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 디자이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를 만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패션 하우스 발렌티노를 짊어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위대한 사상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자신의 아름다운 시적 비전을 알리기 위한 세심한 작업에 돌입했다. | 피에르파올로,발렌티노,발렌티노 스튜디오,로댕,예술

 ━  THE THINKER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1903)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의상은 모두 Valentino. 액세서리와 주얼리는 Valentino Garavani. 평소와는 다른 잿빛의 6월, 대리석 결 같은 구름들로 채워진 파리 하늘 아래 쉰두 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생각에 잠긴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잔뜩 찡그려 주름이 생긴 눈썹, 주먹 위에 올려진 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흉내내고 있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로댕의 옛 본가 정원, 청동 주물이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피치올리의 2020년 봄 멘즈웨어 쇼가 열린 이튿날이었고, 가을 오트 쿠튀르 쇼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생각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포즈는 어딘지 자기 모순적이지 않나. 피치올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그의 작업이야말로 아트와 문학 작품을 자주 참고하는, 지극히 지성적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의 명문 패션 스쿨 에우로페오(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전향하기 전인 1980년대, 로마에 위치한 사피엔차 대학(Sapienza University of Rome)에서 공부했던 시절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다. 아니, 아마도 영혼으로 말이다. “저는 본능을 따라가요.” 그가 말했다. “저는 사람들의 관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빅터 휴고에 바치는 동상’, 1900년경. 원래 로댕은 웅크린 채 생각에 잠긴 이 작품을 ‘시인’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피치올리에게 해당하는 표현이다. 그의 상상력에도 시적인 터치가 있으니까. 밝고 선명한 컬러의 로마네스크 프레스코화에서 펼쳐지는 시폰과 리본,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태피터와 타조 깃털이 그 예다. 그의 레디투웨어 역시 시적인 면이 있는데, 단적으로 2019 가을 컬렉션이 그러했다. 로마의 거리(발렌티노 스튜디오가 그곳에 있었다)를 익명으로 점령했던 이탈리아 단체 ‘시 해방을 위한 운동’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았다고. 요염하게 포옹하고 있는 네오클래시컬한 동상, 꽃, 텍스트의 단편들을 자르고 붙인 모티프가 의상에 장식되었다. 프린트의 경우, 컬트적인 일본 브랜드 언더커버의 준 다카하시와의 컬래버레이션 결과였다.(피치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와의 ‘대화’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1월 멘즈웨어 쇼에서도 함께한 바 있는 그는 발렌티노 남성과 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한층 발전시켰다. 그들을 ‘불운한(그리고 옷을 잘 차려입은) 연인’으로 만들었다. 이 타이틀은 무스타파 더 포잇(Mustafa the Poet)의 퍼포먼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키스’, 1887년. 런웨이에 준비된 모든 좌석에 피치올리는 <발렌티노 온 러브(Valentino on Love>라는 제목의 시집을 한 권씩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무스타파를 비롯해 이르사 달리-와드(Yrsa Daley-Ward), 로버트 몽고메리(Robert Montgomery), 그레타 벨라마치나(Greta Bellamacina)(후자의 둘은 커플이기도 하다)의 작품이 담겨 있다. 런웨이 뒤로는 몽고메리가 쓴 시의 후렴구가 환하게 밝힌 조명 장치가 되어 걸려 있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신 안에서 유령이 된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The people you love become ghosts inside of you and like this you keep them alive.)” “시와 쿠튀르는 클래식하게 여겨질 수 있어요.” 피치올리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발렌티노에서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고 싶었어요. 시도 대중적인 언어이자 더 현대적으로 될 수 있죠. 가끔은 아주 잘 알려진 것들에 신선한 관점을 심어주고 싶어요.”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저 예쁘게만 보이길 바라지 않고, 열정을 더하고 싶었어요.”   ‘휘슬러에게 헌사하는 동상, 팔 없는 발가벗은 뮤즈’, 1908년. 나는 피치올리에 대해 스스로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음울하고, 심각하며 진지한 사람으로 말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진지한 사람이지만.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패션 하우스 중 하나인 발렌티노에서 일 년에 여덟 차례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방대한 업무를 치열하게 소화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와 함께 브랜드를 이끌어왔다. 2016년 그녀가 디올 여성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떠난 이후 피치올리는 발렌티노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 그의 재능 넘치는 작품은 세계적인 극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피치올리는 광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발렌티노 공방의 기발한 기술력이 담긴 놀라운 컬렉션을 통해 여성과 패션 그 자체에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가장 흥분되었을 때는 파리 쿠튀르 위크의 막바지, 호텔 살로몽 드 로스차일드의 살롱에서 피치올리의 비전이 펼쳐지는 순간을 목도한 저녁이었다. 