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출생 뮤지션 에피(Effie)의 흥미진진한 세계
에피가 내년 초 공개될 새 앨범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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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fiE on rEpeat. art ovEr fxxkin’ EvErything.
21세기 출생 아티스트 에피(Effie)의 흥미진진한 세계.
에피가 착용한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은 Maison Margiela. 반지는 Bell & Nouveau. 목걸이는 아티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2025기침’)”가 2025년을 대표하는 라인이라는 의견에 동의해요.
에피 유난히 인터뷰에서 이 가사에 대한 질문이 많은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저 포함 그들이 20세기 출생이니 흥미로울 수밖에요.
에피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개인 면담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을 화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이 “그럼 저는 21세기 출생이고 선생님은 20세기 출생이네요”라고 말했어요. 1986년생인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엄청 언짢아 하셨어요. “그런 말은 기분 나쁘니까 어른들한테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었죠. 제 앨범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이하 <pullup to busan>)이 잘됐잖아요. 예전에 저를 무시하던 아티스트가 갑자기 피처링을 부탁하고, 몇 년 동안 제 연락을 무시하던 관계자가 뒤늦게 음원료를 돌려주더라고요. 철이 안 든 멍청한 인간들, 이 업계의 어른이랍시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 짜증 났어요. 가사에 저를 괴롭힌 누구누구 꺼져라고 말하는 것보다, ‘20세기 출생’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가장 긁힐 것 같았어요. 그래서 쓰게 됐어요. 한국에 세대 간 갈등이 심하잖아요. 제 가사가 거기에 이용되기도 하더라고요.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는 현상이 마음 아프긴 한데… 뭐 그렇다고 앞으로 제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요.
하퍼스 바자 모 경제지에서 “에피의 앨범에는 기존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던데, 수긍해요?
에피 아뇨.
하퍼스 바자 에피가 생각하는 기존 세대란 무엇인가요?
에피 언더그라운드란 메인 스트림으로 가고 싶지만 못 가는 상태가 아니라, 자본이나 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길을 개척하는 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밖에서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에피를 아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기존 세대에겐 어떤 TV 프로그램에 나와야만 성공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무리 유명해도 제가 안 듣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의 피처링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하퍼스 바자 말하자면 에피는 사운드클라우드 세대죠. CD 세대와 무엇이 다를까요?
에피 이전 세대는 뭐랄까, 인맥 중심의 내수 시장 같은 느낌? 어떤 레이블에 누가 들어왔다, 는 사실 자체로 주목받았잖아요. 반면 사운드클라우드에는 누구나 음악을 올릴 수 있어요. 음악이 좋으면 주목받을 수 있고 해외 아티스트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무궁무진하고요. 글로벌해진 거죠.
하퍼스 바자 2025년 3월 <E>, 8월 <pullup to busan>을 낸 뒤 피치포크에서 호평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 존 캐러머니카의 ‘2025 올해의 음반’ 1위, NME 100, 한국대중음악상 최다 후보에 오르는 사건이 이어졌어요. 1년 반이 어떻게 지나갔나요?
에피 19살에 첫 앨범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음악만 발전시킨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한동안 남의 음악을 못 들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은 회복의 과정이었고 즐거웠거든요. 지금의 방식이 흐트러질까 외부의 반응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적어도 막걸리(‘MAKGEOLLI BANGER’)는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에피 다들 제가 파티와 술을 좋아하고, 잘 놀고, 외향적일 거라 생각하더라고요. 스무 살에 서울에 상경한 뒤 파티에도 다녀보고, 술도 마시고 ‘이게 맞는 건가?’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봤는데 불편하더라고요. 내가 나를 잘 지켜나가야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요. 저는 그냥 친한 친구들이랑 작업실에서 영화 보는 게 더 잘 맞아요. 20대의 절반 정도 보냈는데요. 유명한 사람이 되어 겪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인간으로서 인생을 좀 경험하고 싶어요. 그래야 제 음악도 성숙해질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성숙한 음악이라고 하니 가늠은 안 되네요. 지금의 음악은 딱 에피 나이에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잖아요.
