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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저자 천쓰홍이 나와 나의 몸에 대해 쓴 가장 솔직한 이야기, ‘아홉 번째 몸’

8년 전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가 한국판으로 출간됐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6.08.30

YES, I’M NAKED


천쓰홍은 대만 시골 마을 용징에서 누나 일곱과 형 한 명을 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퀴어이고 소설가다. 현재는 베를린에 살며 글을 쓴다. 자기 삶을 소재로 쓴 소설 <귀신들의 땅>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천쓰홍에게는 그에 앞서 세상에 내놓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으로 제 삶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아홉 번째 몸>이다. 2018년 썼던 책이 마침내 한국판으로 출간되었다. 8년 전에 쓴 글로 한국 독자들을 만난 작가와 나눈 인터뷰.


<귀신들의 땅>은 2019년 현지 출간 후 15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당신의 대표작이다. <아홉 번째 몸>은 그보다 1년 먼저, 말하자면 지금 같은 명성을 얻기 전에 쓴 글이다. 지금 그때의 글을 다시 보니 어떤 기분이 드나? <아홉 번째 몸>을 쓸 땐 나 자신에게 잔인할 만큼 솔직했다. 그런 글이 주는 뜻밖의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다 쓰고 났을 때쯤엔 작고 초라한 내 고향 용징, 내 가족의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또 한 번 솔직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홉 번째 몸>은 <귀신들의 땅>을 쓰기 위한 문학적 준비 과정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책에는 정반대의 자기 인식이 공존한다. 스스로를 ‘아버지가 벌인 도박의 산물’ ‘망가진 아이’ ‘농가의 불량품’으로 묘사하다가, 뒤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면서 세상이 정한 미추의 정의를 따르지 않기로 한다”는 말을 한다. 언제부터 농가의 불량품 같은 내 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나? 돌이켜보면, 나는 내 삶에 존재했던 사랑스러운 여자들에게 빚을 지며 살아왔다. 일곱 명의 누나들은 화학 교과서에 툭하면 시나 끄적이던 괴짜 같은 남동생을 바로잡거나 고치려 들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똑똑한 여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나를 꿰뚫어 보았고,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여자 친구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을 공부한 나는 행복한 영문학 전공생이었다. 우리는 문학 속에서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퀴어라는 나의 정체성은 초능력이다. 내 삶에 있었던 여자들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귀신들의 땅> 출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에 방문해 도서전, 북토크, 인터뷰 등에 함께했고, 한국인 남자와 연애를 했었다 밝힌 적도 있다. 그간 쌓아온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당신의 글이 이곳의 독자들과 공명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귀신들의 땅>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서울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여성 독자는 자기 삶이 내 소설 속 비참한 이야기와 꼭 같다고 했다. 한 남성 독자는 자신이 제주 출신이며, 자신의 성적 지향성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나처럼 누나가 많았던 남성 독자도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이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같은 장벽을 마주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30여 년을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가 유독 상쾌하게 읽은 파트는 베를린의 ‘인정머리’에 대해 쓴 대목이었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아니요’라는 말을 쉽게 뱉지 못한다. 당신은 이 글을 쓰며 언제 가장 후련함을 느꼈나? 이 책은 나에게 해방구 그 자체다. 한국, 대만 같은 유교 문화권 안에서는 여전히 직설적인 표현을 무례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싫다고 말하고 싶을 때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제 나는 독일 문화에 물들어버렸다.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도 안다. 괜찮다. 이제 나는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임을 안다. 이 책은 솔직함이 사회적 예의와 충돌할 때,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책이다. 무례하게 굴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마침내 마음 편히 가슴에 담아둔 말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아홉 번째 몸>은 솔직하다. 좌절과 실패를 쓸 때도, 기쁨을 쓸 때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산뜻하다. 일기장이 아닌 곳에 어떻게 이런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었나? 솔직함은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게만 쓴다면 그 과정이 아프고, 슬프고, 부끄러울지언정 그 모든 것을 이겨낼 방법도 함께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면, 솔직하게 쓴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같은 용징 출신의 여성 퀴어 작가 추 먀오진(Qiu Miaojin)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신은 대만의 성공한 작가이자, 누군가에겐 꿈에 가까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추 먀오진은 대만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진 퀴어 아이콘이다. 그녀의 글은 여러 세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녀의 아버지가 나의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아이콘’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중에는 자기 이야기로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있다. 문학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하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글쓰기에 바치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나의 책임은 쓰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해방될 방법을 찾도록 독려하는 이야기를 계속 써야만 한다. 글쓰기가 인간에게 필수적인 일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문학은 섹시하다. 해방은 섹시하다. 나와 함께하자. 우리, 섹시해지자.

올겨울 대만에서 발간한다는 신작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들었다. 배경이 한국이라고? 2000년 한국인 연인을 만난 적이 있다. 짧은 여름의 사랑을 나눈 뒤 한참 동안 연락이 끊겼다. 2023년 한국에서 <귀신들의 땅>이 출간되면서 그가 책을 발견했고,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 신작은 바로 그 여름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자 순수함 그 자체였던 해. 이 작품은 내가 쓴 첫 번째 사랑 이야기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국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질문지를 준비하며 천쓰홍이라는 사람은 무척 유쾌하고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언젠가 당신의 그러한 면을 십분 발휘한 책을 읽어볼 수 있을까?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그토록 애절하고 슬픈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왜냐면, 현실의 나는 그냥 미친 사람이거든.(웃음) 목소리도 크고 별난 생각도 참 많이 한다. 언젠가는 정말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순수한 기쁨을 느끼며 웃고 울 수 있는 책을. 지금은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조금만 시간을 주길. 나는 이제 50살이다. 10년 뒤의 천쓰홍이라면 삶의 기쁨에 관한 소설을 쓸 만큼 충분히 지혜로워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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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민음사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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