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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이 된 차승원, 김강우, 김선호

차승원, 김강우, 김선호. 혹은 킬러, 추격자, 설계자. <폭군>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 세 남자의 광기 어린 혈투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8.23
(왼쪽부터) 김선호가 착용한 핀스트라이프 재킷은 Ami. 차승원이 착용한 레더 재킷은 Ferragam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강우가 착용한 코트, 이너는 Ami.



하퍼스 바자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폭군>은 초인 유전자 약물의 샘플을 차지하기 위해 세 남자가 전력으로 충돌하는 이야기입니다. 캐릭터들의 남성성에 보다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차승원 제가 연기하는 전직 요원이자 킬러 ‘임상’은 폭력적이지만 말은 느릿느릿하고 노쇠한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뭔가를 수행할 땐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해내는 것이 그만의 매력이자 변별성이 아닌가 싶네요. 어떻게 보면 일상생활에선 바보 같고 치밀하게 잘 못하는데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수행할 시에는 둔탁한 흉기가 예리하게 확 들어가는 느낌을 준달까요. 이 캐릭터는 단점조차 매력이에요. 단점이 있어야 장점이 부각될 수 있죠. 고등학생들과 부닥치는 장면에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노출하는데, 그런 식으로 찍자고 박훈정 감독님께 제가 제안을 했던 경우예요. 이런 장면이 있어야 목적을 수행할 때의 모습과 간극이 커 보이니까요.
김강우 말씀하신 남성성이라는 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남성성이 부각되는 작품이 많지 않은 편이죠. 1980년대 말 <영웅본색> 시리즈 같은 홍콩 영화들은 지금 봐도 괜히 심장이 쿵쿵 뛰는 느낌이 들어요.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무모한 자신감이 느껴져서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무모한 자신감을 표출하는 캐릭터들이 드문 것 같고요. 서부영화의 경우, 두 사람이 대결하면서 총을 쏘면 한 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같이 죽을 수 있는데도 자존심과 자신감,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으로 맞붙죠. 제가 연기한 ‘폴’이 그런 식이에요. 폭주기관차 같은 추격자랄까요. 한마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서운 게 없는 남자죠. 능력도 완벽하고 미국이라는 뒷배도 있고, 너희들은 나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각기 다른 색을 내는 캐릭터가 있는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하퍼스 바자 김선호 배우가 연기한 ‘최국장’ 역은 액션이 많지 않고 대사와 눈빛으로 상대방을 압도해야 했죠. 임상이 아이처럼 요구르트를 먹는 장면에서 캐릭터 특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면, 최국장의 경우엔 토스트를 먹으면서 수싸움을 하는 장면이 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김선호 최국장은 자신이 속한 기관에 대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강한 리더예요. 기관을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달려가죠. 그 가운데 한 선택들이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는데 그 모호한 지점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남자답다고 느껴졌어요. 큰 사건에 휘말리는데 동요하지 않죠. 차분하고 냉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선택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만의 매력이에요. 말씀하신 토스트 먹는 장면은 최연소 국장인 그가 얼마나 많은 경험치가 있는 인물인지 보여주죠. 자신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능구렁이처럼 감추면서 마지막 한 번에만 칼을 드러내는 연기였어요. 다른 국장(경쟁자)에게 “직급은 똑같잖아”라고 말하면서 눈빛을 바꿔요. 토스트를 먹는 게 그 장면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빌드업이었기에 최대한 능글맞게 연기했습니다.
레더 셔츠는 Bottega Veneta.

하퍼스 바자 김강우와 김선호, 두 배우는 작년 개봉한 <귀공자>에 이어 <폭군>으로 재회했습니다. 전작에 이은 또 한 번의 대결이 기대되는 볼거리 중 하나죠.
김선호 폴과 붙는 장면에서 오히려 저는 정적이에요. 폴이 더 몰아붙여요. 어르고 달래죠. 반면 최국장은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고요. 서로 굽히지 않고 부닥치다가, 폭군 프로젝트로 인해 모두가 맞닥뜨릴 때 끝내 부러져요.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최국장은 보기 쉽지 않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강우 두 인물이 붙는 장면은 총, 칼 같은 무기만 안 들었을 뿐 혈투를 벌이는 느낌이었어요. 서로 말은 차분차분히 하지만 피는 용암처럼 끓어야 하는 장면이었죠. ‘그래, 어디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평행선을 달리며 치닫는달까요. 두 캐릭터의 서로 다른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날 거예요.
김선호 최국장은 선배들이 가장 신임하는 후배였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선배들이 희생했고요. 프로젝트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었죠. 어떻게 보면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올곧은 인물이에요. 연기하면서 스스로 올바른 일이라고 믿는 최국장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왼쪽부터) 김선호가 착용한 재킷, 이너 톱, 팬츠는 모두 Wooyoungmi. 로퍼는 Valentino. 김강우가 착용한 코트, 이너, 팬츠는 Ami. 슈즈는 Amble.