에피 음악을 만들고 인터넷에 목소리와 모습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빨리 죽을 것 같아서였어요. 열아홉 살 때부터 제 모습이 1년마다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티스트는 그 나이에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음악을 만들죠. 매해 달라질 테고 그게 곧 성숙 아닐까 싶어요. 그때그때 저 김나현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나 되고 싶은 모습을 에피로 드러내는 것 같아요. 아주 내면적이고 솔직하게요. <E>는 제 안의 소녀다운 자아를 극대화했고, <pullup to busan>은 분노의 에너지를 담았고요.
하퍼스 바자 다음 앨범에서는 어떤 면을 꺼내나요?
에피 일단 트랙 수가 17개고요. 제가 2002년생인데 정말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2002년생이네, 월드컵 베이비네”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영의 ‘누나의 꿈’ 2002 월드컵 리믹스를 듣다가 그거에 꽂혀서 트랜스 EDM 음악으로 만들어봤어요. 부산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과 외할머니와의 관계를 담은 트랙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버겁지 않게, 원래 쓰던 가사처럼 재미있게 풀어낸 앨범이에요. 2002는 특별한 숫자 같아요. 반으로 접으면 포개지잖아요.
하퍼스 바자 2002년 출생의 궤적을 서사로 두고,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얘기죠?
에피 맞아요. 그동안은 뮤직비디오도 아이폰이나 캠코더로 찍는 DIY 스타일이었는데요. 베를린에 가서 뮤직비디오도 새롭게 촬영할 거예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위켄드(The Weeknd)의 ‘Blinding Lights’ 뮤직비디오를 보고 ‘와,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톤 타미(Anton Tammi) 감독이 선뜻 연출을 맡아주었거든요.
톱은 Maison Margiela. 스커트는 9090 Girl. 반지는 Bell & Nouveau. 목걸이, 팔찌, 벨트, 가방, 슈즈는 아티스트 소장품.
톱은 Grailz. 목걸이는 Ottolinger.
하퍼스 바자 에피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본 영국 드라마 <스킨스>의 에피 스토넘(Effy Stonem)에게서 가져왔다고요. ‘불안정한데 강한’ 캐릭터에게서 본인을 겹쳐 봤나요? 아니면 닮고 싶었나요?
에피 둘 다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스무 살 이전의 삶을 생각해보면 전생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엄청나게 고민이 많았고 과거를 곱씹으며 살았어요. 불안정했고,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강해지고 싶고 단단해지고 싶었죠.
하퍼스 바자 중학교 때 괴롭힘을 당했고, 학교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요.
에피 어린 팬들이 많고, 그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의 발자취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음악을 하려고 자퇴한 건 아니거든요. 엄마와의 사이도 나빴고 학교에는 친구가 없었어요. 다들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았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자퇴했죠.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불안을 극복하고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어요. 원하는 목표를 천천히라도 좇아가면서 단단해지는 경험도 했고요. 음악은 저를 찾아가는 여정 같은 느낌이에요. 내 집이 어디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죠.
하퍼스 바자 그때 어떤 음악이 위로가 되었어요?
에피 영 린(Yung Lean)과 블레이디(Bladee)요. ‘Vanilla Sky’라는 곡이 있는데, 블레이디와 에코투케이(Ecco2k)가 함께한 곡이에요. 처음으로 심장에 닿는 곡이었고 그때부터 스웨덴 음악을 찾아 듣게 됐어요. “You and me / Heal and bleed / Free from fear / Almost real”. 솔직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시적이면서 듣는 사람에게 버겁게 다가오지 않는 가사죠.
하퍼스 바자 비프리(B-Free)의 가사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 있는 것 같아요. “뭐든지 할거면 제대로 해 / 안될것 같아도 하면 다 돼 / 돈보다 귀한건 열정과 꿈”. 촌스러울 만큼 단순한 문장인데 음악으로 들으면 진심이 느껴진달까요. 에피의 가사에서 꼽자면 이런 거요. “막걸리 pass out 얌전했었던 내가/ 막걸리 pass out 그게 편해 이 세상”.
