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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절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지금 읽어야 할 인류학 책 5

AI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진 인간 이해의 방식, 지금 주목해야 할 인류학 책들

프로필 by 최노아 2026.05.08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알고리즘이 인간을 정교하게 분석할수록 ‘왜’를 설명하지 못하는 공백이 드러나고 인류학적 시선이 주목받고 있다.
  • 민족지와 오토픽션을 중심으로 한 인류학 글쓰기는 일상과 자기 경험을 통해 사회와 개인을 다시 해석한다.
  • 인간과 비인간까지 확장된 인류학 흐름 속에서 일상과 경험으로 삶과 사회를 다시 읽는 방식과 추천 인류학 도서를 함께 소개한다.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어제 검색한 운동화, 방금 머물렀던 여행지의 사진, 심지어 내가 의식하지 못한 정치적 성향까지 분석해 ‘다음 볼거리’를 끊임없이 눈앞에 대령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데이터가 정교해 질수록 우리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지적 허기에 시달린다.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지만, 내가 ‘왜’ 이런 마음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가 온 세상을 점령한 시대에, 독자들은 수천 년 전 인류의 궤적을 추적하거나 낯선 이들의 역사와 민속지를 다루고 있는,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에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레트로에 대한 향수나 트렌디한 유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류학 책을 읽는 행위는 타인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함으로써 나의 궤적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인간 본질을 찾으려는 지적인 저항이자, 가장 동시대 생존 전략으로서의 ‘인류학적 전환(Anthropological Turn)’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류학자의 시선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세상이 정해준 효율의 논리에 나를 내맡기지 않겠다는 의연한 선언이 아닐까.



#1. 빅데이터와 AI 시대에 대한 반발

사진/ 교보문고

사진/ 교보문고

미국 유수의 언론사 <파이낸셜 타임스>질리언 테트(Gillian Tett)가 역설했듯, 숫자로 치환된 정보는 현상의 표면을 핥을 뿐 이면의 구조는 보지 못한다. 인류학의 부상은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삶의 결'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인류학은 "가난은 왜 생기는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렌즈를 밀착시켜 더 구체적이고 아픈 질문을 던진다. "가난한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복지 시스템은 왜 때로 수혜자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가", "오늘날의 청년은 왜 객관적 지표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통계표의 빈칸이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존엄과 실존에 관한 탐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문영 작가의 《빈곤 과정》은 인류학적 시선이 어떻게 대중과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책은 빈곤을 단순히 '소득의 결핍'으로 규정하지 않고, 빈곤이 개인의 삶에 침투하고 구조화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며 학계와 대중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데이터 만능주의가 가져온 '인식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다시 인간으로 향하는 시선에 사람들은 보다 집중하게 된다. 숫자가 세상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설명할수록,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을 복원하려는 인류학적 통찰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 가까이서 듣는 태도, 민족지

사진/ 교보문고

사진/ 교보문고

인류학이라고 하면 낯선 부족, 먼 섬, 오래된 의례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겠지만, 최근 주목받는 인류학 책은 생각보다 멀리 가지 않는다. 인류학의 고전적 방법론인 민족지(Ethnography)가 가장 세련된 글쓰기 양식으로 재호명되고 있다. 현장에 찾아가 몸소 겪는 참여 관찰과 삶의 심층을 길어 올리는 인터뷰를 기반으로 거대 담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미세한 현상들을 면밀하고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민족지의 위력은 ‘거리두기’‘몰입’의 절묘한 균형에서 나온다. 관찰 대상과 함께 숨 쉬면서도 동시에 관찰 대상의 삶을 객관적이고 문화적 텍스트로 읽어내는 깊이감 있는 태도를 기반한다. 인류학 저서를 통해 독자들은 가닿지 못했던 현장 목소리를 담고, 직접 뛰어들어 체험하거나 채록한 이야기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최근 출간된 이라영 작가의 《쇳돌》 역시 잊혔던 한국의 역사부터 광산 노동,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처럼 돌봄, 주거, 노동, 지역 소멸, 기후, 기술 같은 문제는 추상적 이론만으로는 와 닿지 않는 주변의 일들에 실천적 접근법을 취하기를 주저하지 말자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학계뿐만 아니라 모두 홍대, 콜센터, 병원, 이주민의 집처럼 우리 곁의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나’를 들여다보는, 자기서사

디디에 에리봉(출처: 프랑스 문화진흥원)

디디에 에리봉(출처: 프랑스 문화진흥원)

