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부터 '꽃보다 남자'까지…'재혼 황후'가 소환한 추억의 작품들
'브리저튼'과 '서프라이즈' 사이, 오글거림까지 즐기는 K-로판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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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어색한데 자꾸 다음이 궁금하다. 지난 3일 공개된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를 둘러싼 반응에는 이 묘한 감정이 자리한다. 독일의 궁전과 체코의 정원, 서양 귀족 복식을 입은 한국 배우들, 낯선 이름을 한국어로 부르는 대사와 한글로 적힌 편지까지. 글로벌 누적 조회수 29억 7천만 회를 기록한 동명의 IP를 원작으로 한 세계가 실사로 펼쳐지자, 상상할 때와는 다른 낯섦이 생겨났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흥미로운 것은 이 낯섦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몰입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누군가는 과장된 대사와 설정까지 웃고 공유하며 즐긴다. 이때 익숙한 작품들의 기억이 감상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황제 소비에슈를 연기하는 주지훈이 20년 전 황태자 이신으로 등장했던 <궁>, 비현실적인 설정과 대사마저 추억이 된 <꽃보다 남자>, 화려한 사교계의 <브리저튼>과 재연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까지. <재혼 황후>가 소환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판타지를 익숙한 기억으로 해석하며 즐기는 시청자의 모습이 보인다. 호불호 속에서도 초반 흥행 성적은 인상적이다. 디즈니+ 발표에 따르면 <재혼 황후>는 공개 후 3일 기준 역대 디즈니+ 로컬 오리지널 가운데 전 세계 최다 시청 1위에 올랐다.
<궁>에서 <재혼 황후>로, 20년 만의 황실
MBC 드라마 <궁> 스틸
MBC 드라마 <궁> 스틸
원작의 실사화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는 20년 전 MBC 드라마 <궁>(2006)을 떠올리게 한다. 박소희 작가의 인기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궁>은 모델 출신 주지훈과 걸그룹 출신 윤은혜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두 사람 모두 첫 주연작이었고, 방송 전에는 원작 속 인물을 신인 배우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현할지를 걱정하는 시선이 있었다. 그 우려는 최고 시청률 27.1%(닐슨코리아)의 인기로 치환됐고, 두 사람은 그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황태자 이신으로 시청자를 만났던 주지훈이 20년 뒤 <재혼 황후>의 황제 소비에슈로 돌아왔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그사이 원작을 영상으로 옮기는 무대도 국내 지상파에서 글로벌 OTT로 넓어졌다. 시청자를 판타지로 초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궁>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익숙한 일상에 가상의 황실을 더했다면, <재혼 황후>는 공간과 복식, 인물의 이름까지 서양풍으로 꾸민 세계에 한국 배우와 한국어를 놓는다. 눈은 서양식 궁정을 보는데 귀는 한국어를 듣는 이 조합이 낯섦의 출발점이면서 웃음의 재료가 된다.
어색함이 화제가 될 때, <꽃보다 남자>의 기억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스틸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캐릭터 포스터
<재혼 황후>에서는 다소 과장된 설정과 대사마저 화제성의 불씨가 된다. 근엄한 표정으로 쏟아내는 궁정식 화법과 낯선 호칭들은 자연스레 KBS <꽃보다 남자>(2009)의 시절을 소환한다. 구준표(이민호)의 시그니처였던 소라빵 머리와 비현실적인 대사들이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판타지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이었듯, <재혼 황후>를 향한 시선 역시 팽팽히 맞선다. 몰입을 흩뜨리는 어색함과 판타지의 묘미를 살리는 장치 사이에서 평가가 갈리는 셈이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일각에서는 <꽃보다 남자>와 <미남이시네요>(2009), <상속자들>(2013)의 시대를 통과한 시청자라면 이미 충분한 '내성'을 갖췄다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온다. 일상에서는 낯간지러운 말이라도, 서사 안에서 인물의 감정과 관계가 켜켜이 쌓이면 문득 설득력을 얻는 법이다. SNS의 짧은 클립으로 볼 때 실소가 터져 나오던 장면이, 막상 본편의 호흡 속에서는 자연스레 읽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짤로 보면 이상한데 통으로 보면 은근히 빠져든다"는 시청 후기는 그 오묘한 감상을 명확히 짚어낸다. 오글거린다는 감각과 재미있다는 몰입은, 한 사람의 시선 안에서도 얼마든지 유쾌하게 공존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와 '브리저튼' 사이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4> 스틸
비주얼을 두고도 시선은 엇갈린다. 독일의 궁전과 체코의 정원, 화려한 무도회 풍경에서 넷플릭스 <브리저튼>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양 귀족 복식과 한국어 대사가 어우러진 모습에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재연극을 연상하는 이들도 있다. 같은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판타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연극의 기시감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그러나 낯선 외관 안에는 익숙한 갈등이 있다. 황제 소비에슈(주지훈)는 도망 노예 출신 라스타(이세영)를 정부로 들이고, 황후 나비에(신민아)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나비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서왕국 왕자 하인리(이종석)와의 재혼 승인을 요구한다. 불륜과 배신, 이혼과 재혼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격랑은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황실의 이름과 예법은 낯설어도, 배신에 분노하고 주인공의 반격을 기다리는 마음은 익숙하다. 이 익숙한 감정이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 된다.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 스틸
20년 전의 <궁>도, 17년 전의 <꽃보다 남자>도 방송 전후 쏟아졌던 우려와 어색함의 시선을 통과해 결국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기억으로 남았다. <재혼 황후>가 그 계보를 온전히 이어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생경한 어색함마저 유쾌한 웃음과 도파민으로 소비하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분명 뜨겁다. 총 10부작 중 남은 6회는 11일부터 매주 수요일 두 편씩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다.
Credit
- 사진 / 디즈니+·KBS·MBC·SBS·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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