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항저우 서호에서 열린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

가브리엘 샤넬의 파리 캉봉가 아파트 서재 한편에 있던 중국 항저우 서호가 그려진 병풍에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창조적 세계, 스타일리시한 언어, 풍부한 영감은 끝없는 역동성으로 해 질 녘 서호 위 런웨이에서 한 편의 꿈처럼 드리워졌다.

프로필 by 황인애 2024.12.21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틸다 스윈튼이 등장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 티저 영상의 한 장면.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틸다 스윈튼이 등장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 티저 영상의 한 장면.

지난 늦가을 이메일로 날아든 영상이 하나 있었다. 해 질 녘 매혹적인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답고도 짧은 필름.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이 파리에서 항저우로 떠나는 꿈결 같은 여정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역사적 도시이자 예술적 영감을 주는 항저우 서호에서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이 곁에 두고 즐겼던 중국 옻칠 예술품이자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제작된 20여 점의 고풍스러운 코로만델 병풍에서 시작되었다. 그중 파리 캉봉가 아파트의 서재 벽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병풍이 바로 샤넬이 2024/25 공방 컬렉션의 장소로 선정한 항저우 서호가 그려진 것.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일상으로 들어간 듯한 풍경 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 매혹, 여행, 꿈을 테마로 삼았다.
항저우 서호에서 펼쳐진 쇼.

항저우 서호에서 펼쳐진 쇼.

