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샤넬, 마르세유에 정박하다

건축과 음악, 예술, 그리고 춤, 이 모든 것이 찬란히 꽃피운 태양의 도시. 샤넬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이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정박했다. 이곳의 정취를 담은 새로운 컬렉션과 샤넬 공방, 마르세유 예술계가 함께한 Le19M 전시에 주목해보길.

프로필 by 이진선 2024.05.24
생동하는 마르세유의 에너지
2005년 5월, 샤넬은 패션 하우스 중 최초로 크루즈 런웨이 쇼를 선보인다. 빈티지한 그린 컬러의 버스에 모델들과 프레스를 싣고, 콩코드 광장에서 센강을 건너 생제르맹으로 이동하며 룩을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쇼를. 이후 LA, 마이애미, 모나코, 베니스, 쿠바, 서울 등 저마다의 색을 가진 도시를 찾아 그 정취를 담은 크루즈 컬렉션을 소개해왔다. 그리고 지난 5월 2일, 2024/25 시즌의 크루즈 쇼를 선보이기 위해 지중해를 품은 세계적인 도시 마르세유(Marseille)에 정박하게 된다.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이곳은 패션은 물론 예술, 음악, 연극, 무용, 건축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눈부신 성장을 일궈왔다. “마르세유는 매우 자유분방한 도시예요. 라이프스타일, 즉 일상생활의 코드, 움직임을 유도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죠.” 버지니 비아르는 쇼를 선보일 장소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시테 라디외즈(Cite Radieuse)를 택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회주택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재건 노력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 주택에 대한 르 코르뷔지에의 유토피아적 비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이 공동주택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23가지 유형의 아파트 3백37세대와 21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과 상점, 체육관 등이 자리해 있었다. 오전과 오후, 총 2회에 걸쳐 시테 라디외즈의 루프톱과 실내 복도에서 진행된 쇼.
시테 라디외즈 내부에서 열린 오후 쇼의 피날레. 오프닝을 장식한 아니스 그린 컬러의 수트 룩.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깊은 시테 라디외즈와 완벽하게 어우러진 쇼. 크루즈 룩에 가볍게 들기 좋은 체인 백. 섬세한 플라워 코르사주 장식이 돋보인다.
라임 컬러에 가까운, 아니스(Anise) 그린 컬러의 클래식한 샤넬 수트를 시작으로, 프레스 스터드가 달린 다이빙 후드와 물고기가 그려진 시폰 소재로 완성한 스웨트셔츠, 웨트수트 형태의 미니 드레스 등이 등장했다. 마르세유의 정취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유의 건물 색과 시테 라디외즈의 격자 모티프, 기하학적 모티프는 롱드레스, 튜닉, 수트, 나아가 자수 장식의 포켓에도 적용되었으니. 한편 버지니 비아르의 상상력은 깊은 바다 속과 수면 위 모두를 아우른다. 사랑스러운 물고기, 어망, 조개껍데기를 모티프로 한 자수 장식과 프린트가 드레스부터 티셔츠, 주얼리를 넘나들며 등장했고, 수면 위 반짝이는 햇빛, 일렁이는 물결을 표현한 시퀸 장식과 패턴을 네오프렌 같은 저지, 트위드, 재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컬렉션에 스포티함과 역동성을 더해준 자수 브레이드 트리밍의 러닝 버뮤다 팬츠, 트위드 소재의 사이클링 쇼츠, 오버사이즈의 야구점퍼도 시선을 사로잡을 것. 한여름을 위한 비치 웨어도 만나볼 수 있었다. 웨트수트를 모티프로 리본과 위빙 디테일을 가미한 블랙, 화이트의 수영복은 무척이나 ‘샤넬’다웠고 해변에서 입기 좋은 화이트 드레스의 물결도 크루즈 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과 신선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시테 라디외즈의 루프톱에서 열린 오전 쇼의 피날레. 새로운 크루즈 룩이 공간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테 라디외즈의 루프톱에서 열린 오전 쇼의 피날레. 새로운 크루즈 룩이 공간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마르세유는 제 감정과 소통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마르세유의 매력, 신선한 공기를 포착해 그곳을 지배하는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그리고 런웨이 쇼의 배경으로 시테 라디외즈만 한 곳이 없었습니다. - 버지니 비아르

전시가 열린 MuCEM의 생장 요새 전경. 텍스타일을 소재로 완성한 시몬 퓰팽(Simone Pheulpin)의 작품. 생태학, 과학, 신앙, 신념을 주제로 한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폴린 게리에(Pauline Guerrier). 사진가 아리스티드 바로드(Aristide Barraud)는 르사주와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아틀리에 몽텍스와 협업해 완성한 안드레아 모레노(Andrea Moreno)의 작품. 중세 토착문화의 전통 기술인 ‘리레트 카펫’을 사용해 완성한 델핀 데네레아즈(Delphine Dénéréaz)의 작품. 19M 갤러리 마르세유가 열리는 공간은 그 자체로도 특별하다.
Le19M, 마르세유에서 꽃피우다
2024/25 크루즈 쇼 일정에 맞춰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MuCEM)의 생장 요새(Fort Saint-Jean)에는 무료로 공개되는 임시 갤러리, ‘19M 갤러리 마르세유’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Le19M의 두 번째 출장 전시로 프랑스 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잘 알려져 있듯 Le19M은 샤넬이 소유한 40여 개의 공방 중 르사주(Lesage), 몽텍스(Montex), 르마리에(Lemarie) 등 총 11개의 공방이 자리한 공간. ‘19M 갤러리 마르세유’는 공방과 마르세유 예술계 간의 대화와 표현을 위한 자리로 마르세유 출신의 예술인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단체 전시, 참여형 워크숍, 라운드테이블 토론 등을 진행한다. 쇼가 열리기 하루 전, 비를 뚫고 방문한 생장 요새. 두 개의 층에 걸쳐 예술가들이 빚어낸, 지중해 풍경을 표현한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전시의 메인 주제는 ‘재료’. 변형을 통해 수공예의 본질, 다양한 기법의 숙련도, 무형 유산을 구성하는 지식을 구현하고 있었다. 양모가 실이 되고, 흙이 도자기를 통해 형태를 갖추며, 식물로 천에 색을 입힌 뒤 이를 접고 꿰매는 과정이 바로 그것. 전시에 참여하는 예술가 중 다수가 이미 마르세유 문화계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들로 몇몇 작품은 Le19M 공방과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아울러 Le19M에 입주한 공방들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아카이브, 도구, 샘플이 진열된 캐비닛과 다큐멘터리가 한편에 자리해 있어 전시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번 전시는 샤넬 및 마르세유의 장인정신과 삶의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이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수공예가들을 지원하며, 수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작업 방식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세유에서 꽃피운 Le19M. 전시는 5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에디터/ 이진선
마르세유 태생의 태피스트리 작가 클로드 코모(Claude Como)의 작품 <Supernature>.

마르세유 태생의 태피스트리 작가 클로드 코모(Claude Como)의 작품 <Supernature>.

Credit

  • 사진/ ⓒ Chanel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