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을 저격한 패션 디자이너 3
애슐린, 킬마이어, 디오티마가 바로 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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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OMEN WANT
애슐린(Ashlyn), 칼마이어(Kallmeyer), 디오티마(Diotima)와 같은 뉴욕 기반의 패션 브랜드가 덜 획일적이고, 더 개인적인 스타일을 찾는 쇼퍼들의 취향을 건드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왼쪽부터) 애슐린 박, 다니엘라 칼마이어, 레이첼 스콧.
지난해 12월,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열린 행사의 호스트로 나선 갤러리스트 크리스티나 그라할레스(Cristina Grajales)는 허리를 은근하게 잡아주는 다트 디테일의 블랙 울 재킷을 선택했다. 이 조형적인 재킷을 만든 주인공은 2020년 뉴욕에서 브랜드 애슐린을 론칭한 디자이너 애슐린 박(박상연). 그라할레스가 공식석상마다 애슐린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옷을 입으면,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드러운 페플럼, 풍성하게 부풀린 팬츠, 곡선미가 살아 있는 아우터 등 둥근 실루엣을 자신의 시그너처로 삼아온 애슐린은 여성을 자신의 비전으로 꾸미는 대신, ‘멋진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옷’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도쿄에서는 요지 야마모토 밑에서 수련했고, 이후 뉴욕에서 라프 시몬스(캘빈 클라인), 알렉산더 왕과 함께 일했던 그녀가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같은 수준의 장인정신을 유지하되 보다 웨어러블한 방식, 그러니까 자신이 실제로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애슐린은 독립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고 말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나만의 필터를 옷에 담고 싶었어요.” 젊은 시절의 그녀는 무거운 하드웨어로 장식된 오버사이즈 가죽 재킷을 즐겨 입었다. “서른을 넘긴 어느 날, 그 옷들을 더는 입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매우 가벼운 옷을 만들고 있죠.” 그녀의 컬렉션은 독특하고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디자인인 데다 무엇보다 다양한 체형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움직임이 자유롭다. 지난해 11월, 애슐린은 CFDA 패션 어워즈에서 ‘올해의 미국 신진 디자이너’로 선정됐고, 불과 며칠 뒤 CFDA/보그 패션 펀드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제 그라할레스는 단순한 컬렉터를 넘어 애슐린의 든든한 협력자가 됐다. 그라할레스의 트라이베카 갤러리는 애슐린의 초기 런웨이를 선보인 무대이기도 했다. “전 제 직감을 믿어요. 옷이 편안하면서도 내 움직임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고, 또 너무 강하게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맞는 옷이겠죠.”
뉴욕은 종종 하이패션을 논할 때 대화의 중심에서 빠지곤 한다. 지난 시즌은 특히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와 밀라노의 유서 깊은 하우스들에서 여러 메가톤급 디자이너 데뷔가 연달아 터지며 해당 런웨이가 연신 화제에 오르는 상황에서 뉴욕이 헤드라인을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션 수도 가운데 뉴욕이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웨어러블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도시인 건 사실이죠.” 모다 오페란디의 사장 에이프릴 헤닉(April Hennig)은 흔히 비판처럼 쓰이곤 하는 이 평가를 언급했다. 하지만 여성이 실제로 입고 싶고, 그리고 정말로 입는 옷을 만드는 일이 과연 약점인 걸까?
2026 S/S Ashlyn
2026 S/S Kallmeyer
2026 S/S Diotima
애슐린은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의 디오티마, 다니엘라 칼마이어(Daniella Kallmeyer)의 칼마이어와 함께 뉴욕에서 손에 꼽히는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랜드다. 이들은 조용히, 묵묵히 그리고 독립적으로 ‘현실의 여성’의 삶에 꼭 맞는 옷을 만들어왔다. 100년 된 드레스 코드의 재해석 대신, 자신과 주변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직관으로 디자인한다. 이런 구체성은 언제나 모두를 겨냥하고자 하는 어설픈 시도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으로 공명하고 있다.
제이 크루(J.Crew)에서 수십 년간 영향력 있는 커리어를 쌓은 제나 라이언스(Jenna Lyons)는 시퀸 스커트를 흰 티셔츠와 매치하는 자신만의 미학을 통해 ‘미국을 입힌 여자’로 불린다. 하지만 요즘 그녀가 스스로를 스타일링할 때 입는 건, 최신 런웨이의 ‘잇’ 아이템이 아니라 칼마이어의 트렌치코트와 단품 의상들이다. “다니엘라 칼마이어의 옷에는 절제가 있어요. 코스튬을 입은 느낌이 들지 않죠.” 라이언스는 빈티지 데님과 클래식 테일러링(지나치게 꾸미지 않고 또 너무 복잡하지 않지만 은근한 섹스어필이 되는)이라는 자신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칼마이어의 깃을 세운 트렌치에 체리 레드 타이츠와 펌프스를 매치한 순간, 라이언스는 주변인 사이에서 가장 쿨한 존재가 된다. 가장 ‘자기 자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는 늘 아주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했어요.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옷을 어떻게 입어왔는지, 나만의 표현과 정체성에 있어서 무엇을 찾았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2012년, 자신의 옷장 속 필수 아이템에 뿌리를 두고 라인을 론칭한 칼마이어의 말이다. “저는 이 브랜드를 ‘퀴어 여성이 디자인한 브랜드’라고 말하고 싶어요. 퀴어 브랜드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드레스 하나를 만들 때도 전통적인 여성성에 기대기보다는, 드레스를 입었을 때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드레스에서도 수트만큼 강하고, 섹시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주도권을 느껴야 하니까요.” 그 감각은 이미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칼마이어는 모다 오페란디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19년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부티크를 연 이후, 칼마이어는 고객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전 사람 구경을 정말 많이 해요. 물론 안 무섭게요.”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오늘 좀 추웠나 봐, 저 사람은 셔츠 안에 터틀넥을 받쳐 입었네.’ 멋진 스타일링인데, 시중에 있는 터틀넥은 너무 두꺼운 거예요. 그래서 셔츠 안에 레이어드하기 딱 좋은, 아주 얇고 아름다운 터틀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애슐린을 입은 조이 살다나.