하퍼스 바자 궁극적으로는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세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선악의 기준이 무너지지 않나요?
차승원 파국으로 치달으며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죠. 시나리오를 봤을 때 엔딩에 대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작품을 보시는 분들도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뒤틀린 최국장과 사대주의에 빠진 폴의 대화가 꽤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건드리는 부분, 그런 대사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김강우 선악의 개념으로 평가하기에는 애매합니다. 폴은 우월주의에 빠져 있고 남들이 자신의 상대로 보이지 않거든요. 이 캐릭터가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를 인정한다는 점이죠. 다른 사람은 다 무시하는데 최국장은 인정해요. 괴물 아저씨라고 부르는 임상도요. 그러면서 결국 같이 달려간다는 게 재밌어요.
하퍼스 바자 폴과 최국장이 된 두 배우가 캐릭터를 바꾸어 연기하면 어떨까 상상해봤습니다.
김강우 힘들지만 폴을 재미있게 연기했어요. 제가 최국장을 연기하면 어땠을까 생각은 안 해봤지만, 선호가 폴을 연기하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비춰보게 되더군요. 분명 다른 색이었을 것이고,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김선호 강우 선배님이 최국장을 연기하셨으면 더 쓸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날카로운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최국장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차승원 좀 더 시니컬하게 되었을 것 같은데.
김강우 그건 나이에서 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제 나이대에 최국장을 연기한다면.
차승원 음. 그럴 수 있지.
김강우 전 사실 선호의 연기에 놀랐어요. 선호가 최국장의 쓸쓸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최국장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선호가 결코 어리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편집본을 보는데 선호가 남성성과 쓸쓸함을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나이구나, 싶어서 감탄이 나더군요. 나이 들어 보이거나 중후한 멋을 내기 위해 수염을 기른다든지, 비주얼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정작 연기를 보면 그런 건 필요 없단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충분했어요.
레더 재킷은 Ferragamo.


하퍼스 바자 차승원 배우를 2010년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자주 뵈었을 때의 얘긴데요. 나이가 들수록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 진짜 남성의 매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요즘의 연기 화두는 무엇인가요?
차승원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찍고 나서 연기를 할 때 뭘 안 하는 것이 참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연기의 여백이라고 할 수 있겠죠. 과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성도 괜찮지만 지금은 서서히 무너져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폭군>의 세 남자는 워낙 강한 캐릭터들이에요. 이런 연기도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앞으로는 무너진 남성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네요.
하퍼스 바자 오늘 스튜디오에서 함께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남자의 향기가 나는 액션이나 필름 누아르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세 배우가 다른 장르에서 다시 만난다면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차승원 생활감 있는 연기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벼운 코미디는 어떨까요?
김선호 저도 코미디! 좋습니다.
차승원 생활감이 있으면 재미도 있을 테고. 요즘 대부분이 장르물이라 남자 배우들이 코미디를 하는 건 별로 없으니까 좋을 듯하네요.
김강우 삼형제인데 이복형제인 거죠. 서로 접점이 있으면서 다툼이 있을 수도 있고.
김선호 다른 건 몰라도 다들 같은 집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저녁쯤에는 모두가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거죠. 승원 선배님이 요리하시고 제가 심부름하는 역할을 하면서 각자 사연만 풀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승원 선배님이 큰 형인 거예요. “오늘 회사에서 어땠어?”로 시작해서 같이 수다 떠는 느낌.
김강우 그중에 돌싱도 있고 노총각도 있고요.
김선호 이런 작품 찍을 수 있게 다들 도와 주세요!(웃음)
(왼쪽부터) 차승원이 착용한 코트, 이너 슬리브리스, 팬츠, 목걸이, 벨트, 로퍼는 모두 Gucci. 김강우가 착용한 코트, 재킷, 팬츠, 슈즈는 모두 Valentino. 김선호가 착용한 레더 재킷, 팬츠는 Gucci.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생활감 있는 코미디를 얘기하니 갑자기 <세 남자와 아기>가 떠오르네요. 앞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차승원 앞서 설명했지만 여백이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그 여백 덕에 계속 생각나는 연기요. 장르를 떠나 뭔가를 마구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래서 덜 하는 연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매몰되기보다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더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밑그림이 확 그려지는 배역이 있는 반면, 어떤 배역은 연기하면서 점점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죠. 후자에 목말라 있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봐야 ‘저렇게 사람을 상대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은 욕심인 거죠.
김강우 저는 근래에 멜로를 하고 싶었어요.
차승원 야!(탄성) 좋다.
김강우 가슴 절절한 멜로. 요즘 들어 아주 상처받은 두 영혼이 만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처럼 완전히 바닥까지 가는 거죠. 순수하고 전율적이면서도 끝으로 달려가는 사랑.
차승원 10년 전만 해도 작품의 대다수가 학원물, 청춘물이었는데 조금씩 트렌드가 바뀌면서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잖아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김선호 저는 장르와 상관없이 다 욕심이 나요. 취향이 좀 올드한 면이 있어요. 한결같다고 할까요. 가족에 속해 있는 누구이고 싶어요. 특별한 존재이기보다 어떤 동네나 가족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요.
코트는 Ami.