이번 컬렉션을 위해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은 특유의 미학적 감각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휘하여 하우스 앰배서더인 틸다 스윈튼, 레아 도우(Leah Dou), 신지뢰를 주연으로 한 영상을 제작했다. “샤넬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며 코로만델 병풍을 관찰했다. 병풍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왠지 초기 영화 스크린이나 작은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거대한 만화 같았다. 어디를 봐도 또 다른 일상의 모습이 펼쳐졌다. 내 모든 작품에 있어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장소다. 대부분이 내가 발견하고 사랑하게 된 특정 장소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그곳에 속한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여야 했다”라고 빔 벤더스 감독은 말했다. 파리 캉봉가의 특별한 골동품이 이번 컬렉션의 기조가 된 셈. 실제로 코로만델 병풍 안에서도 호수는 교류와 교감의 배경이 된다. 호수 표면에 물결이 일렁이고 수많은 운하, 다리, 탑을 이웃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병풍과 그 모티프는 가브리엘 샤넬이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중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병풍 속 이미지와 샤넬의 상상력이 결합되며 그만의 시각적 언어가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선보인 작품 전반에 걸쳐 중국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디테일이 등장한 것. 그에게 있어 서호는 과거 그러했듯이 전설과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였다. 영상 속에서 가브리엘 샤넬의 병풍은 노트북 화면부터 카메라를 통해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창으로 재해석되었다. 과거의 꿈과 현대의 습관이 결합되는 모습이 전통과 새로움을 모두 포용하는 현대 도시 항저우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한다. 배경이 된 항저우와 마찬가지로 영상은 과거와 현대,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이미지, 교감, 그리고 열린 마음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영상을 보고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12월 3일, 해가 질 무렵 항저우 서호에 다다랐다. 사원, 탑, 차밭으로 둘러싸인 서호는 그야말로 지상낙원 같았다. 중국식 목조 보트를 타고 안개 낀 그림자가 드리운 고요한 서호를 유유자적 건넜다. 그리고 도착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의 런웨이. 물결 위에 펼쳐진 런웨이는 사원의 탑 위로 해 질 녁의 노을이 얹혀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찰나에 시작된 쇼. 어깨를 강조한 롱 코트는 고급스러운 트위드, 새틴, 벨벳 소재를 사용하거나 작은 플라워 장식을 수놓은 모습으로 낮과 밤 모두 몸을 감싸며 신비로움을 발산했다. 더플코트, 쇼트 재킷, 오버사이즈 재킷에는 공방 팔로마에서 만든 프로깅(frogging)을 장식하고 실크 새틴 소재 라이닝을 더했다. 포켓, 슬리브, 칼라, 그리고 공방 몽텍스에서 수놓은 인광 브레이드는 실키한 질감으로 호수 위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났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가 여행인 만큼 여행가방, 베니티 백 등 핸드백 컬렉션뿐만 아니라 니트웨어, 수트에도 코로만델 병풍 모티프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음은 물론 ! 티셔츠, 뷔스티에, 카디건, 스커트, 드레스, 버뮤다 쇼츠, 팬츠는 코튼이나 트위드 니트 패브릭 소재로 편안함을 강조했고, 플로럴 프린트나 투톤 디자인을 적용해 우아한 레이어링을 놓치지 않았다.
르사주의 플로럴 모티프 자수는 때로는 플리츠와 러플을 넣은 플래스트런 장식 롱 드레스와 수트 전체를 뒤덮어 가브리엘 샤넬의 병풍을 직접적으로 연상케 했다. 제이드 그린, 핑크, 스카이 블루가 옻칠의 광택을 연상시키고, 빛바랜 블루 진은 호수 수면의 잔물결을, 블랙, 브라운 및 어두운 톤은 병풍의 목재와 밤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을 떠올리게 했다. 슈즈 컬렉션은 블랙 페이턴트 소재의 사이하이 부츠와 포인티드 슬리퍼,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이 좋아했던 편안한 미드 카프 부츠를 선보인다.
고급스러운 소재, 샤넬 공방의 장인정신, 역동적인 레이어링, 세련된 로맨티시즘이 어우러진 2024/25 공방 컬렉션은 세계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정의 기회를 선사한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공방과 장인
이번 컬렉션은 독창적 역동성이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의 창조적 세계, 스타일 언어, 그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했던 요소를 Le19M에 모인 공방의 장인정신을 통해 재조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방 컬렉션은 샤넬의 작품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장인들의 노하우를 기념하고 Le19M에 입주한 공방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2024/25 공방 쇼가 12월 3일 항저우에서 열리기 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촬영한 일련의 이미지를 보면 끊임없이 진화하는 섬세한 손길과 정교한 기술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르사주는 1983년부터 샤넬의 변함없는 파트너로 함께해왔으며, 2002년 패션 공방에 합류했다. 2024/25 공방 컬렉션에서 르사주는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코로만델 병풍 모티프에서 영감을 얻어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자수를 완성했다. 르사주의 텍스타일 디자인 부서에서 개발한 트위드는 코로만델 병풍의 풍부한 색감과 옻칠의 반사로 인한 반짝임을 연상시키기도.
1949년 파리에 설립된 자수 공방 몽텍스는 새로운 소재와 질감에 대한 연구를 통해 모든 작품에서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쇼를 위해 몽텍스는 꽃으로 수놓은 브레이드 장식을 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인광 실을 사용하고 핸드 페인팅 기법으로 음영 효과를 주어, 해 질 무렵 서호에서 진행된 쇼에 생동감을 더했다. 르마리에는 60년 넘게 매년 10회에 걸쳐 열리는 샤넬 컬렉션에 장식을 더해온 깃털 및 플라워 장식 공방이다. 2024/25 공방 컬렉션을 위해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같은 톤의 깃털로 장식한 파스텔 컬러 재킷을 선보였다. 그중 하나는 제이드 그린 실크 소재에 다이아몬드 퀼팅 패턴과 플리츠를 넣고, 튤과 마라부 깃털로 장식한 것으로 실제로 보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재킷은 라이트 블루 벨벳을 패딩 및 퀼팅 처리하고, 퀼팅이 만나는 부분에 엠보싱 및 아플리케 기법을 적용한 벨벳 플라워 장식을 올렸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Le19M의 공방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이 이번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고 있다.
2013년부터 르마리에에 합류한 로뇽의 장인들도 뛰어난 플리츠 기법으로 컬렉션에 완성도를 높인다. 로뇽이 플리츠를 넣고 르마리에에서 스모킹과 비드 작업을 한 오프화이트 실크 새틴 재킷은 폭과 방향이 다른 플랫 플리츠 두 개를 합쳐 3D 퀼팅 효과를 주었다. 쇼의 마지막을 장식한 드레스는 선버스트와 오 보뇌르 데 담(Au bonheur des dames)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플리츠를 결합한 것으로, 르마리에에서 레이스, 루렉스사, 골드 비즈를 사용해 커다란 까멜리아 패턴을 완성한 인레이 기법이 돋보인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창의적 실험실인 모자 공방 메종 미셸은 1936년 오귀스트 미셸(Auguste Michel)이 설립하였으며, 1997년 샤넬에 인수되었다. 이번 공방 컬렉션을 위해 메종 미셸은 레더 또는 펠트 소재로 챙이 좁은 커다란 모자를 제작해 트위드 소재의 벨트 장식 재킷과 플리츠 스커트로 구성된 여행자 느낌의 실루엣을 완성했다. 1950년 로베르 구센이 설립한 구센은 브론즈, 수정, 우드, 납유리로 아름다운 주얼리, 장식품, 인테리어 오브제를 제작하는 금 세공 공방이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구센은 샤넬 아카이브의 하트 모양 주얼 장식에서 영감을 얻어 일련의 금도금 작품을 제작했다. 뒷면에는 수련 잎의 질감을 재현한 디테일을 더해 가브리엘 샤넬의 캉봉가 31번지 아파트를 위해 제작한 테이블을 연상시킨다.

Credit

  • 사진/ © Chanel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