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NKER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1903)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의상은 모두 Valentino. 액세서리와 주얼리는 Valentino Garavani.
그러고 보니 이 포즈는 어딘지 자기 모순적이지 않나. 피치올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그의 작업이야말로 아트와 문학 작품을 자주 참고하는, 지극히 지성적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의 명문 패션 스쿨 에우로페오(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전향하기 전인 1980년대, 로마에 위치한 사피엔차 대학(Sapienza University of Rome)에서 공부했던 시절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다. 아니, 아마도 영혼으로 말이다. “저는 본능을 따라가요.” 그가 말했다. “저는 사람들의 관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빅터 휴고에 바치는 동상’, 1900년경.

‘키스’, 1887년.

‘휘슬러에게 헌사하는 동상, 팔 없는 발가벗은 뮤즈’, 1908년.
피치올리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예를 들면 쿠튀르라든가 로마)에 대해 물었을 때 쏟아지는 대답을 들으면 그 자체로 순수한 시다. “로마는 다른 도시와 매우 달라요.” 그가 말한다. “수많은 시대, 도시를 바꾼 많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죠. 파솔리니(Pasolini, 영화감독이자 시인), 가톨릭, 바로크 천사,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이교주의를 볼 수 있어요. 로셀리니(Rossellini, 이탈리아의 이집트 학자), 치네시타(Cineccittà, 로마 근교의 영화 도시), 그리고 펠리니(Fellini,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의 느낌을 모두 받을 수 있죠. 안토니오니(Antonioni, 영화감독)의 외로움, 특유의 멜랑콜리함을 느낄 수 있고요. 그렇지만 로마 제국의 웅장함도 여전해요.”
하지만 그가 엮어내는 서정주의, 그리고 놀라운 의상의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그 자체는 평범한 남자다. 재미있고, 잘난 체하지 않으며 관대하고 친절하다. 그의 몸엔 세 개의 타투가 있는데, 한쪽 팔엔 세 명 자녀의 이니셜이, 가슴 위에는 그의 아내 시모나(Simona)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장 최근 추가한 건 허벅지에 새긴 호랑이. 심지어 그는 이탈리아의 패션 수도 밀라노에 살지도, 하물며 로마에 살지도 않는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본부가 있는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에서 남쪽으로 40마일 정도 떨어진 네투노(Nettuno) 지역에 거주한다. 이곳은 우아함의 대명사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가 메종 발렌티노를 설립한 7년 뒤인 1967년, 그가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1999년 당시 펜디에 있던 피치올리와 치우리를 발렌티노의 액세서리 팀으로 스카우트한 것은 가라바니로 알려진 미스터 발렌티노였다.
패션, 특히 쿠튀르에 대한 가라바니의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대단했다. 여섯 살 때 그는 어머니가 보타이를 매라고 강요하자 그것을 매우 조잡하다 생각해 몹시 짜증을 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일화나 출처가 불분명한 소위 떠도는 이야기는 피치올리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발렌티노는 오트 쿠튀르에 있어 매우 독점적인 브랜드죠. 여기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 곧 꿈의 일부예요.” 그가 말한다. 수많은 팔라초와 샤토, 요트를 소유한 미스터 발렌티노의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그것이 맞는 얘기다. “제가 생각하는 럭셔리한 인생의 방식은 한적한 바다 옆에 사는 것이에요.” 웃으며 그가 말했다. “원대한 목표가 있다면 럭셔리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죠.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로요.”

오귀스트 로댕 작품 ‘휘슬러에게 헌사하는 동상, 팔 없는 발가벗은 뮤즈’, 1908년, 청동 소재.
여전히 피치올리의 비전은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미스터 발렌티노와 지아메티는 그의 컬렉션을 칭송하기 위해 가장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종종 촉촉히 젖은 눈이 목격되곤 하는 등 마치 부모처럼 후계자를 자랑스러워 한다. 사실 창립자들이 비즈니스에서 손을 뗀 이후 후계자와 감성적인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눈앞에서 굉장한 칭송을 드러내는 사례는 더 그렇다. 이러한 모습은 재미있게도, 우리 모두가 사랑한 것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발렌티노 런웨이에 걸린 몽고메리의 표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오늘날의 발렌티노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는 로댕처럼 생각에 잠겼다. “삶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제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현실을 마주하는 거예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그를 만난 후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 조각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았다. 로댕이 조각한 사람은 엄청난 추진력을 지닌, 건장한 체격을 갖춘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멋진 남자였다. 어쩌면 피치올리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그를 훨씬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