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놓치면 아까울 국내 전시 14

지금부터 여름까지, 미리 체크해 두어야 할 국내 전시 리스트.

프로필 by 고영진 2026.05.04

THE LIST



지극히 한국적인 삶의 얼굴들

육명심, <강원도 강릉>, <백민> 연작, 1983, Gelatin silver print, 뮤지엄한미 소장.

육명심, <강원도 강릉>, <백민> 연작, 1983, Gelatin silver print, 뮤지엄한미 소장.

한국 현대사진의 지평을 확장해온 사진가들과 만나는 시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은 네 작가의 대표작을 되짚어보는 전시다. 이들이 포착한 수많은 순간을 여전히 피어날 잠재성을 지닌 꽃봉오리로 바라본다. 1970년대 말부터 작업한 육명심의 <백민(白民)> 연작으로 문을 연다. 육명심은 소박한 민초를 제대로 기록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을 탐구했다. 박수와 무당, 사찰의 스님, 무뚝뚝하게 앉아 있는 노부부 등 우리 옛 삶의 원형을 간직한 이들의 모습을 순박하게 보여준다. 홍순태의 <청계천>과 <서울> 연작은 반세기 동안 서울이 겪어온 변화의 시간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청계천 판자촌의 생활 풍경과 산업화로 급변하는 도시를 생생히 포착했다. 뻥튀기 기계 주위를 서성이는 기다림과 청계천에서 수영하는 즐거움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한정식의 <고요> 연작은 자연의 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사유와 성찰의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고요> 작업은 피사체의 형상성을 넘어 존재의 본질에 다가간다. 전시는 박영숙의 <36인의 포트레이트> 연작으로 마무리된다. 동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을 응시하며 이들의 삶과 그 배후에 깃든 시대적 기운을 포착했다. 한국 현대사진이 축적해온 시간의 결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다.

7월 19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 본관.



빨강, 노랑, 파랑

Mary Corse, <Untitled (Red Diamond with White Inner Band)>, 2026,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179.7x179.7x9.5cm © Mary Corse, Courtesy Pace Gallery.

Mary Corse, <Untitled (Red Diamond with White Inner Band)>, 2026,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179.7x179.7x9.5cm © Mary Corse, Courtesy Pace Gallery.

80대의 노장, 메리 코스는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전 «Primary Light»의 중심을 이루는 <Diamond> 시리즈는 1960년대 중반 변형 캔버스에서 출발한 형식을 환기한다. 초기 시리즈가 백색으로 구현된 것과 달리 신작에는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내부의 띠와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선명한 색채가 도입되었다. 코스는 자신의 작업이 시작된 발단으로 돌아갔다. 작품의 근간이었던 아이디어를 새롭게 반복하면서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탐구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1960년대 말, 산업 재료인 유리 미세구체를 발견한 이후 이를 작품에 적극 활용했다. 미세한 굴절 구슬과 아크릴 물감을 결합해 주변 환경과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을 작업했다. 새로운 시리즈는 여전히 빛과 표면이 맺는 관계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메리 코스의 빛을 발산하는 색은 독특한 지각적 경험을 생성한다.

6월 5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서울.



흔들리고 꺾이는 감각

최리아, <회전문>, 2026, 구리색 종이에 커스텀, 철관, 150x 143x93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사진: Studio Jaybee

최리아, <회전문>, 2026, 구리색 종이에 커스텀, 철관, 150x 143x93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사진: Studio Jaybee

송은의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스프링 피버’에 선정된 3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와 소재가 다른 ‘3인 3색’의 작업을 각 층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2층에 전시된 김재현의 «과초점»은 일상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기록하고 각인하듯 회화로 재구성한다. 그의 캔버스는 분해된 낙엽, 얼어붙은 연못의 표면 등 자연과 인공이 교차하는 희소한 순간을 담았다. 동양화과 출신의 작가답게 먹에 유화 작업을 더해 층위를 쌓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직육면체 프레임을 전시장 내 기둥으로 확장한 설치 작업을 통해 입체와 평면을 넘나든다. 3층에 설치된 최리아의 «레드 서킷 레디»는 금속을 흉내내는 종이 매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우리 몸에 스며든 지배와 규율의 감각을 재고한다. 원형마장의 조마삭 훈련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업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내부의 운동 범위를 제한하는 펜스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전시실에 미로 같은 벽면과 통로를 만들고 종이 펜스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길들여지는 감각을 몸소 체험하게 만든다. 지하 전시실에 워크스테이션을 구축한 박지호의 «덤프»는 통계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산출하는 미래 모델의 편향성을 폭로한다. 알고리즘의 오류를 수정하기보다 이를 시스템의 작동 조건으로 수용해 예측할 수 없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5월 16일까지, 송은.



