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로 '한달살기'를 원하십니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마음에 드는 지역에 몇 달이건 머물다가 또 훌쩍 떠난다. 그렇게1600일째 세계를 여행 중인 양희종은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기를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 퇴사,여행,여행자,여행지,장기여행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지 1600일이 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딱히 날짜를 세고 있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참 오래됐다.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회사는 4년쯤 지나자 지옥이 됐고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치듯 사표를 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인생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이라는 미국 서부의 4300km 긴 길을 반년 동안 걸었다. 큰 이유는 없었다. 30여 년의 인생을 돌아보기엔 그 정도의 길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긴 길을 걸으며 수많은 나와 부딪혔다. 용기가 있는 나, 용기가 없는 나, 용기 있는 척을 하는 나, 용기가 있고 싶은 나…. 조금 더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결국 난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여행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해왔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호주 등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고작 9개국밖에 여행하지 못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1~2년 안에 세계여행을 마무리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여행은 참 느렸다.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두두부부’라고 부르는데 ‘두 바퀴 자전거와 두 다리 하이킹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부부’란 뜻이다. 자전거와 하이킹 여행이기 때문에 한 지역이나 한 나라에 적게는 한 달, 많게는 수개월씩 머무르곤 했다. 어느 마을이 마음에 들면 무작정 거처로 삼았고 일이 생기면 곧장 떠났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한달살기’란 이름의 여행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여행이 한정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 데 초점이 맞춰 있었다면 ‘한달살기’는 흔히 말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여행 같았다. 굳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지 않아도, 대중적이지 않아도, 누군가는 돈 낭비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방법이었다. 기존 여행들이 가성비를 우선시 여겼다면 한달살기는 가심비를 추구한달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여행과도 비슷해 보였다. 우리의 여행을 한달살기라고 명명하진 않지만 마음이 맞는 곳에서 오래 머물며 하루하루를 즐기는 건 같으니까. 유명 관광지보다는 그들의 문화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현지 언어를 배우거나 요리나 전통춤 등 자신이 관심 있는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소셜미디어나 주변 여행자들을 통해 보고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달라 보였다. 한달살기라는 키워드만 있을 뿐 내용은 그대로에 시간만 늘린 여행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듯 명소를 가고 사람이 많다고 투덜거렸고, 굳이 로컬만 아는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가 한국인이 없다고 좋아했다.(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이미 많은 한국인이 다녀간 곳이다.) 사진과 영상을 찍고 그것을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듯 올리기 바쁘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하다고 하는 곳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때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현지인처럼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풍요롭게 살고 싶어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은 그들이 주체적으로 현지인과 같은 삶을 택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단지 이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여행자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비즈니스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느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행자는 여행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정착해 살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절대 현지인이 될 수 없었다. 오래 여행을 하며 현지인들의 생활을 눈여겨볼수록 삶과 여행은 크게 다르다는 걸 느낀다. 외국인이 여행자로 한국에서 한달을 살고 그 지역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어떨까? 여행자는 현지인처럼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사회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큰 무기가 있다. 한달살기 여행자들이 항상 ‘로컬처럼’ ‘현지인처럼’을 외쳐도 때깔 좋은 거짓말같이 느껴지는 이유다. 어느 마을에 머물다가 며칠 동안 그곳에 여행 온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조금 숫기가 없어 보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멋있게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삼각대와 셀카봉을 들고 수만 가지 포즈를 취했다.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 듯 피사체를 이리저리 옮겨놓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현지 물가로도 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같은 지역에 머무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듯했다. 그런데 나중에 우연히 그 지역 해시태그를 검색하다 그 여행자가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놀랐다. 사진에서 그 여행자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나는 내가 하는 여행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특별함을 넘어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여행하고 있는 그 순간, 우리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놓치는 듯 보였던 그 여행자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행자의 웃는 사진을 보고 누군가의 여행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식의 여행이든 결국은 행복하기 위한 것이고, 그 행복은 자기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감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며칠간의 짧은 여행으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여행지에서 남긴 멋진 사진 한 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누군가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역시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하루살기든’ ‘한달살기든’ 결국 정도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니까. 만약 당신이 짧은 여행을 선호한다면 계속 그 여행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누군가 너무 짧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 요즘 여행의 대세는 한달살기라고 말해도 자신의 선호를 떳떳하게 밝히면 좋겠다. 물론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더 궁금하다면 4300km 긴 길도 걸어보고 1600일 넘게 집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여행 방식이란 건 처음부터 정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도전과 경험에서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색을 만들어서 세상에 다양한 여행의 색이 나타나면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색을 보고 궁금해지면 나 역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듣고 싶다. 진짜 당신이 선호하는 여행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