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다시 쓰는 발렌티노

발렌티노의 유산에 아름다운 혼돈을 더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말하는 로마와 영화, 그리고 새로운 발렌티노.

프로필 by 윤혜영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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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패션 저널리스트인 알렉산더 퓨리가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만났다. 아름다움과 혼돈, 전통과 혁신을 뒤섞는 미켈레의 대담하고 파격적인 접근은 아이코닉한 로마의 패션 하우스가 써 내려온 신화에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로마에 위치한 발렌티노의 웅장한 본사, 팔라초 미냐넬리(Palazzo Mignanelli). 그 안에서도 유독 장엄한 집무실에 앉아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는 놀라울 만큼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팔라초의 피아노 노빌레(piano nobile, 귀족 저택의 주된 층)에 자리한 이 집무실은 과거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그에 걸맞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에 정교하게 짜인 목재 볼트 천장까지 더해져 마치 바티칸의 한 공간을 옮겨 놓은 듯하다. 영화 <콘클라베(Conclave)>의 몇몇 장면을 촬영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 이 거대한 방은 고(故)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위해 특별히 선택된 공간이다. 모두가 존경의 의미를 담아 ‘미스터 발렌티노(Mr. Vanlentino)’라 불렀던 그는 패션계의 교황은 아니었지만, (<WWD>의 전 편집장 존 페어차일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크함의 지도자(sheikh of chic)’였다.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에 따르면 이 방은 발렌티노라는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의도되었다고. 1980년대 건축가 톰마소 지페르(Tommaso Ziffer)와 마시모 좀파(Massimo Zompa)가 팔라초를 리노베이션할 당시, 지아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발렌티노의 서재라는 사실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지금도 그 느낌은 여전하다.

하지만 미켈레는 발렌티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겉모습도, 디자인도 닮지 않았다. 사실 이보다 더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수염을 기르고, ‘열두 제자’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53세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그는 구찌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지금 2년째 발렌티노의 수장을 맡고 있다. 미켈레는 격식 있게 갖춰 입은 전형적인 ‘발렌티노 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때 발렌티노 오피스의 높은 벽을 장식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속 인물을 닮았다. 오늘 그가 앉은 자리 뒤로 펼쳐진, 그리스 신화 속 엘리시온을 그린 유화는 마치 연극 무대의 배경막처럼 보였다. 그 신화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듯, 그의 티셔츠에는 ‘APOLLON(아폴론)’과 ‘DYONISOS(디오니소스)’라는 문구가 선명한 ‘발렌티노 레드’ 컬러로 새겨져 있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공교롭게도 로마가 아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 두 신은 서로 정반대의 세계를 상징한다. 한쪽은 조화와 신성한 질서, 다른 한쪽은 열정과 감정, 그리고 본능이 있다. 발렌티노가 전자에 속한다면, 미켈레는 그 둘을 절반씩 품은 인물에 가깝다. 말하자면 미켈레는 패션계의 ‘혼돈의 신’ 같은 존재다. 할리우드 블러바드 한복판에서 얇고 비치는 새틴 드레스를 길게 늘어뜨린 모델들을 등장시키거나(2022 S/S Gucci), 수술실을 연상시키는 쇼장에서 창백한 피부의 모델들이 자신과 꼭 닮은 머리통을 들고 워킹을 하도록 했다(2018 F/W Gucci). 그리고 발렌티노에서 선보인 첫 오트 쿠튀르 쇼에서는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압도적인 스케일과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지닌 볼가운에 멕시코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에서 영감받은 마스크를 매치했다. 후덥지근한 공중화장실을 생생하게 재현한 논란의 2025 F/W 쇼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은 분노하기도 했다.

미켈레가 새롭게 해석한 발렌티노의 두 상반된 미학은 2026 F/W 쇼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이번 쇼는 로마의 유서 깊고 우아한 공간인 팔라초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에서 열렸다. 미켈레와 발렌티노 하우스, 이들의 고향인 로마에서 선보인 첫 번째 쇼였다. 미켈레에게 로마는 자신의 패션을 완성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이는 미스터 발렌티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로마에는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공존해요. 한쪽은 장엄하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아름다움이 있죠. 그리스·로마 문화 속 신과 여신들의 아름다움, 분수(fontana)를 이루는 대리석의 웅장함 같은 것 말이에요.” 미켈레는 로마의 고전적인 여신상에서, 정교한 플리세 실크 드레스를 우아하게 걸친 발렌티노 특유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연결시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층위가 뒤엉킨 혼란이 있어요. 서로 다른 메시지와 감정들이 뒤섞여 있죠.” 실제로 발렌티노의 팔라초가 내려다보이는 스페인 광장을 걷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고대 세계에서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1900년대 부르주아 양식과 1930년대 합리주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이 한 도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마치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초대형 영화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아요. 가장 높은 천장, 가장 거대한 방, 가장 큰 창문, 가장 웅장한 궁전까지.” 미켈레는 웃으며 덧붙인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혼란도요.” 이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인 감각은 미켈레의 발렌티노 컬렉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켈레가 발렌티노 특유의 완벽한 로마적 우아함에 새롭게 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롭고 매력적인 ‘흐트러짐’이다.