하퍼스 바자 평범하거나 여백이 있는 캐릭터를 만난다고 해도 배우로서 선뜻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일 텐데요.
차승원 맞아요. 그래서 배우에게는 독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상상력과 안목이 있어야 하고, 안목을 기르려면 사람을 엄청나게 연구해야 하죠. 결국 부단히 공부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데, 배우도 인간이다 보니 게을러요. 저 역시 지금도 공부하는 과정에 있고요. 우리는 사람을 보여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배우 생활이 끝날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제 각각이라 지나온 사람에 대해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이 된다고 봐요. 사람 유형별로 노트를 하고 그 사람의 삶이 어땠는지, 왜 어떻게 되었는지, 계속 분석하고 연구해놓으면 엄청난 자산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진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사실은 평범한 연기도 비범하게 보이는 거죠. 비범하게 보이는 여백, 그것이 요즘 들어서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김강우 할리우드 영화들이 세분화된 것과 달리 한국의 영화는 점점 다양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영화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작지만 메시지가 있는 영화가 많이 있었거든요. 지금 이 산업의 상황이 많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저 역시 사그라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다양한 연기를 하면서 선배님이 말씀해주신 평범함을 발산해야 연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붙을 텐데 말이죠.
차승원 (끄덕끄덕) 그렇지!
김강우 머릿속으로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선 제작이 되질 않는 형편이에요. 사실 차승원 선배님이 그런 연기의 대가셨다고 생각해요. 소소한 코미디나 일상적인 이야기에 놓인 캐릭터요. 요즘은 드물죠.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블루스>가 너무 좋았어요. 선배님도 연기하시면서 비슷한 걸 느끼시지 않았을까. 한동안은 강하고 날 서 있는 연기만 해오셨으니까요. 저 역시 그랬고요.
코트, 팬츠는 Versace. 이너 톱,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은 배우 본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차승원 배우는 선배로서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두 배우는 어떤 연기를 하면 좋을까요?
차승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요. 진짜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저 두 배우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는 작품만 만나면 불길이 일어나는 건 삽시간이에요.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죠.
하퍼스 바자 김선호 배우는 막내로서 두 선배 배우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나요? 슬쩍 훔치고 싶은 것요.
김선호 강우 선배님의 날카로움! 사실 승원 선배님은 평범한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하시죠. 범인(凡人)의 여유로움과 유연함. 그런 점을 너무나 닮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에 <선생 김봉두>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차승원 야, 그게 벌써 22년 전 영화야!(웃음) “술래잡기 고무줄놀이~”(<선생 김봉두> 속의 노래 ‘보물’을 부른다.) 모쪼록 <폭군>의 멋진 캐릭터들을 즐겨주세요. <폭군>에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두 편, 10월에 조선시대 사극 <전,란>과 내년 2월에 액션 드라마 <광장>으로 또 만나뵐 것 같습니다.

Credit

  • 사진/ 고원태
  • 프리랜스 에디터/ 김석원
  • 인터뷰/ 전종혁
  • 스타일리스트/ 김혜정(차승원),이미영(김강우,남주희(김선호)
  • 헤어/ 강승우(차승원),김호연(김강우),박미형(김선호)
  • 메이크업/ 이은정(차승원),지민(김강우),김도연(김선호)
  • 프롭 스타일리스트/ 김소정
  • 어시스턴트/ 허지수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