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의 작가가 만든 디지털 아트워크에 담긴 메시지
존 라프먼, 루 양, 염지혜, 권아람. 네 작가의 작업 이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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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ene
동시대 현실과 테크놀로지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4인의 작가가 완성한 디지털 장면들. 결정적 장면에 담긴 메시지는?

단채널 영상과 PVC 커튼, 소파를 혼합한 멀티미디어 작품 <Signal Rot (Catastrophonic I-IV)>의 영상 캡처 화면, 2025. © Jon Rafman, Spreuth Magers and Neon Parc

단채널 영상과 PVC 커튼, 소파를 혼합한 멀티미디어 작품 <Signal Rot (Catastrophonic I-IV)>의 영상 캡처 화면, 2025. © Jon Rafman, Spreuth Magers and Neon Parc
존 라프먼
인터넷과 게임 문화가 현대인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해온 존 라프먼. 2010년대 초반, 구글 스트리트 뷰에 포착된 돌발적인 이미지를 포착한 시리즈 <9 Eyes>로 주목받은 그의 관심사는 이제 AI 생성 영상과 숏폼 컬처를 향하고 있다. 신작 <Signal Rot>는 홍수 같은 재난 상황을 1인칭 시점으로 담은 영상을 극적인 사운드와 함께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이어 붙인 결과물이다. SNS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실제 영상과 AI가 만든 영상을 교묘히 뒤섞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사태의 심각함을 파악하기조차 모호해진다. 작가는 조작된 영상이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지금, 탈진실 사회를 은유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맞닿은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재생시키며 끝없이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속에 당신이 도출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AI가 현대 사회에서 갈등을 포착하는 방식이 어떻게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 수 있을지 탐구하고 있다.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이 시대의 주요한 문제는 ‘합의된 현실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에코 챔버’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옆 사람과 완전히 다른 진리 개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기존 신념이 강화되며 세상이 양극화되는 현상은 AI 알고리즘이 강화되는 방식과 거의 흡사하다.

<Doku The Creator>, 2025, 4K 단채널 영상, 59분 11초. © Lu Yang, De Sarthe

<Doku The Creator>, 2025, 4K 단채널 영상, 59분 11초. © Lu Yang, De Sarthe
루 양
루 양의 작품에는 줄곧 그의 디지털 페르소나 ‘도쿠(Doku)’가 등장한다. 자신의 신체를 3D 스캔해 만든 아바타 도쿠는 특정 젠더를 표방하지 않으며, 무용수부터 의사 혹은 킬러까지 영상 속 세계관 안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띤 채 변주된다. 가상현실과 서브 컬처, 종교(주로 불교와 힌두교)와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상은 도쿠의 시선을 대변하는 보이스오버가 덧입혀져 미래적인 애니메이션을 방불케 한다. 신작 <Doku The Creator>에는 도쿠가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최후의 생존자처럼 등장하는데, 초기작부터 작가가 천착해온 인체에 대한 사유가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루 양은 신체를 과장하고, 파편화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인간 의식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 즉 내면의 감정과 혼란을 신체를 통해 시각화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말하자면 신체를 디지털로 렌더링하는 행위는 루 양에게 고정된 형태에 집착하지 않고 정체성을 탐구하는 명상과 다름없다.
도쿠는 당신의 무의식 혹은 현실에 대한 예측 중 어떤 쪽에 더 가까운가? 시간이나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도쿠의 의식을 통해 당신이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도쿠는 내 무의식의 투영이자 현실의 본질로부터의 신호를 감지하는 수신기다. 불교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카르마의 흔적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꿈과 같은 존재랄까. 나는 도쿠의 꿈을 통해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으며, 지각은 구성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꿈속의 한 순간이 현실 속 수십 년의 삶에서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을 깨닫도록 만들 수 있다. 도쿠는 정체성, 형태, 심지어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유동적으로 변하며 마치 자각몽 같은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곳에서 나는 현실이 하나의 합의, 즉 공유된 환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도쿠는 선형적인 의미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의식과 상징적 인과관계의 패턴을 감지하는 존재다.

<에이아이 옥토퍼스>, 2020, 단채널 영상, 16분 35초. © 염지혜
염지혜
분홍돌고래와 문어, 사이보그와 바닷가재. 염지혜의 영상 작업에는 끊임없이 어떤 ‘존재’들이 등장해 인류의 미래에 관한 예언을 건넨다. 한 발짝 먼저 위험을 감지한 그들의 시선은 주로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향해 있다. 가령 플라스틱 과잉 같은 환경 문제부터 신종 바이러스가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나아가 최근 신작 <마지막 밤>에서는 AI가 초래한 삶의 속도가 인류의 종말을 부르지 않을지 염려한다. 3D 그래픽과 파운드 푸티지, 직접 촬영한 영상과 시각 효과 VFX 작업이 한데 합쳐진 영상은 과거와 현재, 경험과 기억 등 시간대를 오가며 이야기를 쌓는다.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겹겹이 이야기의 레이어를 더할 수 있는 영상의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이질적인 장면들로 응축된 장대한 서사시 같은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같이 고민해보자는 바람이다. 인간이 문어 같은 예민한 촉수를, 공감 능력을, 지혜를 닮는다면 고통을 감각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에이아이 옥토퍼스>처럼.
당신의 작업에 등장하는 존재는 생명체뿐아니라 ‘불’ 같은 요소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점점 넓은 범주의 대상으로 확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동시대의 현안을 지구의 역사나 인류 문명사와 함께 겹쳐보면서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고 이를 과거와 미래의 타임라인에 놓고 창발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품 속 존재들은 분홍돌고래나 문어와 같이 생물일 때도, 식물이나 불과 같이 세상을 이루는 근원적인 요소일 때도, 바이러스나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명징하게 존재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인간인 나와 동일시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물이지만, 동시에 나를 이루는 요소이거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나는 작업을 이어가며 감히 ‘그것이 되어봄’을 상상한다. 그럼으로써 기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볼 기회를 가지거나, 그간 상상해보지 못한 감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Walls>, 2024, 4채널 컨티뉴어스 비디오, LED, 아크릴 거울, 사운드, 가변 설치. © 권아람
권아람
권아람은 스크린 그 자체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대다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몰두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그는 디지털 스크린이 동시대 사회에 관한 개념적인 사유를 담아낼 수 있는 고유한 통로라 믿는다. 끊임없이 빛을 깜빡이는 스크린은 그 자체로 미디어이자 조각이다. 대표작 ‘Flat’ 연작은 ‘죽음의 블루 스크린(Blue Screen of Death)’에서 기인한 푸른 색상을 화면에 나타내며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오류를 재현한 것이고, <Walls>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이 이미지의 형태로 미디어에 실려 떠도는 관계를 짚은 작업이다. 6월 송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작가는 사회 전반에 침투한 AI 기술이 어떻게 시각과 의식을 과열시키는지 탐구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이미지 너머 스크린을 구성하는 원리나 요소 자체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단채널 영상을 다루다가 점차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써 스크린이라는 오브제가 가진 의미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한 몸체로 갖고 있으면서 검고 차가우면서도 가벼운 빛을 발산하는 그 모순적 물성. 그 점에 매료되었다. 그것에 새겨진 목적성이 어떤 의도와 맥락에서 형성된 것인지, 그리고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사회적 현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탐구하는 데 주목함으로써 보다 넓은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30초 릴스도 끝까지 보기 힘든 시대라지만, 예술가들의 실험이 응집된 영상 작업을 끝까지 감상하는 경험은 분명 사유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다.
Credit
- 글/ 안서경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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