아마도 이번 컬렉션을 ‘Interferenze(개입, 간섭)’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모델들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거대한 응접실(미켈레에 말에 따르면 축구 경기장보다 커 보이는)에 마련된 런웨이 위를 걸었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 퍼 코트와 레깅스, 정교한 레이스와 작은 방울 모양 보석들이 장식된 시폰 드레스 등 예상 밖의 조화를 이룬 포스트모던한 아름다움의 행렬에서 정말로 그러한 개입이 느껴졌다. 옷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Interferenze’라는 제목은 단순히 옷과 옷의 충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언제나 일종의 ‘개입’과 같아요.” 미켈레는 생각에 잠겨 나지막이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은 결국 한 브랜드의 역사,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작업물에 개입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고 뒤섞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 말이죠.”

그의 개입은 특히 발렌티노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조잡한’ 보타이를 더하려 하자 토할 때까지 울었다는 일화(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가 전해질 만큼 세심하고 까다로운 쿠튀리에인 미스터 발렌티노, 그리고 10년 전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이래 광기 어린 혼돈의 창조자로 불려온 미켈레 사이에 과연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발렌티노의 ‘스완(swans, 우아하고 세련된 상류사회 여성들)’들이 미켈레가 애정하는 남루하고 보헤미안적이며 로큰롤적인 아웃사이더를 보며 코웃음을 치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미켈레 자신은 발렌티노의 오피스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지만, 자신과 발렌티노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는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계보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미켈레는 2008년부터 2024년까지 발렌티노의 창조적 방향을 이끌었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마치 발렌티노의 조카들 같았어요.” 두 사람은 처음에는 듀오로, 이후에는 피촐리가 단독으로 브랜드를 이끌었다. 듀오는 1999년부터 발렌티노에서 일하기 시작해 오랜 기간 브랜드와 함께했다. 미켈레는 많은 직원이 수십 년 동안 근속했다며 발렌티노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입이죠. 저는 모든 것을 손님처럼, 혹은 이 집에 새로 들어온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어요.” 바로 그 낯선 시선이 미켈레가 발렌티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발렌티노의 공식을 과감하게 뒤튼다. 발렌티노의 상징적인 이브닝드레스에 미스터 발렌티노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법한,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나 장갑,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처럼 우아함과 독특함을 맞부딪히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창립자와 하우스의 새로운 손님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단단한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그중 의외의 하나가 바로 ‘글래머’다. 이를테면 글래머는 발렌티노의 매끈한 이브닝 가운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으로, 둘은 거의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미켈레는? 영화 <로얄 테넌바움>의 ‘긱 시크(geek chic)’를 참고한 컬렉션을 생각하면, 그러한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미켈레의 생각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할리우드나 진 할로(Jean Harlow) 같은 글래머러스한 세계에 깊이 끌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 관점에서 바라본 글래머를 좋아하고 있죠.” 그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저는 이 세계에서 꽤 반항적이었던 것 같아요.”

할리우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스터 발렌티노와 미켈레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영화이기 때문이다. 발렌티노는 1950년대 장 데세(Jean Dessès)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시절, 당대 여배우들을 위한 ‘꿈의 드레스(dream dresses)’를 스케치했다. 그의 초창기 드레스 중 하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름을 따 ‘엘리자베스’라는 이름 붙이기도 했다.(훗날 발렌티노는 실제로 테일러의 옷을 디자인하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1991년 래리 포텐스키와의 마지막 결혼식에서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일 것이다.) 미켈레 또한 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로마의 유명한 영화 스튜디오 치네치타(Cinecittà)에서 영화사 임원을 보좌하는 일을 했다. 덕분에 미켈레는 페데리코 펠리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이 오가던 ‘이탈리아의 할리우드’를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랐다. 그 안에는 실제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있었다. 그녀는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의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를 촬영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 미켈레의 어머니는 로마의 한 카페에서 테일러와 마주치곤 했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친숙하게 접해온 미켈레는 자신을 영화감독에 비유한다. “저는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세계를 영화처럼 그려내려 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큰 그림을 바라보죠.” 그리고 감독처럼, 자신의 역할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보에 등장한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2026 F/W Valentino.

화보에 등장한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2026 F/W Valentino.

