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김은주
2026 아트부산 커넥트 섹션에서 보게 될 대형 작업의 비하인드.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부산에서 그리다
지척에 바다가 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짭짤한 내음이 난다. 올해 아트부산에서 만나게 될 세 명의 부산 작가 방정아, 김도플, 김은주의 작업실은 그런 곳이다.
김은주
1965년 부산 영주동에서 태어나 45년간 같은 동네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 현재는 동래구 수안동에 위치한 작은 주택을 작업실 겸 주거 공간으로 삼아 작업 중이다. 30여 년간 그려온 연필 그림에서 수천 가지의 색을 본다.
하퍼스 바자 고향이자 작업 초기에 지낸 부산 영주동은 차이나타운과 부산역이 있어 수많은 외지인이 오가는 동네입니다. 작가가 나고 자란 지역의 색은 작품에도 자연스레 묻어나게 된다지만, 그곳의 풍경과 연필 작업이 쉽게 매칭되진 않는데요.
김은주 우리 집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라 내부가 일본 전통 다다미방 형태 그대로였어요. 지어질 당시에는 우체국 간사로 쓰였대요. 주변으로는 텍사스촌이라고 불리던 미군들이 거주하는 동네랑 중국인이 모여 사는 동네가 붙어 있었고요. 저랑 제일 친했던 동네 할아버지는 짜장면집을 운영하시면서 중국 청나라 때 옷을 입고 다니셨던 것이 기억나요. 접점 하나 없어 보이는 숱한 인생들이 한반도 끄트머리에 모여 이웃이 된 채로 산 거예요.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를 생각하면 역동성이 느껴져요. 한 명 한 명의 삶에는 애잔하고 고달픈 사연이 있었을지 몰라도 우리가 이웃이 되어 살았던 그 시절은 정말 유쾌했던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제 그림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그것이 반영되어 있는가를 설명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에요. 그냥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한번은 서울에 있는 아트인사이드에다 제 작업을 걸었던 적이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내가 부산을 많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대요. 내 고향의 공기, 바람, 파도, 복작거리는 사람들, 밀었다 당겼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읽히더라고요. 그럴 땐 내가 부산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돼요.
하퍼스 바자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 작가, 전시할 공간, 작업을 선보일 기회 등의 인프라는 서울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부산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은주 서울은 자본이 충분하고,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훨씬 많을 것이니 더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게 되겠죠. 하지만 작업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구하는 일만 생각해도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해요. 따지고 보면 아주 현실적인 문제인 거죠.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계속 부산에서만 작업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낱낱이 살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 있었다면 쏟아지는 수많은 기회와 정보를 붙잡고 씨름했을 시간에 제 자신과 진득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거든요.
하퍼스 바자 이번 아트부산의 커넥트 섹션에서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작업을 다수 선보입니다. 특히 규모가 큰 대형 회화 위주로 출품한 것이 눈에 띄어요. 그중 하나인 <그려보다>는 가로 길이만 21m에 달하죠.
김은주 사실 저에게 있어 부스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내 그림을 걸 수 있는 큰 벽면이 주어진다는 거였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작업실에는 21m 크기의 작품을 걸 만한 공간이 없어요. <그려보다>는 여러 폭의 캔버스를 연결한 작품인데, 이곳에서는 많아야 세 폭 정도 붙여놓을 수 있죠. 그러니 저조차도 모든 그림이 연결된 풍경을 쉽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럼에도 가장 작은 작업실에서 가장 큰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작업했어요. 30대 초반부터 한 10년 정도는 이렇게 큰 사이즈의 작업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렇게 유연해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땐 휘어질 줄 모르는 사람처럼 빳빳했거든요.
하퍼스 바자 주로 사람의 몸을 그렸던 그때의 작업은 지금의 작업에 비해 훨씬 자유분방하며 거칠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같은 커넥트 섹션에 출품한 1995년작 <자화상>처럼 분노와 불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업이 많았죠. 그 무렵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수행이었나요?
