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열리는 로에베의 전시
로에베가 다시 손으로 빚은 세계, «크래프티드 월드»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THE AGE OF THE HAND
기계가 세상을 정교하게 다듬는 사이, 인간은 점점 손의 감각을 잃어갔다. 로에베가 다시 손으로 빚은 세계, «크래프티드 월드»로 우리를 초대했다.

도쿄 하라주쿠에서 열린 «크래프티드 월드».
인간의 손은 단순히 사물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만든 사물의 ‘지속성’이야말로 그것들이 인간의 욕망과 시간의 소모를 견디며 세상에 객관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사물은 그것을 만든 인간보다 오래 남아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사물이 손으로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존재의 밀도를, 인간의 흔적을, 그리고 세계의 지속을 본다. 바로 그 ‘손의 시대’를 되찾기 위해 로에베는 도쿄 하라주쿠에 «크래프티드 월드(Crafted World)»를 펼쳐 놓았다. 손의 흔적이 살아 있는 공예는 기술 이전의 태도이자 삶을 직조하는 감각이다. 기술의 질주 너머에서 다시 마주한 이 전시는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감각, 기억, 그리고 정신이 어떻게 패션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들려준다.
1846년 마드리드의 가죽 공방에서 시작된 로에베는 지금, 179년의 시간을 응축한 듯한 «크래프티드 월드» 전시를 통해 수공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예술의 언어로 말한다. 도쿄는 로에베가 유럽 외 최초로 진출한 도시이자 수십 년간 이어온 문화적 대화의 무대다. 전시는 OMA 스튜디오와의 협업 아래 시간과 공간, 기억과 감각이 교차하는 건축적 경험으로 구현됐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영감받은 2m 높이의 백.

로에베가 전 세계 장인들과 나눈 연대의 방증, ‘United in Craft’.
전시장의 첫 장을 여는 ‘Born from The Hand’는 로에베의 태동을 알린 가죽 장인의 세계에서 시작된다. 초기의 맞춤 제작 가죽 제품과 최초의 아마조나, 플라멩코, 퍼즐 백 에디션, 건축 모형, 아카이브 사진, 광고, 앤시아 해밀턴과의 최신 협업, 리아나, 비욘세 그리고 2024 메트 갈라를 위해 제작된 의상들을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파블로 피카소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과 함께 선보이며 오늘날의 로에베가 있기까지의 서사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Welcome to Spain’에서는 스페인의 풍경과 전통이 로에베의 디자인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보여주며, 장인의 손길이 지역성을 어떻게 감각으로 치환하는지를 말한다.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인 파블로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과 함께 자유로운 감성의 로에베 파울라 이비자 라인에 등장한 지중해 바다와 해양 생물, 꽃, 식물, 새들을 선글라스, 가죽 참, 파우치의 형태로 생생하게 표현한 매혹적인 숲을 만나볼 수 있다.
‘The Atelier’는 공방이라는 은밀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백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수백 시간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손이라는 도구가 얼마나 정밀한 사고와 감정의 매개체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캐비어 자수, 상감세공, 오리가미, 3D 프린팅 등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 창작의 공간에서 우리는 반복과 차이, 익숙함과 낯섦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The Castle Room’에 들어서면 현실이 환상으로 변모하는 찰나를 마주한다.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영감을 받은 2미터 높이의 백은, 공예라는 연금술이 어떻게 상상력을 물질화하는지 보여주는 결정체다. 각기 다른 로에베 백의 요소들이 조립된 이 작품은 로에베가 가진 상징의 총합이자 공예의 미래를 향한 동화적 선언이다.
‘Fashion without Limits’에서는 로에베가 패션을 통해 보여준 실험적 태도가 펼쳐진다.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옷들이 몸이라는 형태에 조응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실루엣과 조너선 앤더슨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2013년부터 로에베가 선보여온 정교한 장인 기술, 조각적인 실루엣, 기발한 트롱프뢰유 효과,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또한,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에서 엄선된 54개의 룩을 입은 마네킹과 더불어 조너선 앤더슨 디자인 특유의 대담한 실루엣이 묻어나는 로에베 아트 컬렉션의 예술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예술작품으로는 양혜규의 텍스타일 모빌을 비롯해 윌리엄 턴불, 지지포 포스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테일러 러셀을 위해 제작한 로에베의 2024 메트 갈라 커스텀 룩.

로에베 아트 컬렉션 중 하나인 앨버트 요크의 작품,
전시의 마지막, ‘United in Craft’와 ‘Unexpected Dialogues’는 로에베가 전 세계 장인과 나누는 연대의 감각을 전한다. 400년간 교토에서 무쇠 찻주전자를 제작해온 전통을 지키는 카마(Kama) 장인을 비롯해 에콰도르 태피스트리 장인, 인도 리본 제작 장인, 남아프리카 바스켓 제작 장인까지 이들은 단지 전통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의 기술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을 위한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것”이라는 로에베의 철학은 이 협업 안에서 구현된다.
공중에 매달려 움직이는 플라워 정원, 숨겨진 동화적 공간들, 그리고 복원된 전통 작품에 이르기까지, «크래프티드 월드»는 우리가 익히 알았던 ‘전시’라는 형식을 낯설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는 단순한 브랜드 전시로 기억되지 않는다. 전시에는 손이 기억하는 시간, 눈이 감지하는 감각, 마음이 느끼는 의미에 대한 서사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공예는 느림의 미학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 자체다. 그리고 로에베는 이 태도를 패션의 언어로, 공간의 형태로, 그리고 오늘의 감각으로 펼쳐 보인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Loewe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스트레이 키즈, #BTS, #엔믹스, #블랙핑크, #에스파, #세븐틴, #올데이 프로젝트, #지 프룩 파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