사진/ 교보문고

사진/ 교보문고

최근 인류학적 시선이 극적으로 발현되는 영역은 단연 ‘오토픽션’일 것이다. 자기이론이라고 번역되는 오토픽션은 단순한 에세이도 자서전도 아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삶이라는 현장에 뛰어든 인류학자가 되어, 개인의 기억사회적·역사적 민족지로 재구성하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의 형식이 아닌 솔직한 자기 고백이 담긴 기록물에 가깝다. 책 《자기이론(Autotheory)》을 쓴 저자 로런 포니에에 의하면 자기이론이란 개인의 신체화된 경험, 즉 '나'의 삶을 이론적이고 예술적인 글로 작업하여 지식의 보편성을 해체하는 페미니즘, 퀴어, 소수자 예술 및 문학의 비평적 실천이라고 정의한다. '나'를 담론의 공간으로 전유하는 제스처이자 수행적 글쓰기 스타일이다. 매기 넬슨(Maggie Nelson)의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대표 작품이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보여주었듯, 임신 중절 경험이나 부모의 계급적 고뇌를 다루는 방식은 냉정할 정도로 인류학적이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역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프랑스 랭스)과 노동자 계급 가족이라는, 자신이 과거에 부정하고 떠나왔던 과거를 냉철하게 성찰한 자전적 사회학, 인류학적 회고록이다. 이들은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정확히 감정을 만든 사회적 구조를 마치 ‘참여관찰’하듯 서술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은 뚜렷해지는 추세다.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 지극히 개인적인 장애와 돌봄 경험, 노동 현장을 인류학적 렌즈로 투사한 산문들이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독자들이 책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무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들은 거창한 시대정신을 설파하는 거대 서사보다, 작가 자신의 삶을 실험실 삼아 지성과 감각을 충돌시키는 이야기에 강렬하게 매료됨을 알 수 있다.



#4. 인간만 잘 살면 뭐하나!

사진/ 교보문고

사진/ 교보문고

기후위기, 비인간 존재, 동물, 균류, 바이러스, 인공지능처럼 인간 중심 사고를 흔드는 주제가 부상하면서 인류학의 시야는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얽혀 살아가는가”로 바뀐 것이다.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틈새를 찾아내고, 인간과 비인간(버섯과 숲)의 얽힘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관계망을 포착해낸 에니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 오레곤 주의 송이 버섯을 채집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송이버섯의 유통과 일본 학자들의 연구와 송이버섯이 인간에게 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외에도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올해 번역 출간된 제시카 J. 리(Jessica J. Lee)의 저서 《흩어짐(Dispersals)》도 환경역사학자가 쓴 글답게 식물의 이동과 확산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 경계, 정체성,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면밀히 탐구한다.



추천 인류학 도서 5




<민음사 인류학 시리즈: ‘땅’> 민음사 펴냄


사진/ 민음사 제공

사진/ 민음사 제공

이번에 선보인 인류학 첫 시리즈의 세 권은 '날로 노는 홍대'(홍성훈 지음), '다음 리카에게'(김이향 지음), '래퍼와 공원'(송재홍 지음). 시리즈는 서로 다른 공간과 사람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젊은 인류학자들이 현장을 찾아 만난 사람, 관찰한 장소 등을 가감 없이 써내는 에세이 형식을 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만난 사람의 말과 행동, 느낀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민음사는 인류학 시리즈를 향후 약 10권 이상 출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매슈 엥글키 지음, 김재완, 박영서 옮김, 오월의봄 펴냄


사진/ 교보문고 제공

사진/ 교보문고 제공

세계 주요 명문 대학에서 교재로 활용되는 인류학 입문서다. 인류학을 하나의 학문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제시한다. 핵심은 ‘인류학적 감수성’ ‘문화상대주의’다. 타인의 삶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보다, 그들이 처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사진/ 갈라파고스 제공

사진/ 갈라파고스 제공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으로 알려진 홍콩청킹맨션은 알고 보면 비공식적 경제 거점이다. 아프리카계 브로커들, 밤 문화, SNS를 활용한 상거래가 융성한 곳이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우연히 청킹맨션의 ‘보스’ 카라마를 만나고, 그들이 세운 공동체가 ‘커먼즈’와 같은 조합 형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보다 깊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날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단단하고 튼튼한 공동체를 만드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조응> 팀 잉골드 지음, 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펴냄


사진/ 가망서사 제공

사진/ 가망서사 제공

'조응'이라는 대주제를 두고 자연의 일부로 귀 기울이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하늘을 나는 새들은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세상과 조응하지만 인간이 고안한 비행기가 항공을 소음과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은 조응의 개념에는 들어맞지 않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두꺼운 책장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몰랐던 자연을 만나고, 또 자연으로부터 배우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대우주를 체험하는 느낌마저 든다.




<휘말린 날들> 서보경 지음, 반비 펴냄


사진/ 반비 제공

사진/ 반비 제공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 인류학 교수인 서보경이 한국에서 HIV/AIDS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책이다. 책은 '앞줄에 선 사람들', '먼저 휘말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저자는 감염의 문제를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동체적 문제로, 감염인을 감염에 '휘말린 사람'으로 재조명한다. 뒷줄에 서 있는 비감염인 또한 '휘말림'의 가능성 앞에서 여러 사안들에 대해 경청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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