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라티파 에샤크의 '검은' 그림

당신은 이 그림의 앞면을 볼 수 없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4.08.03
공교롭게도 지난 3년간 라티파 에샤크의 각기 다른 작업들을 목도하고 있다. 공간 전체를 무언의 콘서트장으로 바꾼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스위스 국가관의 «The Concert», 작가의 친구들과 그들의 밤문화를 최신식 프레스코화로 표현한 2023년 광주비엔날레의 <밤 시간(심 아우치가 보았듯)>. 그리고 이번엔 다섯 점의 회화 연작이 암실 같은 공간에 차분하게 걸려 있다. 뒤집힌 채로. 2013년 그가 마르셀 뒤샹 상을 수상했을 때 들었던 심사평처럼 “초현실주의와 개념주의 사이에서 상징의 중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의 시선은 여전하되 표현 방식이 달라진 셈이다. 풍경화의 앞면은 벽 쪽을 향한 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고, 커튼처럼 흘러내린 캔버스의 끄트머리만 간신히 보인다. 작가는 익숙한 풍경 대신에 불규칙하게 덧칠한 그림의 뒷면을 제시하며 관람객이 풍경화에서 기대하는 바를 완전히 배반한다. 오늘날 풍경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세계를 대면한 작가의 위치는 어디인가. 작가는 자신을 보들레르 시에 등장하는 ‘하늘에서 갑판 위로 끌려온 앨버트로스’에 비유한 뒤 그렇게 묻는다. 내가 보았던 그것을 과연 당신도 볼 수 있는가. 흘러내리는 캔버스의 형태가 마치 날개가 꺾인 앨버트로스처럼 보였다.

※ 라티파 에샤크의 «Les Albatros»는 6월 28일부터 8월 17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Credit

  • 사진/ 페이스갤러리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