의외로 들릴지 모르지만, 미켈레의 발렌티노는 전임자보다 훨씬 깊이 창립자가 써 내려간 ‘시나리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는 서로 다른 것들을 가져오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실제로 그는 아카이브를 샅샅이 파고들며, 자신이 끊임없이 매료되어온 발렌티노의 전성기인 1980년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인과 디테일을 끄집어냈다. 그의 첫 번째 컬렉션에는 얇고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부터 코로만델(Coromandel)풍 시퀸 재킷까지, 과거의 아카이브를 직접적으로 참조한 피스들이 뒤섞여 등장했다. 참고로 발렌티노의 이 디자인은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서 선보인 것보다 6년 앞선 것이다.

첫 오트 쿠튀르 쇼에서는 1977년 데보라 터버빌(Deborah Turbeville)이 촬영한 빨간 러플 튤 드레스를 거대한 크기로 재해석한 버전을 선보였다. 또 다른 룩에서는 영화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에 등장할 법한 이브닝 가운의 드레이프 보디스(상체 부분)와 청바지를 결합했다. 또 우아한 사교계 여성들이 입을 법한 얇고 섬세한 레이스 블라우스를 남성에게 입히고, 그런지한 남성용 브리프를 매치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1972년에 태어난 미켈레는 로마에서 자랐다. 그는 13세 때 미스터 발렌티노를 처음 목격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스페인 광장에 새로 문을 연 맥도날드의 창문 너머로 퍼그들을 품에 안고 있는 발렌티노의 모습을 본 것이다.(미켈레의 작업에 짜릿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바로 그런 하이 앤 로의 대비가 아닌가?) “계시처럼 다가왔어요.” 미켈레는 예상치 못했던 첫만남을 떠올리며 말한다. “마치 신과 같았죠.” 그만큼 미스터 발렌티노는 자신이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로마에서 존경받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사실 발렌티노는 로마에서 480km가량 떨어진 롬바르디아의 보게라에서 자랐다. 그는 강한 의지로 훗날 로마를 대표하는 쿠튀리에가 되었고, ‘영원의 도시’ 로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지난 1월,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식은 국가 원수의 장례식 못지않을 만큼 성대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

그에 대한 경의를 담아 미켈레는 다음 오트 쿠튀르 쇼를 가늘고 긴 실루엣의 발렌티노 레드 드레스로 시작했다. 로마에서 열린 레디투웨어 쇼 역시 이와 비슷한 드레스로 막을 내렸다. 마치 과거 발렌티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되살린 듯 보였다. “그 드레스는 정말 발렌티노답게 보였어요.” 그가 말한다. “저는 엘사 페레티(Elsa Peretti)가 티파니와 함께 작업하던 시대를 떠올렸어요. 형태는 매우 유기적이면서도 시크하고 동시에 섹시해야 했죠. 그 안의 몸이 고스란히 느껴지니까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건 이것이 단순한 컬러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하나의 선언이자 마음가짐이고, 삶의 태도이며,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방식이죠. 그리고 그 시대의 여성들이 지녔던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 룩에 매치한 건 오직 귀고리 한 쌍과 드레스가 전부였어요. 그리고 그건 그다지 저다운 방식은 아니에요.”


저는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세계를 영화처럼 그려내려 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큰 그림을 바라보죠.


그런 유산과 마주하는 일은 분명 벅찬 일이다. 다시 한번 로마 신화에 비유해 말하자면, 미켈레 같은 디자이너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는 야누스(Janus, 두 얼굴을 가진 통로의 신)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는 발렌티노와 지아메티의 반응을 어깨 너머로 살펴봤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여전히 하우스에 커다란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아메티는 미켈레 취임 후 그의 쇼에 여러 차례 참석해 큰 박수를 보냈다. 발렌티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지만, 미켈레는 여전히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더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해요.”

그렇다면 그는 발레티노의 인정을 구한 적이 있었을까? 미켈레는 잠시 멈춰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수 있죠.”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그랬다고 말하고 싶네요. 미스터 발렌티노가 쇼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자유롭고, 마음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하지만 아주 무의식적으로 제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때로는 무의식이 의식보다 강하니까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발렌티노로부터 무엇을 계승했는지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미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말이다. “그는 이 브랜드를 창립했고, 상상력의 힘, 창의성의 힘, 하나의 색이 지닌 힘, 그리고 태도의 힘을 세상에 보여줬어요. 거대한 프레스코화 속 작은 디테일 하나가 지닌 힘 같은 거죠. 창작적인 측면에서 이토록 강력한 브랜드에 몸담아본 적은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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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Alexander Fury
  • 번역/박수진
  • 사진/ Agata Pospieszynska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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