김은주 아뇨, 수행보다는 생존을 위한 일이었죠.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여성이 자기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크기가 큰 작업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젊은 여성 작가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럼에도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소모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나는 내가 거인임을 늘 기억하려 애써야만 했어요. 내가 얼마나 굉장하고,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밖에서 잔뜩 깨지고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릴 때면 그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죠. 작가는 야성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 항상 갤러리랑 전시를 할 때도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완판 작가도 아닌데, 굳이 잘 팔릴 것 같은 그림을 그려서 도배하고 싶지는 않다고요. 그래서 어떤 전시에서든 절반은 안 팔릴 작업으로 채워요. 대형 작업 같은 거요. 그게 나의 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부산’ 외에 김은주라는 작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키워드를 꼽자면 ‘연필’일 것입니다. 어떤 일보다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30년이 넘도록 한 가지 매체에만 천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텐데요.
김은주 보이지 않는 작업 중에는 연필로 그리지 않은 것도 많지만 지금도 연필로 더 그려보고 싶은 게 계속 생기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단색 작업만 하면 지겹지 않냐고들 하는데 저는 단색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불가능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잖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저한테 유화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우리나라 화가들은 먹 하나로 수천 가지 빛을 낸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지나가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한 가지 재료로 수천 가지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는 것.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그때부터 혼자서 연필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어떤 색을 봤는지는 말할 수 없어요. 뭔가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향기가 날아가버린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우공이산의 자세로, 커다란 쇳덩어리로 바늘을 만드는 사람처럼 해나갈 뿐이에요.
하퍼스 바자 조명의 각도나 감상하는 위치에 따라 연필의 광택이 달리 보이면서 유화에서 볼 수 있는 양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데생이나 소묘와도 명확히 구분되고요.
김은주 유화 역시 어떤 색이든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아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는 것은 사실 여러 색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상태죠. 유화와 드로잉의 기법이 묘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작업이 됐어요. 마치 제 세포 사이사이에 부산이라는 도시의 흔적이 새겨져 있듯이, 두 기법 역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얽혀 있는 거예요.
하퍼스 바자 그림에서 사람, 꽃, 식물, 파도 같은 구체적인 대상이 보이지만 어떤 형태를 재현하고 묘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오로지 과정에만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건가요?
김은주 사람들은 겉모습에 쉽게 속는 것 같아요. 꽃처럼 보이면 꽃인 줄 알죠. 하지만 사실 우리가 보는 건 꽃이 발산하는 무형의 에너지예요. 누구에게나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는 20%의 미묘한 욕망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자 하는 80%의 본능을 따르죠. 예술가는 20%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결코 꽃을 그린 적도, 바다를 그린 적도, 사람을 그린 적도 없습니다. 그저 흰 도화지 위에다 그때 그때 내 에너지를 투영시키는 데만 집중했어요. 모양은 꽃이고, 파도고, 사람일지언정 사실 그건 어떤 대상도 아니었던 거예요.
하퍼스 바자 그림 그리는 행위를 시시포스의 굴레에 비유하기도 했죠. 연필 끝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업은 매일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이고 지고 비탈을 오르는 행위와 어떤 점이 닮아 있나요?
김은주 삶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죠. 매일 아침 완성되지 않은 작품, 해야 할 일의 무게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저는 그렇게 미완의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참 좋아요.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고달픈 형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꼭짓점까지 다다르기 위한 과정임을 생각하면 마냥 고역이 아닌 거예요. 그 과정에서 틀린 것은 아무것도 없죠. 내가 해온 이 작업은 적어도 내 삶 안에서는 정직한 대답이자 가치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전 세계가 알아주는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작업하는 삶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를 찾나요?
김은주 누가 그러더라고요. 언제까지 이렇게 그릴 거냐고요. 그럼 저는 “내 안에서 더이상 나올 게 없을 때까지 하겠다”고 해요.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거든요. 죽는 날까지 오래 누워있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서 이 일을 계속하는 거요.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고 꿈꾸는 이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요즘은 30년 전쯤 한창 했던 인체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땐 반항하듯 그렸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어떤 몸을 그리게 될까 궁금하더라고요. 몸을 그리다 보면 그 다음에 또 무얼 할지가 보이겠지요. 내 작업은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질 거예요.
Credit
- 사진/ 영배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BTS, #NCT, #올데이 프로젝트, #에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