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가장 '우에다 쇼지'다운 사진
돗토리현 작은 시골마을에 살던 소년의 손에 카메라가 쥐어지자 모래언덕은 시공간이 사라진 완전한 세계가 되었다. 지금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국내 첫 회고전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에 가면 어느 사진가의 애틋한 순정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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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위의 군상(A Crowd on the Dune)>, 1949, 18.5x19.8cm. © SHOJI UEDA
하퍼스 바자 ‘우에다조(우에다 스타일)’라 불릴 정도로 일본과 해외 사진계에서 우에다 쇼지 작업은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볼 기회는 드물었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이번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나요?
김범상 십여 년 전쯤 우에다 쇼지의 사진을 처음 보고 그 순간 팬이 되었어요. 해외 한 사진전에서 마스타니 상이 혼자 아카이브를 정리하고 전시 준비에 힘쓴다는 걸 알게 되었고, 피크닉을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연락하기 시작했죠. 그간 코로나도 있었고, 마스타니 상이 직장생활로 바쁘기도 해 이제서야 열게 됐네요.
마스타니 유타카(이하 마스타니) 그때가 5년 전쯤이었던 것 같네요. 할아버지인 우에다 쇼지 작가는 생전 여러 작품을 발표했지만, 발표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품이 많았어요. 1980년대 인상주의에 영향받은 듯한 컬러 프린트 작업이 대표적이죠. 이번 전시는 그간 출간했던 도록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작품을 포함하기에 많은 관객들의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아빠와 도오루(Dad and Tocchin)>, 1949, 26.7x12.2cm. © SHOJI UEDA
마스타니 맞아요. 한국 전시 직전 중국과 핀란드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때 전시의 큰 골격은 정리한 상태였지만, 김범상 대표와 수장고에서 작품을 고를 때 좀 더 과감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기관에서 소장하지 않은, 오롯이 제가 보관해온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퍼스 바자 국내에선 그동안 1950~70년대 활동을 시작한 토마츠 쇼메이, 모리야마 다이도, 아라키 노부요시처럼 리얼리즘 기조 아래 파격적인 앵글과 거친 입자로 일본 사회의 면면을 포착한 사진가의 작업이 주로 소개되었죠. 도쿄에서 활동한 이들과 달리 평생 지방 돗토리현에서 신발가게를 개조한 스튜디오를 열어 작업한 이력이 독특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반드시 우에다 쇼지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범상 저는 태생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보다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좋아해요.(웃음) 사람들은 호소에 에이코, 토마츠 쇼메이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한 번 보면 쉽게 매혹되고 놀라곤 하죠. 그러다 우에다 쇼지의 사진을 보면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결국 오래도록 매료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죠. 국내에 대대적으로 이 작가를 소개한 적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1913년에 태어난 작가는 전쟁 이전부터 활동해왔고 2000년도까지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죠. 그 점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했죠.

<모래언덕의 바다(Sea of Dune)>, 1950, 24.6x38.8cm. © SHOJI UEDA
김범상 가장 잘 알려진 모노크롬 작업,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와 <가족> 시리즈였죠. 보고 있으면 마치 핵전쟁이 일어나고 소녀들이 모든 걸 다 잃고 세상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사구에서 연출된 사진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바람이 모든 걸 삼켜버릴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죠. 밝은 표정의 아이들과 가족들이지만 그 안의 무언가 미묘한 느낌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마스타니 우에다 쇼지의 사진에는 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쿨한 거리감이 존재해요. 우에다는 피사체와 사진가 간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려 항상 노력하셨죠. 만지면 없어져버리거나 피사체를 결코 건드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거리감이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일생에 걸쳐 연구를 해오신 거예요. 관통되는 일관된 정서죠.
하퍼스 바자 그 거리감이 작품을 더욱 연극적이라 느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는 관객은 고정된 위치에 있고, 피사체들이 사진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연출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작가는 특히 사구라는 장소에 대해 각별한 애착을 가졌죠. “사구는 어디에서 찍어도 사진이 된다”라는 작가의 말을 전시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요.
마스타니 우에다 쇼지가 가지고 있는 피사체에 대한 거리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그가 좀 겁쟁이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촬영으로 인해 피사체 본연의 모습이 왜곡되는 건 아닐까, 겁을 내시기도 했거든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배경이 되었던 곳이 사구였죠. 가장 피사체를 심플하게 찍을 수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 물론 스튜디오처럼 그곳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사구의 특징상 거리감이 어디에서 찍든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는 면이 있거든요. 할아버지는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진 후 정물을 주로 찍기 시작했는데, 그때 사구는 물건을 두고 찍는 배경으로 존재했어요.

