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 삼청, 청담 다음으로 주목 받는 아트 스폿은? #연희동
맛집과 카페 말고, 연희동에서 꼭 들러야 할 미술관과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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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_미술관
오래전부터 미술관이 밀집한 삼청동, 글로벌 갤러리들이 자리 잡으며 새로운 문화 구역이 된 한남동과 도산공원 일대에 이어 연희동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맛집, 카페, 데이트 명소, 셀럽과 유튜버들이 사랑하는 동네 연희동에 하나 더 붙어야 할 해시태그, ‘미술관’.
연희정음
」연희동을 오래 알아왔던 이라면 연희정음의 전신인 ‘장석웅 주택’의 변천사를 기억할 것이다. 1984년 김중업 건축가가 말년에 지은 개인 주택은 그 쓰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카페와 주점이 되었다가 오래도록 기능을 멈추었다. 연희동의 정중앙, 가장 많은 인파가 거니는 곳에 안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던 주택은 2025년 ‘연희정음(正音)’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종석 대표는 1988년 연희동 골목에서 작은 라디오 수리점 ‘정음사’로 시작해 전파사 ‘정음전자’, 고치고 만드는 워크숍의 장이기도 한 ‘정음철물’을 만들어 연희동 커뮤니티를 이끌어왔다. 40여 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는 ‘바를 정(正)’ 자처럼 연희정음의 고른 바탕이 되었다. 조용한 주거지의 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활기를 품을 수 있도록 지하에는 카페와 편집숍 같은 편의 공간을 두었고, 지상 3층은 김중업 건축의 정수인 스테인드글라스가 원형의 미를 살린 전시 공간과 라이브 홀로 꾸몄다. 사방이 유리로 된 쇼케이스 같은 공간도 새로 만들었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시간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여럿 앗아갔다. 주택의 일부를 재건축해 상업 시설을 만들면서 특유의 원형 디테일과 붉은 벽돌 등 많은 것이 손상되었다. 공간을 복원하며 새로운 건축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예전 공간을 지금에 가장 어울리고 돋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예술가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음악 용어인 ‘리믹스(remix)’를 본인의 회화 작업으로 불러들였다. 작가는 리믹스가 원래 있는 음악을 단순히 섞는 모양새로 보이지만 원형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발명의 과정을 거쳐야만 보존과 고양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리로부터 시작해 과거와 현재를 고르게 접합한 연희정음은 그 리믹스를 떠오르게 한다.
연희정음은 팝업도 전시도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공간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전시를 이어왔다. 정식 개관전인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김중업 ×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은 1만8천여 명의 유료 관람객이 다녀갔고, 상업 갤러리에서 열기 쉽지 않은 건축 사진가의 개인전도 마쳤다.
조만간 일본 구타이 사조의 핵심 작가인 다나카 아츠코의 전시도 예정되어 있다. 전시 외에 9월부터 정기적인 음악감상회도 열린다. 연희정음은 갤러리라는 정의에 머무르지 않고 연희동에 살던 사람도, 연희동을 지나는 사람도 감각의 교류를 나누길 바라는 곳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
박서보미술관
」작가의 자택에서 ‘기지’를 거쳐 박서보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공간이 연희동에 자리한 지 7년이 지났다. 홍연동까지 점점이 이어진 갤러리들이 힘을 모아 연희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미술 축제를 벌인 시간 또한 동일하다. 박서보미술관의 개관은 순리대로 흘러가던 연희동의 타임라인에 다만 이정표 하나를 세운 일과 같다.
박서보미술관은 박서보재단 건물과 불과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 박서보 작가가 살아생전 작은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가까운 부지를 구한 후 점차 규모가 넓어져 미술관이라는 용도 변경에 이르렀다.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꾸렸고 평소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생활하던 터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박서보재단이 박서보의 식지 않은 온기를 느끼기 위해 찾는 손님들을 위한 환대의 공간이라면 박서보미술관은 예술가이며 연구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그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의미 깊은 개관전을 박서보 작가 혼자가 아닌 2인전으로 구성한 것에서 미술관을 한 작가의 ‘성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읽힌다. 흐엉 도딘은 1945년생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로 박서보 작가와는 성별도 세대도 성장한 문화적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반복과 수행을 통해 시간과 물질을 축적해온 박서보와 빛과 여백, 명상적 집중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구축해온 흐엉 도딘은 ‘절제’ ‘반복’ ‘수행’이라는 공통의 미학을 통해 깊은 공명을 이룬다. 두 사람 사이에는 통하는 언어 하나 없었지만 만남은 무형의 언어를 만들어냈고 오늘날로 이어졌다.
