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 조앤 조나스가 50년 동안 써온 드라마

16mm 필름으로 촬영한 무성 흑백 영상작품 <Wind>는 몰아치는 바람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소리 하나 없어도 광포한 바람의 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인 조앤 조나스는 50년 동안 자연의 원초적이고 매혹적인 힘과 인류에 대해 드라마를 써왔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10.25
Joan Jonas, <Wind>, 1968, 5:37 min (black and white, silent), 16mm film. © Joan Jonas/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미술사와 조각을 전공한 후 가장 먼저 벌인 예술활동이 춤과 공연이다. 여성 아티스트가 퍼포먼스를 벌이는 일이 드문 1960년대였다. 항상 학문적인 작업으로 표현한 예술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 형식과 내 예술작업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시의 구조는 춤이나 퍼포먼스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춤이란 움직임을 뜻한다. 나는 전문적인 무용가는 아니지만 카메라, 공간, 작업의 내용에 맞춰 움직인다. 종종 소리에서 영감을 받거나 동기 부여를 받는다. 조각에서 퍼포먼스로 관심이 옮겨갈 즈음 뉴욕의 많은 워크숍에 참가했다. 춤과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을 추상적으로 연구하는 것에서 물리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미술사를 공부한만큼 미술사는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알려진 역사와 관련이 있다. 예술의 발전 과정, 각 문화가 자신들의 예술 실천과 관련하여 어떻게 행동했는지, 하나의 실천이 다른 것과 어떻게 중첩되는지가 내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뉴욕에서 벌어졌던 여러 예술적인 움직임과 퍼포먼스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내가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당신의 첫 공연에서 등장한 거울과 보르헤스의 시는 초기 작품을 이루는 주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보르헤스와의 관계는 그의 시와 이야기가 처음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시작됐다. 보르헤스의 이야기 모음집 <라비린스(Labyrinths)>에서 거울과 관련된 모든 인용문을 베껴 썼다. 거울의 존재를 신비롭고 강력하며 무한하다고 묘사한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는 이 인용문을 외우고 내가 디자인한 거울 의상을 입고 첫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17명의 퍼포머가 2×5피트의 유리 거울을 들고 관객들에게 반사했다. 거울들은 공간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퍼포머들의 몸을 반사하면서 공간을 조각냈다. 이후에도 거울은 물체이자 개념으로서 내 감각과 발전에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리고 문학은 내게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보르헤스 외에도 아이슬란드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 미국 시인 힐다 둘리틀 등 여러 작가가 내게 영향을 미쳤다.
비디오카메라 소니 포터팩(Portapak)은 백남준을 비롯해 당시 여러 작가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이 도구를 취한 후 가장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나? 소니 포터팩은 예술가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TV 모니터에서 자신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로서는 커다란 혁신이었다. 이 기능은 내 작업 방식에 그대로 적용되었고 자체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에서 체류한 시기와 맞물린다. 이때 비디오 작품을 통해 가면, 화장으로 얼굴을 감추고 ‘오가닉 허니’라는 역할로 분한다. 스스로 연기하고 디렉팅하는 비디오아트의 전초가 된 작품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특히 시 문학과 노(能), 가부키 연극 전통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노와 가부키에서 가면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 문화에 깊이 입문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도쿄의 한 갤러리를 위해 비디오 작품 <Organic Honey>의 짧은 버전을 만들었지만, 실상 이 작품은 뉴욕에서 완성되었다.

글래드스톤 전시 전경. © Joan Jona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Photo: David Regen

바람이 우리의 움직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나는 그 이후로 계속 바람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바람이 그 힘으로 움직임과 이미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다양한 영상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 태동기에 선구자로서 활동했고 지금까지 작업을 하는 동안 스스로 행한 변화와 변하지 않고 지킨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1970년 일본에서 포터팩을 구입한 이후 비디오 기술을 이용해 작업해왔다.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넣자마자 스튜디오에 앉아 즉시 실험을 시작했다. 내가 직접 이미지의 주체가 되어 공연 방식에 따라 그 주체를 변화시킬 수 있었고, 점차 비디오카메라 기술과 내가 그 카메라와 공연자로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기반한 작업을 발전시켰다. 당시 내 주요 관심사는 여성과 남성, 어두움과 밝음 같은 요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지만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변함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의 첫 전시 «바람이 노래하다»를 마쳤다. 관람객들은 영상작품인 <Wind>를 보며 1968년의 겨울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1968년 가장 추웠던 날, 어머니가 살던 곳과 매우 가까운 롱아일랜드의 해변으로 나갔다. 다른 공연자들과 나는 카메라와 관계성을 유지하며 짝을 지어 간단한 동작을 수행했다. 우리 중 두 명은 거울 의상을 입고 있었다. 바람과 싸우며 재킷을 벗었다가 다시 입는 장면이 있다. 내가 흥미롭고 멋지다고 느낀 것은 바람이 움직임을 만들어낸 방식이었다. 바람이 우리의 움직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나는 그 이후로 계속 바람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밖으로 나간다.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바람 속에서 작업한다. 왜냐하면 바람이 그 힘으로 움직임과 이미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전시장에 모빌처럼 걸려 있던 최신작 <By A Thread in The Wind>는 베트남 전통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연이다. 바람과 종이는 떼어놓기 어려운 사이다. 나는 평생 종이, 특히 일본과 여러 나라의 수제 종이를 사용해 작업해왔다. 종이는 의외의 강인함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서 형상을 만들기 용이하다. 마치 조각처럼 작업할 수 있다. 조각은 내 작업 언어의 기본 요소 중 하나다. 나는 내 작업을 어떤 면에서는 조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1960년대와 그 이전에 조각으로 여겨졌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조각이다.

Photo: Toby Coulson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자연은 핵심 주제이며 일관된 배경으로 등장한다. 우리 모두의 곁에 존재하는 자연에서 어떤 특별함을 찾는지. 자연은 내게 객체가 아니라 장소다. 이는 내 작업에 시각적으로, 음향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놓여지는 조건과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서울 개인전은 첫 작품과 최근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제목 또한 ‘바람’으로 연결됐다. 과거의 아이디어를 현대에 다시 탐구하고 재구성하는 행보를 보여왔는데 이런 작업의 흐름에 이유가 있나? 자연스러운 흐름과 발전이다. 종종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이어진다. 최초에 상상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작업에는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통일성이 있다.
오랫동안 지켜온 루틴으로 산책을 나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최근의 하루는 어떤가?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신문을 읽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음악을 듣고 문학 작품을 읽으며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억지로 떠올리지 않아도 주변에 대한 관심이 식는 법이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래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50여 년 동안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듣고 싶다. 예술에 대한 사랑. 나는 예술을 바라보고 박물관과 갤러리에 가서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열심히 작업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 그 에너지가 나를 이끈다.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드로잉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사랑해야 한다. 인정받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을 확실히 하길.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작품 세계 안에 일관성을 갖는 작가들의 더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글래드스톤 제공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