<소녀들(The Girls)>, 1945, 20.3x31.7cm. © SHOJI UEDA
김범상 대다수의 위대한 작가들, 위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은 이렇듯 플랫한 표면을 찍어 그 너머의 것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우에다 쇼지의 사진은 프린트의 크기가 크진 않지만 인물의 표정, 얼굴에 떨어지는 빛을 보면 그 이면의 세계, 사진 속 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때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들죠. 그가 사람을 정물화처럼 단순히 언덕에 배치해 찍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표면을 촬영한 것으로 더 큰 이야기를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라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모더니즘 화가, 특히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마스타니 젊은 시절, 마그리트 같은 작가들과 서양 회화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평소 시각적인 착시를 일으키는 듯한 사진을 찍고 싶어했죠. 예를 들어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이라는 사진에서, 맨 앞에 자전거를 탄 인물은 실제로는 모래언덕 뒤 아주 멀리 자리해요. 사진은 평면적으로 보이고 인물들의 구도가 삼각형을 이루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각 피사체들이 제각각 다른 위치에 자리하죠.
하퍼스 바자 빛을 사용하는 우에다 쇼지만의 기법에 관해서도 궁금합니다.
마스타니 돗토리현은 겨울이 되면 맑은 날을 보기 힘들 정도로 흐린 날이 많은데, 그런 날씨에 촬영하는 걸 특히 좋아하셨어요. 뭉게구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흐린 회색빛의 하늘 아래에서요. 그때 사진을 찍으면 좀 더 평면적으로 연출되기 때문이었죠. 종종 암실에서 인화를 하면서도 몇 가지 테크닉을 고수하셨어요. <새끼 여우의 등장>이라는 작업에선 모래언덕 위 여우 가면을 쓴 아이 주변으로 빛이 드는데, 이건 인화를 할 때 역으로 가운데를 빛이 안 받도록 가려놓고 나머지만 어둡게 현상하는 식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모래언덕 위의 인물(Portrait on the Dune)>, 1950(경), 20.8x20.7cm. © SHOJI UEDA
마스타니 “사람도 물건도 같다”라는 말을 일관적으로 해오셨죠. 대상을 다룰 때 늘 동일한 태도를 취하셨어요.
김범상 사실 컬러 작업을 포함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끊임없이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아마추어라 칭하며 아마추어 정신에 대해 강조한 것도, 작업의 순수한 재미와 기쁨을 발견하며 도전하는 태도가 우에다 쇼지라는 예술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이죠. 펼쳐진 사물들 또한 인물 사진처럼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죠.

<떠밀려온 것들(Small Drifters)>, 1948, 22.9x21.9cm. © SHOJI UEDA
피사체와의 특수한 거리감이 있는 사진, 철저히 계산된 구도가 느껴지는 사진이라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을 겸비한 사진이 우에다 쇼지 사진다운 사진이라 생각합니다. - 마스타니 유타카
하퍼스 바자 전시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72세에 처음 상업 및 패션 사진에 도전한 뒤 1985년 매거진 <브루터스>와 작업했을 당시 70대에도 산뜻한 청년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작가를 묘사한 점이었어요. 20대에 바우하우스를 다룬 서적에 열광했으며 말년에도 도쿄나 해외에 가면 양복점과 자수 스웨터 쇼핑을 하는, ‘예사롭지 않은 멋에 대한 고집’을 보여주는 부분이요.
마스타니 언제나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말씀해주시는 경향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게도 그랬고, 손자인 제게도 친구같이 대해주셨죠. 제가 좋은 재킷을 입고 가면 항상 조금 더 보태줄 테니 자기에게 달라며 가져가시곤 했죠.(웃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같이 쇼핑을 가기도 했어요. 진짜 친구 같은 사이였죠.
김범상 저도 묻고 싶은데, 좀 익살스럽고 장난을 잘 치는 분이셨나요? 그렇게 보이는 사진들이 많아서요.
하퍼스 바자 <꽃을 문 자화상> <점프하는 나> 같은 작업이 대표적이죠.
마스타니 항상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셨죠. 말장난 하시는 것도 좋아하셨고요.
하퍼스 바자 작업할 때 습관이나 반복적인 의식이 있었나요?
마스타니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주로 말년의 모습이긴 하지만, 생각나는 건 작업을 시작하실 때까지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작업 시작 전에는 엄청 고민하시지만 막상 셔터를 누를 땐 굉장히 빨리 찍으셨죠. 뷰파인더로 인물을 계속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셔터를 누를지 고민하는데, 대상이 원래 하고 있던 포즈와 다른 움직임을 취하거나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 셔터를 누를 때가 많았어요. 그런 순간이 아까 김 대표님이 말한 것처럼, 인물을 볼 때 이면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하퍼스 바자 ‘연출 사진’이라는 장르 안에 속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연출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을 즐기며 작업한 거네요.
마스타니 그 찰나를 찍기 위해서 사진기를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우에다 쇼지’다운 작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마스타니 피사체와의 특수한 거리감이 있는 사진, 철저히 계산된 구도가 느껴지는 사진이라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을 겸비한 사진이 우에다 쇼지다운 사진이라 생각합니다.
김범상 연출되어 있지만 연출된 것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지고,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이 아니라 사진만이 지닌 여러 우연성이 자연스럽게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죠.
※ 우에다 쇼지의 개인전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은 피크닉에서 2025년 3월 2일까지 열린다.
Credit
- 사진/ © SHOJI UEDA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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