새로운 태도는 어떤 형태로든 남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 곳곳에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는 진보적인 공간들이 있다.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4월 17일부터 7월 12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은 서울의 독립예술 공간들의 서사를 꿰어 유의미한 맥락을 만들어낸다. 동시대 한국 미술의 아카이브 기능을 하고 있는 시청각, 을지로3가의 옥탑 공간에 위치한 오브, 해방촌 시장 내 유후 공간을 지키는 스페이스 원 등 10곳의 공간들이 초대됐다. 몇 개의 레이어를 가진 이번 전시는 각 공간들이 꾸린 프로젝트와 지지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담아낸다. 또한 메리엠 베나니, 올리비아 에르랭어, 세실 B. 에반스, 이강승, 마틴 심스 등 대안적인 미래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켜주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한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간들의 서사가 서울의 대중적인 미술관 중 하나인 대림미술관에서 가시화된다는 것, 그리고 이 전시를 패션 브랜드 구찌가 기획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지점이다. 진보적인 예술관을 가지고 있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지한다.
 
Olivia Erlanger, Ida, Ida, Ida!, 2020.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Olivia Erlanger, Ida, Ida, Ida!, 2020.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미셸 푸코는 이상적이지만 현존하지 않는 유토피아에 맞서는 개념으로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유토피아를 뜻하는 헤테로토피아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아이들이 뛰노는 다락방이나 엄마 아빠의 침대, 묘지, 사창가, 휴양촌 등의 장소를 예시로 언급하며 산발적인 장소에서 발생하는 해방적인 행위들이 풍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을 큐레이팅한 미리암 벤 살라 역시 독립 예술 공간들이 가진 대안성을 도구로 삼아 현시대가 도모해야 할 다른 공간(Other Space)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펼쳐져 있는 무수히 많은 시공간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공간은 무엇인지 사유하게 만든다.  
 
Photo: Nicolas Cotton

Photo: Nicolas Cotton

이 공간에서 그 장소로
팔레 드 도쿄의 기획 프로젝트부터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발행하는 잡지 편집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전개해온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Myriam Ben Salah)는 어떤 발상이 지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이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위대한 사상가 마크 피셔가 ‘대중적 모더니즘(popular modernism)’이라 칭한, 주류와 전위성, 대중문화와 아방가르드한 시도가 마찰하는 지점에 항상 끌리곤 한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이 지점을 탐구한다.
 
Lee Kang Seung, Covers (QueerArch), 2019/2020; Untitled (Diary), 2020. 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Lee Kang Seung, Covers (QueerArch), 2019/2020; Untitled (Diary), 2020. 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찌라는 브랜드와 나눈 예술적 비전은 무엇이었나? 
구찌가 작은 독립예술 기관들의 의미를 가시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술이 존재하는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발상이 생성된 곳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스며들 수 있게 한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옷에는 ‘대안’의 요소들이 이미 들어 있다. 그는 장르와 젠더 사이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 급진적인 자기 표현 방식, 시대를 초월한 인류학적 매니페스토를 패션의 전면에 내세운다. 사회적, 윤리적 진보라는 큰 틀 안에서 예술의 잠재력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의 비전을 병치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서울의 아트 신을 돌아보며, 특별히 흥미롭게 느낀 풍경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리서치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동시에 한 도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서울의 신생 공간들이 과거처럼 삼청동이나 청담동 같은 갤러리 지구에 모여 있지 않고 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상업 지역뿐만 아니라 주택가를 점거하기도 하고, 시장, 오래된 쇼핑센터, 식당 건물, 심지어 공업 지역까지 잠입했다. 예를 들어 해방촌에 있는 독립예술 공간 스페이스 원에 가기 위해서는 카페, 오락실, 빵집 등이 공존하는 시장을 거쳐야 한다. 예술작품을 신성시하는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와는 달리, 일상과 혼재되어 있는 공간은 작품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돕는다.  
Martine Syms, Notes on Gesture, 2015.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Martine Syms, Notes on Gesture, 2015.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이 공간들에서 얻은 구체적인 영감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요즘 같은 시기에는 ‘대안 공간’, 혹은 ‘다른 공간’에 대한 정의가 보다 폭넓은 의미의 은유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 속에서 대안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의미든, 정신적인 의미든, 소위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도전하는 공간들 말이다. 대안 공간은 예술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예술은 다른 무언가의 가능성,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소비하는 소음에 대한 저항의 행위,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규범과 사회적으로 통제된 행동 사이에서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낸다.
Jun Hyerim, Nothing is There Though #2, 2019; Perfect Skin, 2018; part of "Index of Six Sides" by Hapjungjigu.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Jun Hyerim, Nothing is There Though #2, 2019; Perfect Skin, 2018; part of "Index of Six Sides" by Hapjungjigu.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이번 전시에서 공간(Space)과 장소(Place), 그리고 다른 공간(Other Space)이라는 개념은 각각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전시 제목에서 ‘공간’은 독립예술 공간, 대안 공간을 정의하는 동시에 그곳에서 발생한 사유를 ‘다른 공간’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며 소수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다른 공간’은 인간과 비인간, 지구와 우주 사이에서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새로운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장소다. 공간의 추상성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 구체화된 형태로 바뀐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은 그 장소로의 초대장이다. 대안 공간이 가지는 은유적인 의미가 하나의 실이 되어 다른 공간으로부터 온 다른 현실을 꿰어내는 연결선이 되었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소개되는 모든 작품이 하나의 발상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해석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다양한 명제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하게 한다.  
Yunjung Lee, Tongue Gymnastics, 2020; exhibited by d/p.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Yunjung Lee, Tongue Gymnastics, 2020; exhibited by d/p.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View of ’Psychedelic Nature: Natasha and Two Yellow Pieces“ exhibited by BOAN1942.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View of ’Psychedelic Nature: Natasha and Two Yellow Pieces“ exhibited by BOAN1942.Exhibition view, No Space Just a Place, Daelim Museum, Seoul (2020)

이번 전시의 많은 프로젝트들은 인간이 다른 인간, 환경, 시스템과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지는 공간을 보여준다. 당신은 연대의 힘을 믿는 쪽인가? 
나는 연대의 힘을 굳게 믿는다. 인간이 연대를 통해 얼마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지 보면서 언제나 감명을 받는다. 이러한 일은, 더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지만, 보통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연대의 힘을 보며 크게 감명받은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2011년 튀니지혁명 이후,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이다. 권력 체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서로 힘을 합쳐 일을 성사시키는 인간의 능력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마치 연대가 동물적 본능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와 이웃의 인간성은 최후까지 살아남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 구찌가 함께하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 전은 2020년 4월 17일부터 7월 12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지선은 다방면에 대한 글을 쓰는 동시에 한국 예술의 현장을 기웃거리는 미술 애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