최문규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은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스페이스 Ø, 2, 3 총 3개의 전시실과 스페이스 1로 이루어져 있다. 두 작가의 전시는 각 층에서 겹겹이 쌓이다 건물 꼭대기에서 마주한다. 하늘에서 살포시 얹은 듯한 8미터 높이의 큐브는 반투명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시시각각 다른 시각을 연출한다. 박서보 작가가 세상을 떠난 2023년에 그린, 사인도 하지 못한 유작 세 점이 그 빛을 맞고 서 있다.
분위기는 큐브에서 최고조에 오르지만 재단의 수장이자 작가의 아들이기도 한 박승호 이사장은 전시관 사이 사이 마련한 조경과 야외 정원을 작가가 살아 계셨다면 가장 맘에 들어 했을 공간으로 꼽는다. 집에서 정원을 바라볼 때 그랬던 것처럼 몸을 구겨 앉은 채 한참을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54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2027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초이앤초이갤러리
」10년 가까이 삼청동에 자리했던 초이앤초이갤러리가 연희동으로 공간을 옮긴 것은 고무적이다. 독일 쾰른에 적을 두고 있는 것 또한 지금까지의 연희동 갤러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서울 분점은 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점점 낡게 된 장소를 떠나야 했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지금의 공간이다. 아침부터 동네 사람들이 몰리는 브런치 카페, 가수 이효리의 요가원이 입주해 있는 건물에서 기운 찬 에너지를 감지했다. 큰 각오나 깊은 고민 끝에 한 이동은 아니지만 박서보미술관과 김중업 건축가의 시간이 담긴 연희정음과 함께 연희동의 새로운 지각에 꼭짓점을 이루는 결과가 되었다.
오래된 주택과 콘크리트 건물, 상반된 건축물이 다리로 연결된 건물의 맨 아래 자리한 초이앤초이갤러리는 장소가 주는 자유로움과 즉흥성을 이어받았다. 좀 더 진중한 느낌이었던 삼청동 시대와 이별을 고하고 2막에 다다랐다. 그런 변화를 가장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프로젝트 ‘허튼살롱’이다. 매일 나누는 헛소리, 허튼 소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상상만 하던 것, 이야기로 나누던 것들을 무겁지 않게 풀어낼 요량으로 만들었다. 플랫처럼 반음 내려간 갤러리 입구로 가는 계단이자 벤치 역할을 하는 공간, 높고 넓은 정직한 모양의 전시실, 갤러리와 사무실 사이 자연을 담은 중정은 다양한 계획을 낳았다.
첫 번째로 독일 작가 마를론 봅스트의 한국 첫 개인전 «SIX LOVE»와 연계하여 노름마치 예술단이 작가의 회화 작품 <청혼(Proposal)> 에서 영감을 받은 신곡을 갤러리를 통해 선보였다. 시각예술과 전통음악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창작과 감상 경험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는 만석을 채웠다. 이 프로젝트는 단발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전시와 작품에서 출발한 음악적 해석과 협업을 통해 이어지며 갤러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여러 변화 속에서도 전시를 통해 한국과 유럽 신진 작가들의 안전한 다리로 기능하는 것은 여전하다. 프리즈 기간에 시작하는 전시는 한국 신진 작가를 알리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단층이지만 시원해진 공간에 3인의 작가 구기정, 박현진, 배소은의 작품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변화와 단단한 중심의 행간을 읽어보자면 초이앤초이갤러리 ‘버전 2’는 알고 가도 모르고 가도 괜찮을 호쾌한 공간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48-10
구기정, 박현진, 배소은의 3인전 «새로운 삶을 위한 미래의 비가»는 2026년 9월 30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연희동에 1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동안 연희동 붐이 온다, 왔다 했지만 요즘 가장 실감 중이다.
Credit
- 글/박의령
- 사진/ 김연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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