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바라보는 관객, 프라다 모드 런던
스크린은 흐릿했고, 객석은 선명했다. 런던 타운 홀에서 펼쳐진 프라다의 시네마틱 실험!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프라다 모드 런던 <The Audience>.
2025년 10월, 프라다는 프리즈 런던과 같은 시기에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열세 번째 프라다 모드를 선보였다. 킹스크로스의 캠던 타운 홀(Camden Town Hall)은 1937년 완공된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옥스퍼드 대학의 복원을 맡았던 영국의 보존 건축 전문 사무소 퍼셀(Purcell)이 10년에 걸쳐 되살려낸 역사적 장소다.
그날 저녁, 오래된 회의장의 천정에는 미세한 공기의 떨림이 맴돌았다. 스크린은 아직 꺼져 있었지만, 객석의 조명은 이미 준비된 듯 빛났다. 프라다는 이 공공적 공간을 통해 예술을 ‘보는 일’에서 ‘함께 경험하는 일’로 옮겼다. 시민의 집이라 불리는 타운 홀 안에서 관객과 예술, 그리고 도시가 하나의 무대로 이어졌다. 이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프리즈 런던과의 같은 시점에 열린 이번 행사는 브랜드가 예술의 중심 무대 속에서 스스로 대화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프라다는 이번에도 예술을 광고의 수단이 아니라 문화적 공론장으로 다루며 런던의 한복판에서 그 철학을 증명했다.
프라다 모드는 예술가 카스텐 휠러(Carsten Höller)가 기획한 ‘프라다 더블 클럽(The Double Club)’(2008/2009년 런던, 2017년 마이애미)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한 현대 문화 시리즈다. 2018년 첫 회를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예술, 음악, 음식, 퍼포먼스, 엔터테인먼트를 넘나들며 단 한 번뿐인 감각적 경험을 선사해 왔다. 이 플랫폼은 단순한 브랜드 이벤트를 넘어 예술이 사회와 만나는 방식을 끊임없이 갱신해 온 실험의 장이다. 데미안 허스트, 마틴 심스, 이숙경,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등 다양한 예술가와 감독, 건축가, 창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매회 동시대의 주제를 고유한 언어로 풀어내며, 럭셔리 하우스가 예술을 존중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 왔다.
런던에서의 이번 장은 그 실험의 가장 정교한 형태였다. 브랜드와 예술, 도시가 한 장면 안에서 서로를 비추며, 관람이라는 행위를 다시 정의했다. 예술과 도시,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한 공간 안에서 맞닿은 특별한 순간에 <바자>가 함께했다.




전시의 문이 열리자, 정면에 설치된 스크린이 천천히 깨어났다. 흐릿한 영상이 반복되며 한 장면이 시간의 결을 따라 천천히 확장되었다. 그러나 진짜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다. 객석을 채운 하이퍼리얼리즘 조각들이 존재한 것. 마치 조금 전까지 숨을 쉬던 사람처럼, 눈동자와 손끝의 긴장이 살아 있는 조각들이 관객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누가 관객이고 누가 작품인지 모호해진다.
이번 전시를 연출한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은 공간과 제도의 경계를 전복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미국 텍사스 사막에 세운 <Prada Marfa>, 2022년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에서 선보인 <Useless Bodies?> 를 더불어 이들은 늘 ‘예술이 놓인 자리’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번 런던에서는 ‘보는 행위’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프라다 모드 런던 <The Audience>.
<The Audience>는 영화의 한 장면을 중심에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객’을 조각으로 구현했다. 이어지는 <The Conversation>에서는 한 여성이 카페에 앉아 영상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두 작품은 현실과 스크린, 관람자와 피관람자,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유영하며 동시대 관객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몰입감은 영상 안이 아니라 공간 전체에서 발생한다. 조각의 시선, 실제 관람객의 몸짓, 그리고 화면의 잔상이 서로의 프레임 속에서 겹쳐질 때, 관람 행위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변주된다. 영상 속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시선의 흐름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긴장이 전해진다. 프라다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미지 과잉과 하이퍼커넥티비티, 그리고 주의력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관찰되고 얼마나 무심히 응시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깨닫게 만드는 것.
그날의 타운 홀은 영화관도, 미술관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 속 연장선상의 거대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속삭였고, 스마트폰의 불빛이 조용히 번졌다. 그 틈에서 조각 하나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듯 했고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스스로가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전시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관객을 ‘참여자’인 동시에 ‘피사체’로 전환시키는 다층적 장치. 엘름그린 & 드라그셋 듀오는 관람이라는 익숙한 행위를 거울처럼 뒤집어,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피로하고 또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드러냈다.

프라다 모드 런던 <The Audience>.
이들은 단지 시각적 경험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나타냈다. 조각의 정적, 영상의 흐릿함, 그리고 공간에 퍼지는 어두운 사운드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며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메시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느림과 여백이 만들어낸 사유의 속도가 전해진다. 이로 인해 관객은 전시를 관람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전시는 끝나도 시선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라다 모드는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 매회 도시마다 그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해, 예술을 소비의 장이 아닌 경험과 대화의 장으로 재구성해 왔다. 이번 런던 에디션 역시 그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브랜드가 도시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무대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프라다는 예술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럭셔리 하우스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한다.
그 실험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공공건물의 회의장이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관객은 스스로 그 장면의 일부가 되었다. 일상의 시간과 전시의 순간이 교차하고,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며, 우리는 예술의 물리적 형태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험의 밀도’에 집중하게 된다. 프라다는 이 경험을 통해 예술이 여전히 인간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힘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런던의 한가운데서 열린 이 시네마틱 실험은 예술이 어떻게 도시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브랜드와 예술 그리고 관객이 서로를 비추는 거대한 장면 속에서 프라다가 실현한 예술의 순간은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아있다.
Credit
- 사진/ © Prada
Celeb's BIG News
#에스파, #올데이 프로젝트, #김다미, #호시, #몬스타엑스,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B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