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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김심야는 이제 더 자주 앨범을 낼 거라고 했다

국내 힙합 앨범 중 피치포크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도그마’가 세상에 나온지 한 달, 김심야와 나눈 이야기.

프로필 by 고영진 2026.10.23

THE PRESENT TENSE


두 개의 정규 앨범 <Dog>와 <도그마> 사이의 6년 동안 김심야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재킷, 팬츠는 Recto. 셔츠는 Taille. 슈즈는 Dr. Martens. 화보에 계속 착용한 안경은 아티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정규 2집 <도그마>가 발매된 지 한 달이 지났어요. 어느 때보다 주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든 앨범이라고요. 이쯤 되면 앨범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잘한 선택 같나요?

김심야 반응을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지만 좋은 말들은 어떻게든 들리더라고요. 기분 좋았어요. 작업 방식이 괜찮았구나, 앞으로도 이렇게 해봐야겠다, 싶어요. 지금까지는 프로듀서든 회사든, 어디서 어떤 의견을 줘도 곡이 내 마음에 안 들면 절대로 발매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내 뜻대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태도였죠. 이번에는 곡을 선정하는 단계부터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아티스트 혼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무엇이 되었든 결국 협업은 필요하더라고요.


하퍼스 바자 그 결과 2020년 발매한 <Dog>와는 완전히 다른 앨범이 나왔어요. 음악에서는 화가 사라졌고 김심야에게는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김심야 그건 결혼의 영향이 커요. 성과에 대해서 더 깊게 파고든 것도 본질적으로는 결혼 때문이에요. 전 외동인 데다 어릴 때부터 유학 생활을 해서 혼자가 진짜 편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결혼은 결코 혼자가 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석가모니의 철학에도 많은 의지를 했으나, 기본적으로 마음과 생각이 열리게 된 데에는 아내의 몫이 크죠. 되게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거든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렸을 때 난 어떠한 외부적인 힘에 의해 부정적인 것들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내가 나를 가둔 건 아니었을까? 분노를, 화를 계속 재활용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아내를 만난 뒤부터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어요.

하퍼스 바자 근데 왜 꼭 지금이어야 했어요? <Dog>와 <도그마> 사이 EP나 싱글 형태로 곡을 낼 때도 팬들은 앨범 얘기뿐이었는데.

김심야 주변에서 2026년을 넘기면 진짜로 넌 은퇴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2025년이라고 하긴 했는데.(웃음)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가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요. 그러니까, 더 할 말이 없어요. 제 생각에 다음 앨범은 이번 앨범보다 가사가 훨씬 없어질 것 같아요. 사운드나 리듬에 집중하게 되겠죠. 오래 기다려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앨범에는 랩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늦어질수록 랩을 계속 덜어낼 것 같으니까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었어요.


하퍼스 바자 <도그마>는 유럽 송 캠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죠. 유튜브에 블라완, 시모 셀, 시드 림 등의 프로듀서와 함께한 과정을 담은 짧은 영상이 몇 개 올라와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때 만들었던 곡들은 대부분 빠져 있어요.

김심야 만약 유럽에서 작업했던 곡들이 앨범에 들어갔다면 느끼셨다는 변화가 덜 전달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 곡들은 지금의 제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기보단 그냥 재밌는 곡이었거든요. 근데 작업해 놓은 것들이 꽤 있어서 다음 앨범에 넣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다음 앨범에서까지 ‘나 이렇게 변했다!’ 보여주는 건 좀 이상할 것 같으니까.(웃음) 좋은 곡들이라 아깝기도 하고요.

하퍼스 바자 늦지 않게 다음 앨범을 내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김심야 앨범 작업 열심히 하기로 아내랑 약속했거든요. 지켜야죠.(웃음)

하퍼스 바자 아마 못 봤겠지만, 박찬경 작가와 협업해 만든 26분짜리 뮤직비디오에 이런 댓글이 있어요. “김심야는 이제 힙합도 음악도 아닌 어떤 예술의 틈 속으로 들어가버렸네.”

김심야 오… 못 봤습니다.

하퍼스 바자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도 비슷해서요. 아까 더 이상 하고 싶은 말도 없다고 했죠. 그렇다면 지금 김심야의 음악은 힙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심야 아닌 것 같아요. 확실히 힙합은 아니에요. 랩이라는 기술을 활용한 음악 정도.


