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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타이완 문학을 주목하는 이유

경계 너머의 타이완 문학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6.16

여름이 본격적으로 내려앉기 전, 계절과 계절 사이의 얇은 경계 위에 문학의 파장이 겹쳐진다. 지금은 진동이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타이완의 문학을 읽을 때.

타이완 문학은 동아시아 안에서 경계를 다이나믹하게 오가는 장르로 새롭게 소환되고 있다. 다양한 국경, 성별, 언어, 장소의 세계를 유동적으로 넘나들며, 세계의 균열과 감정의 조각을 감각적으로 짚어내는 서사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작지만 강한 문학’이라는 수사는 지금의 타이완 문학을 위해 남겨둬야 했는지도 모른다.

타이완 문학이 ‘지금’인 이유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서의 타이완 문학의 열풍은 심상치 않다. 2023년 말 출간된 천쓰훙의 『귀신들의 땅』은 출간 직후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큰 관심을 끌었고, 『타이완 여행기』(양솽쯔), 『야생 멧돼지가 강을 건널 때』(치엔커), 『여신 뷔페』( (류즈위)와 같은 작품이 연이어 번역 출간되며 흐름을 이어갔다. 국내 문예지 <릿터>는 올해 2/3월 호에서 ‘타이완 소설이 뜬다’를 특집 주제로 삼았고, 오는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타이완이 사상 최초로 ‘주빈국’으로 선정되었다. 23명의 타이완 작가가 방한해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수의 타이완 문학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김이삭 번역가는 “최근 타이완 문학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이 남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번역가로서 출판 기획 제안을 넣기가 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졌다. 이전까지 출간하려는 출판사를 찾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면, 지금은 어려움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흐름은 반짝 유행이 아니며 타이완 문학이라고 해서 무조건 국내 독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역사’와 ‘퀴어’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작품이 한국에서 반응이 좋은 편이다. 한국과 타이완의 유사성과 이질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김이삭 번역가의 분석처럼, 실제로 두 나라는 굉장히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다. 한국에서는 4.3 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타이완에서는 2.28 사건이 있었다.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을 경험했고, 타이완 또한 계엄 이후 오랜 백색 공포 시기를 경험했다. 이는 한국 독자로 하여금 타이완의 역사를 친숙하게 느끼게 한다. 동시에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가낯섦과 거리감은 독자로 하여금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일례로 소설가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이 독자들의 마음을 흔든 건 복잡한 애도와 죄책감, 타인의 기억에 갇혀 사는 삶의 구조였다. 결국 문학은 ‘느낌의 언어’이기에, 깊이 공유된 감정은 타이완 문학이라는 낯선 이름을 친숙하고 편안한 이야기로 다가오게 한다.

경계 위에서 말하기

타이완 문학은 늘 불안한 위치와 경계에 주목해왔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타이완 문학은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주로 던진다. 섬이란 지정학적 구조에 식민과 망명, 이주와 검열, 언어적 단절과 회복이라는 경험 속에서 발전해왔다. 식민과 이주, 독재와 저항, 중국과의 정치적 긴장까지. 타이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받아왔고, 혼종성과 유동성은 이들 문학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한국 독자들은 읽기 경험을 통해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다른 시각을 얻는다. 이야기의 주체는 사회적 소수자, 곧 여성, 퀴어, 트랜스젠더, 이주민, 장애인과 같은 경계인들이다. 주인공은 중심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정체성이라는 고정된 틀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어디론가 이동한다. 민족 정체성이라는 단일성을 해체한 채, 존재의 다층성과 감정의 복합성을 수용하는 문학적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거창한 담론보다 작은 목소리, 조용한 감정, 낮은 톤의 서사에 집중한다는 점도 매력을 배가한다. 경계 없는 감정들, 서로 다른 존재가 어우러지는 포용성, 독립과 존엄을 믿는 마음이 자리한다. 이에 대해 김이삭 번역가는 “한국과 달리 타이완은 동성혼이 법제화되고 퀴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친퀴어적인 사회다. 커밍아웃을 한 오픈리 퀴어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점 또한 한국 독자에게 있어서 여러 울림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혼종의 언어, 유연한 서사

언어는 소설 속 인물의 출신, 사회적 위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북경어, 대만어, 일본어, 영어, 민난어 등이 혼재된 다언어적 배경 역시 본질적으로 타이완 문학이 혼종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억압받던 언어와 잊혀졌던 이야기는 적극적으로 복원되며 기억과 정체성, 저항과 연대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대만어를 사용해 소설을 쓰는 양솽쯔(楊双子)의 대만 여행기(Taiwan Travelogue)의 영어 번역본은 타이완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상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언어적 텍스트는 픽션과 논픽션, 산문과 시, 자전적 소설과 판타지 등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문학적 실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자에게 낯선 언어와 문자가 등장할 때마다 상상력과 해석의 폭을 넓히고, 언어의 경계와 한계를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문학적 긴장과 흡입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독자들이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적극 유도한다.

감정을 만드는 장소성

낯선 장소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흡입력을 배가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과거 1970~80년대의 타이완 모더니즘이 도시화 과정에서 일어난 단절, 소외, 침묵의 풍경을 미화하거나 1987년 계엄 해제 전까지 이어진 민주화 운동과 함께 등장한 ‘본토문학(Nativist Literature)’이 식민성, 개인성 등의 주제를 문학 안으로 수렴했다면,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은 서사가 일어나는 배경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상으로 확장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SF 장르, 국경을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기후 위기, 도시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생태계 파괴 등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일 또한 쉽게 가능해진다.

이처럼 타이완 문학은 느슨하고 유동적인 어떤 경계에서 시작된다. 감정과 존재, 기억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다. 지금, 타이완 문학을 읽는 행위는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며 공명하고, 반대로 또 다른 모습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일과도 같다. 동아시아라는 감각의 지층을 다시 더듬고 어느 틈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Editor’s Pick ! 타이완 추천 소설 4

『여신 뷔페』, 류즈위(劉芷妤)

사진/ 민음사 제공

사진/ 민음사 제공

“여성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먹는다”는 백래시적 표현 ‘여권 뷔페’를 표현을 뒤집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전복적 폄하적 표현으로 시작한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정말 더 나아졌는가?” 혹은 “젠더 인식은 과거보다 얼마나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사회적 성찰과 공감을 끌어낸다.

『악어 노트』, 구묘진(邱妙津)

사진/움직씨 제공

사진/움직씨 제공

대만 퀴어 문학의 전설적 작가 구묘진의 대표 장편소설. 1994년 출간 이후 대만 현대문학과 LGBTQ+ 문학의 상징적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말 계엄 해제 직후의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동성애자인 주인공 라즈(拉子)의 대학 시절을 그린다. 일기 형식과 우화적 장치(‘악어’)로 개인적 욕망과 정체성, 사회적 인정의 한계, 젠더 규범이 만드는 폭력과 소외를 문학적으로 폭로한다.

『67번째 천산갑』, 천쓰홍(陳思宏)

사진/민음사 제공

사진/민음사 제공

타이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천쓰홍이 2024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오랜 우정을 중심으로,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통해 어떻게 연대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 타이완과 프랑스를 넘나드는 영화적 구성과 시간 전환,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타이완 교육과 가족, 정서적 협박과 성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이야기한 소설집으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18년 타이완 공영방송에서 제작한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공개되며 타이완의 ‘스카이 캐슬’로 불릴 만큼 유명했다. 2024년 국내 번역 출간되어 국내에서도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며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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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각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