에피 사람들은 ‘MAKGEOLLI BANGER’를 파티 같은 이미지로 소비하겠지만 예전부터 저를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듣고 울컥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2024년 말에 처음 라이브 무대를 했어요. 음악을 시작하고 꽤 지난 뒤였죠. 그전에는 클럽이나 공연, 친구들이 연 파티에서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얘졌어요. 누군가에게 저를 표현하거나 제 생각을 말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걸 극복하고 싶었고 종교는 없지만 잠들기 전에 매번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무대에서 빛나는 아티스트가 되게 해주세요’, ‘저를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게 해주세요’ 빌고 또 빌었어요. <E >를 내고 처음으로 무대에 서봤어요. 떨리긴 했지만 몇 년 동안 해온 고뇌가 무색할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죠. 세상 사는 게 이제야 조금씩 편해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하퍼스 바자 <E >를 내기 전까진 독립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꽤 고단했죠?
에피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나? 작은 인디 레이블과 계약을 논의하다가 음원도 많이 뺏기고, 그 사이에서 이상한 루머도 만들어졌어요. 어른의 세계에서 상처를 받던 와중에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자가면역 질환이 생겼어요. 얼굴과 피부를 제외한 온몸에 건선이 극심해서 2년 동안 사람도 못 만날 정도였어요. 키우던 고양이도 아팠고요. 도저히 음악을 만들 수 없어서 2년이라는 공백 기가 생겼고, 이 다음은 정말이지 모든 걸 바꿀 앨범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여성 뮤지션이라서 겪은 어려움도 있었을 듯해요.
에피 너무 더러워서 언급하기도 싫은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죠. “너는 그냥 트위치 스트리머를 해. 그럼 더 돈을 잘 벌 텐데” 같은 이야기도 들었어요. 여자 아티스트의 내면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있어요. 그런 타자화 경험이 제 음악적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쳤고요.
하퍼스 바자 본인을 ‘하이퍼팝’ 아티스트라고 규정하진 않죠?
에피 그렇지는 않죠. 한 트랙 안에서도 변칙적으로 구조가 계속 바뀌는 음악을 만드는데요. 사람들은 ‘어떤 아티스트다’라는 라벨이 있는 게 편하니까, 제가 하이퍼팝 아티스트로 굳어지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컴퓨터로 만드는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 뭐 그 정도?
하퍼스 바자 하이퍼팝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어떤 음악에 주목하고 있나요?
에피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고 있어요. 미국 LA의 아티스트 미스 글룸(Ms* Gloom)이요. 저처럼 뮤직비디오도 직접 디렉팅하는데, 비주얼은 미드센추리풍인데 음악은 완전히 익스페리멘탈이고요. SF영화 <컨택트>나 애니메이션 <파프리카>의 사운드트랙도 정말 좋아해요.
하퍼스 바자 “한국에서 아티스트를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으면 기쁘겠다”고 이야기한 적 있죠. 자기 방에서 노트북을 끌어안고 첫 곡을 만들고 있는 열일곱 살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에피 저의 경우엔 한국에서 참고할 만한 아티스트가 없었어요. ‘나랑 안 맞을 것 같은데 이 레이블과 계약해야 하나?’ 혹은 딩고 같은 곳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면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과정을 겪었어요. 다음 세대 아티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삶이 있으면 그걸 그리면서 노력, 노력, 노력.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도 되잖아요?
하퍼스 바자 지금도 본인이 빨리 죽을 것 같다고 느껴요?
에피 제가 몸이 약한 편이긴 한데,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밤도 자주 새우고요. 그래도 이제는 당장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여전히 죽는 게 무섭지는 않고요.
톱은 H&Moschino. 목걸이는 Yueqi Qi.
Credit
- 사진/ 이소정
- 헤어/ 홍현승
- 메이크업/ 임정인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 어시스턴트/ 신형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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