애슐린을 입은 크리스티나 그라할레스.
디오티마를 입은 타무 맥퍼슨.
디오티마를 입은 그레타 리.
칼마이어를 입은 제나 라이언스.
칼마이어를 입은 야니차 브라보.
사실 문제 해결이란 미국식 스포츠웨어의 DNA이기도 하다. 전통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니 캐신(Bonnie Cashin)과 클레어 매카델(Claire McCardell) 같은 디자이너들은 ‘편안함’과 ‘실용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단품 피스, 그리고 주머니가 달린 디자인 즉,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은 의상을 선보였다. 이들의 혁신은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마이클 코어스, 도나 카란이라는 미국 스포츠웨어 거장들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거물들이 하나의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해 우리를 초대했다면, 그로부터 10~20년 뒤 등장한 마리아 코르네호(Maria Cornejo) 와 레이첼 코미(Rachel Comey)는 이 클래식한 공식을 보다 개성 있고, 표현적인 방향으로 진화시켰다. 이들의 컬렉션은 규범을 제시하기보다 개인의 삶에 스며드는 옷에 가깝다. “제 이름이 붙은 속옷 한 벌을 파는 게 목적은 아니었어요.” 코르네호의 말처럼, 핵심은 현실에서 입혀지는 옷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의 세계에 ‘입장’하는 게 아니라, 그 옷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여성들은 누군가 정해 놓은 획일적인 드레스 코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분 좋게 맞는 옷을 입고 싶어 해요.” 샌프란시스코 맥멀린(McMullen)의 설립자 셰리 맥멀린(Sherri McMullen) 역시 이렇게 말한다. 2021년 초, 그녀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로부터 디오티마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꼭 찾아보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녀는 곧장 자메이카 출신의 디자이너 레이첼 스콧과 줌 미팅을 잡았는데, 그때 스콧이 보여준 컬렉션은 정교한 크로셰 디테일, 여유로운 테일러링, 절제된 장식이 어우러진, 스마트하면서도 관능적인 옷들이었다. 스콧의 표현을 빌리면, “단정하게 잠근 듯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풀려 있는” 룩이다. “저는 코르셋을 입는다고 해서 섹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스콧은 말한다. “에로티시즘과 지성은 동시에 공존할 수 있어요. 둘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죠.” 이 관점은 맥멀린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맥멀린은 첫 컬렉션의 대부분을 바잉했고, 디오티마는 곧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후 스콧은 2024 CFDA ‘올해의 미국 여성복 디자이너’에 선정됐고, 2025 패션 트러스트 U.S. 레디투웨어 어워드 수상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9월, 프로엔자 스쿨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잭 맥컬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뒤를 잇게 됐다. 지난 7년간 레이첼 코미 밑에서 커리어를 쌓은 스콧은 ‘여성에게 옷을 입힌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예기치 않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요.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복잡함을 품어낼 방법을 찾아야죠.” 결국 고객을 하나의 전형으로 규정하지 않고 고객의 욕구와 뉘앙스를 함께 인정하면, 그들의 삶을 위한 흥미로운 유니폼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 뉴욕 기반 컨설턴트이자 애슐린과 디오티마를 모두 수집하는 안야 타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브랜드는 아주 바쁜 삶을 사는 여성을 위해 디자인하고, 또 어떤 브랜드는 아주 마른 몸을 위해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죠. 그런데 형태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디자인한다면, 사람들이 옷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옷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디자이너의 과시적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착용하는 사람은 그저 ‘가장 좋은 버전의 나’로 인식될 뿐이다. 디오티마의 오간자 베스트를 구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구글의 유니버설 프로덕트 개발 디렉터, 애니 진-밥티스트(Annie Jean-Baptiste)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그녀의 옷을 입으면 제 자신이 힘과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고, 우아함이 느껴져요. 그래서 삶과 세상에서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Credit
- 글/ Camille Freestone
- 번역/ 이민경
- 사진/ Maxime LA, Launchmetrics(런웨이)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2026 봄 패션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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