깨달음과 파격 사이에서

박찬경, <안구선사>, 2025, Oil on canvas, 139.5x20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박찬경, <안구선사>, 2025, Oil on canvas, 139.5x20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박찬경의 2017년 개인전 «안녕(安寧)»이 무명의 희생자를 애도했다면, 이번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는 깨달음을 위한 선문답을 던진다. 박찬경은 오랫동안 집중해온 영상과 사진에서 벗어나 회화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전통과 민간신앙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연구한 작가답게 매체는 변해도 관심사는 변함없다. 사찰 벽화와 조선 민화를 차용하고 재해석하면서 민간의 전통 미학에 내재된 그로테스크와 판타지를 보다 과장해 전통문화를 뒤흔든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고자 하는 시도다. <안구선사>는 구지선사 이야기의 변형 버전이다. 손가락 하나를 세워 깨우침을 주었다 해서 ‘구지선사’라 불리는 당나라의 승려는 자신의 동작을 흉내 내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반면 박찬경의 작품 속 동자는 작가 자신과 연결되며, 모방을 하다 눈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자승자박이다. 화로를 머리에 이고 가서 스승에게 결의를 보인 혜통을 그린 <혜통선사>나 달마대사 앞에서 자신의 팔을 잘라 결기를 보인 혜가를 그린 <혜가단비도> 역시 전해지는 일화를 섬뜩하게 변형시켰다. 죽비로 화들짝 얻어맞은 기분이다. 선불교와 SF적인 상상력이 맞물려 빚어낸 파격이 안일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5월 10일까지, 국제갤러리 K1.



연약하고 찬란한 빛

캐서린 브래드포드가 국내 첫 개인전으로 방한한다. 1942년생으로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작업 중인 작가다. 그의 작품은 친숙하진 않지만, 한 번만 봐도 경쾌함과 따뜻함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수영이나 다이빙을 하는 인물, 어두운 밤 풍경 속 인물 등을 절제되고 직관적인 화법으로 그린다. 종종 여름을 즐기는 듯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나 배경은 수려한 색이나 빛으로 가득 차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대담하지 않으면 색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색의 언어에 빠져 있다. 그가 앙리 마티스, 밀턴 에이버리, 마크 로스코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주나 하늘, 확 트인 바다처럼 몽환적이고 초자연적인 배경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이런 배경이 심리적으로 밀도 있는 인물화를 생성하는 동력이 된다. 브래드포드의 작품은 연인, 가족뿐만 아니라 고독한 개인에게 서사적인 비중을 부여한다. “권력 있는 이들의 초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약함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안다. 풍부한 색채와 행복한 감정에 기반한 작품이 묘한 친화력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취약함과 회복력, 유머가 공존하는 정서를 담은 대표작과 신작을 첫만남에서 선보인다.

5월 26일부터 7월 12일까지, 갤러리 현대.



신인류 사용법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을 지향하는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의 특별전 «서서울의 투명한 | 청소년 | 기계»는 청소년을 정보-신체 공생적 주체로 사유한다. ‘투명한’은 기술의 블랙박스를 열고 구조를 드러내는 태도, ‘청소년’은 정보와 신체가 결합된 존재, ‘기계’는 인간과 기술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즉 청소년이라는 신체가 기계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수정하고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전시실 1과 예비 전시실에서 소장 작품 컬렉션 중 주요작 10점을 감상할 수 있으며, 로랑 그라소의 <ANIMA>, 아니카 이의 <법칙과 예술 사이의 미끄러짐>, 김윤철의 <아르고스> 등이 전시된다. 전시실 2, 3은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유스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다양한 작가들의 워크숍을 통해 ‘청소년 기계’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층위를 탐색한다.

5월 14일부터 7월 26일까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정화의 붓질에 염원을 더하다

숯을 정신성과 물질성이 교차하는 매체로 활용해온 이배가 숯 조형물로 뮤지엄 산을 수놓았다. 본관 입구에 설치한 높이 8m의 숯 작업 <불로부터>는 정화와 치유를 상징한다.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난 산불로 파괴된 나무들을 직접 본 작가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작업에 담았다. 이배의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한 선택은 전시실을 비우는 작업으로 출발했다. 창조갤러리 1관에 작품을 걸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커다란 종이와 완성되지 않은 조각이 공간의 힘을 체감하게 한다. 반면 수행적 행위를 결합한 회화 <붓질> 16점은 시시각각 빛이 변하는 로비에 배치했다. 1관 <White>가 여백과 순수성이라면 2관 <Black>은 빛을 모두 흡수한 심연과 잠재성을 제시한다. 백과 흑이 조화를 이룬 공간에 몰입되었다가 야외로 이동하면 약 10m 크기로 쌓아 올린 브론즈 작품 <붓질>의 역동성에 압도된다. 산세와 미술관의 높이에 조응하도록 제작된 대형 조각에는 붓질의 흔적이 담겨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림을 조각처럼 설치한 작업으로, ‘표면을 보는 조각’이다. 오로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사유의 세계다. 거대한 붓질이 빚어낸 풍경 속을 유유히 산책할 수 있다.

12월 6일까지, 뮤지엄 산.



어떤 회화 연구

알렉스 카츠의 작품은 언제나 풍요롭고 매력적인 색상을 지니고 있다.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2022년 개최된 개인전 «꽃»에 이어 작가의 소품들을 집중 조명한다. 카츠의 내밀한 연구작과 엄선된 대형 캔버스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 «Studies»를 통해 그가 세상을 시각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으레 카츠의 대표작으로 대형 시리즈가 손꼽히지만, 간결한 색상과 정제된 형상을 추구하는 항해술 없이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카츠의 연구작은 자신의 작업 세계를 지탱하는 근간이자 시각적 탐구를 위한 실험적인 통로 역할을 해왔다. 카츠는 2018년 출간한 책 <알렉스 카츠의 예술 노트>에서 “예술은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바뀔 뿐이다. 예술에서 진보란 없고, 오직 변화만이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는 작가의 상징적인 꽃 모티프, 평온한 풍경과 초상화 사이의 교감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 구상미술의 가능성을 확장해온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5월 22일부터 8월 1일까지, 타데우스 로팍 서울 1층.

Credit

  • 글/ 전종혁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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