레더 재킷은 999Humanity.티셔츠는 Taille. 팬츠는 Post Archive Faction (PAF). 슈즈는 Timberland.


재킷은 Recto. 셔츠는 Taille.


하퍼스 바자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 있어요? 음악과 삶의 키워드가 돈, 성공, 부, 명예, 여자에서 가족, 관계, 진리, 깨달음 같은 것으로 옮겨간 데에는 개인적인 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변화라는 거죠. 적어도 힙합 신에 있어서는 30대 초반은 그런 것을 느낄 만한 때 같거든요.

김심야 완전 공감해요. 어렸을 때, 힙합 신에서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내 길을 만들려고 했을 때, 전 항상 팩트가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은 아무리 찾아봐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힙합은 10대, 20대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저는 30대고 유부남이에요. <손자병법>만 펼쳐 봐도 답은 나와 있어요. 질 것 같으면 애초에 싸우지를 말아야 하죠.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때의 에너지를 발현시키는 래퍼들이 있어요. 그들은 즐겁게 하면 되는 거지만 저처럼 그게 안 되면 비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거예요. <Dog>를 발매하고 4년 정도를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썼어요. ‘김심야는 무엇인가?’부터 시작하면서.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무엇이 김심야로 하여금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나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지만 더 심심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음악에서는 분노를 동력 삼던 시절보다 더 높은 출력을 내야 하잖아요.

김심야 이게 참 난감해요. 석가모니의 철학을 열심히 실행하려면 많은 걸 내려놔야 하거든요.(웃음) 근데 내려놓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떤 욕구들까지 함께 내려놓게 돼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큰 열정이 없어요. 그렇다고 무기력한 건 아니에요. 굳이 내가 지금 일어나야 하나?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안 일어나기도 좀 그렇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명확한 동력을 찾기가 힘들어진 거예요. 다행인 건 붙잡을 게 있다는 거예요.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내와의 약속, 그리고 하나는 제가 원하는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요. 앨범 작업을 할 때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 목록을 만들어서 회사에 전달하는데요, 피치포크(Pitchfork) 덕분인지 생각보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김심야는 2018년과 2019년 프로듀서 프랭크와 결성한 힙합 듀오 XXX의 앨범으로 각각 피치포크 7점 이상의 평점을 받았다. <도그마>는 피치포크가 리뷰한 한국 힙합 음반 중 역대 최고점인 7.7점을 기록했다.) 그런 재미로 계속합니다.

하퍼스 바자 마지막 트랙 ‘Keep Counting’에 “원을 그려 다시 원점”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잔잔한 회의와 피로, 허무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지금 김심야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 곡에 다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기억에 남는 가사가 있나요?

김심야 ‘Keep Counting’의 가사가 앨범에 있는 곡 중 가장 최근에 썼으니 그런 면이 있죠.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SOTS’라는 곡에 있어요. “최고와 순간은 Past tense”.

하퍼스 바자 최고도 순간도 과거형이다?

김심야 모두가 어떤 분야에 있어 최고의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하는데, 사실 최고는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계속 갱신이 될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영원히 과거형인 거라고 생각해요. 순간과 같은 의미나 다름없는 거고요. ‘지금’이라고 뱉는 순간도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런 것처럼요.


하퍼스 바자 2018년 <바자> 인터뷰에서 한 말 기억해요? 높이 있고 싶냐, 멀리 가고 싶냐는 질문에 “높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쌓아가고 있기보단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어요.

김심야 아마 거짓말이었을 거예요.(웃음) 멋있어 보이려고 미친 듯이 쌓고 있었으면서.

하퍼스 바자 (웃음) 그럼 지금은 뭘 하고 있어요?

김심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죠. 회의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있거든요. 쌓으면 결국 남는 건 무너질 일 밖에는 없고, 나아가다 보면 좀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요. 혹은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하퍼스 바자 지금의 흐름에는 만족하나요? 방향과 속도 전부요.

김심야 완전요. 돈은 조금 더 벌면 좋을 것 같긴 한데.(웃음) 그것만 빼면 다 좋아요.


레더 재킷은 Recto. 선글라스는 Prada. 티셔츠, 팬츠,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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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Nikolai Ahn
  • 헤어&메이크업/ 장해인
  • 스타일링/ 김정은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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