피치올리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예를 들면 쿠튀르라든가 로마)에 대해 물었을 때 쏟아지는 대답을 들으면 그 자체로 순수한 시다. “로마는 다른 도시와 매우 달라요.” 그가 말한다. “수많은 시대, 도시를 바꾼 많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죠. 파솔리니(Pasolini, 영화감독이자 시인), 가톨릭, 바로크 천사,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이교주의를 볼 수 있어요. 로셀리니(Rossellini, 이탈리아의 이집트 학자), 치네시타(Cineccittà, 로마 근교의 영화 도시), 그리고 펠리니(Fellini,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의 느낌을 모두 받을 수 있죠. 안토니오니(Antonioni, 영화감독)의 외로움, 특유의 멜랑콜리함을 느낄 수 있고요. 그렇지만 로마 제국의 웅장함도 여전해요.” 하지만 그가 엮어내는 서정주의, 그리고 놀라운 의상의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그 자체는 평범한 남자다. 재미있고, 잘난 체하지 않으며 관대하고 친절하다. 그의 몸엔 세 개의 타투가 있는데, 한쪽 팔엔 세 명 자녀의 이니셜이, 가슴 위에는 그의 아내 시모나(Simona)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장 최근 추가한 건 허벅지에 새긴 호랑이. 심지어 그는 이탈리아의 패션 수도 밀라노에 살지도, 하물며 로마에 살지도 않는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본부가 있는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에서 남쪽으로 40마일 정도 떨어진 네투노(Nettuno) 지역에 거주한다. 이곳은 우아함의 대명사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가 메종 발렌티노를 설립한 7년 뒤인 1967년, 그가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1999년 당시 펜디에 있던 피치올리와 치우리를 발렌티노의 액세서리 팀으로 스카우트한 것은 가라바니로 알려진 미스터 발렌티노였다. 패션, 특히 쿠튀르에 대한 가라바니의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대단했다. 여섯 살 때 그는 어머니가 보타이를 매라고 강요하자 그것을 매우 조잡하다 생각해 몹시 짜증을 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일화나 출처가 불분명한 소위 떠도는 이야기는 피치올리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발렌티노는 오트 쿠튀르에 있어 매우 독점적인 브랜드죠. 여기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 곧 꿈의 일부예요.” 그가 말한다. 수많은 팔라초와 샤토, 요트를 소유한 미스터 발렌티노의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그것이 맞는 얘기다. “제가 생각하는 럭셔리한 인생의 방식은 한적한 바다 옆에 사는 것이에요.” 웃으며 그가 말했다. “원대한 목표가 있다면 럭셔리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죠.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로요.”   오귀스트 로댕 작품 ‘휘슬러에게 헌사하는 동상, 팔 없는 발가벗은 뮤즈’, 1908년, 청동 소재. 그것이야말로 피치올리를 매혹시키는 아이디어이며, 발렌티노에서 미시적, 그리고 거시적으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특별한 동기로 작용한다. 그의 쇼는 웅장한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손의 감각, 즉 패션의 기교 속에 녹아 있고 동시에 현실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데이웨어란 것은 제게 스트리트 웨어를 의미해요.” 그가 설명한다. “저는 각각의 의상이 자신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그는 가을 컬렉션을 다시 거론했다. 날카롭게 재단된 오버코트와 스웨트셔츠 등 스포츠에서 영향을 받은 실용적인 피스에 시적인 상상을 녹여냈다. 과거 발렌티노의 유산 중 꿈결같이 흘러내리는 시폰 드레스에 펼쳐진 것과 같은 종류의 우아함이 깃들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제 생각은 다양성에 있어요. 그에 반해 미스터 발렌티노의 생각은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지요.” 피치올리가 말한다. “저는 어떤 룩을 제공한다기보다는 의상을 제안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다른 점은 이상적인 여성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죠.” 여전히 피치올리의 비전은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미스터 발렌티노와 지아메티는 그의 컬렉션을 칭송하기 위해 가장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종종 촉촉히 젖은 눈이 목격되곤 하는 등 마치 부모처럼 후계자를 자랑스러워 한다. 사실 창립자들이 비즈니스에서 손을 뗀 이후 후계자와 감성적인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눈앞에서 굉장한 칭송을 드러내는 사례는 더 그렇다. 이러한 모습은 재미있게도, 우리 모두가 사랑한 것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발렌티노 런웨이에 걸린 몽고메리의 표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오늘날의 발렌티노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는 로댕처럼 생각에 잠겼다. “삶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제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현실을 마주하는 거예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그를 만난 후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 조각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았다. 로댕이 조각한 사람은 엄청난 추진력을 지닌, 건장한 체격을 갖춘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멋진 남자였다. 어쩌면 피치올리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그를 훨씬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