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모두의 예술 관람을 위한, 배리어프리 미술관과 공연장
공연장과 미술관이 차별과 경계가 없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소통하고 상상하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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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예술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분기점을 마련한 것은, 2023년 9월 개관한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이다. 국내 공연장은 보통 프로시니엄 극장 구조로 1.2미터 높이의 무대가 설치돼 있지만 이 극장은 다르다. 기존 무대와 객석의 높낮이 차를 제거해 전면 평면이고, 공연에 따라 무대와 객석의 형태를 다양하게 구현하는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이다. 즉 전체 공간이 무단차라서 활동 제약이 없으며, 수납식 객석을 통해 휠체어 좌석 수를 가변적으로 운용한다. 특히 일반 극장과 비교해 객석 의자의 사이즈가 크다. 좌석 간 간격의 폭도 넉넉해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편안하게 대기할 수 있다. “분장실에서 공연장 무대까지 엘리베이터로 이동 가능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예술가들도 도움 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장애인 예술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안겨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라고 모두예술극장 관계자는 귀띔한다. 장애인 샤워실과 화장실을 갖춘 분장실은 장애인 예술가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예술가들도 감탄하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한편 명동예술극장은 최근 릴랙스드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열린 객석’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폐나 발달장애인, 노약자나 어린이 등 감각 자극에 민감하거나 경직된 여건에서 공연 관람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극장 환경을 조절한 공연이다. 명동예술극장 홍보 관계자는 “열린 객석의 경우는 장애인들이 주변 관객들과 어우러져 좀 더 편안히 보실 수 있게 계획된 공연입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 친구와 같이 오거나 가족 단위가 많죠”라면서 공연을 선택하는 분위기를 설명한다. 일명 시체관극 문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반 관객들도 열린 객석에서 연극 <스카팽>(5월 6일까지 전 회차 진행)을 만끽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공공 극장과 달리 대학로 공연장들은 아직 준비가 미비한 것이 현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3 공연예술조사’에 따르면 대학로 극장 1백27개 중 장애인석을 보유한 극장의 비율은 26%(33개)에 불과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과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크리에이터가 있다. 휠체어 위의 구르는 유튜버, 구르님(본명 김지우)이다. 최근 발간한 인터뷰집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에선 휠체어 탄 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바 있다. 장애여성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언니들의 목소리는 나를 나아가게 한다”고 외친 그는 지난 3월부터 본인이 직접 방문한 대학로 뮤지컬 극장의 휠체어석 리뷰를 업로드한다. SNS X에 ‘휠체어석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이름의 계정을 개설했다. “대학로 극장에서 휠체어석을 예매하려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그 순간부터 고난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대학로 소재 공연장의 휠체어석 정보가 담겨 있으며, 향후 20개 극장의 휠체어석에 대해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술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24~26년까지 3개년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무장애 미술관, 모두의 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연내 입출력장치, 수어동작 인식기술 등을 탑재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해 장애인, 노약자 등 디지털 취약층의 전시 관람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다. 앞으로 시각장애인 및 이동약자를 위한 모바일 앱 전용 맞춤형 미술관 길찾기 서비스와 장애유형별 특화 작품감상 프로그램을 신설할 계획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세미나와 교육 프로그램과 미술관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크 세션도 마련하고 있다. 4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그램 <미술관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진행된 스크리닝 및 아티스트 토크에서는 모두에게 열린 예술이 일으키는 변화를 곁에서 관찰하고 책과 영화로 기록한 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논픽션 작가 가와우치 아리오가 전맹(빛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시각장애) 미술관람자 시라토리 겐지와 미술관을 동행하며 생겨난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에세이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와 이를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 가다>는, 시각장애인이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방법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예술을 바라보는 틀에 박힌 방식에서 벗어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재고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후 시라토리 겐지는 하지마리 미술관에서 일기처럼 평생 찍은 40만 장의 사진을 선보이는 전시 «겐지의 방»을 열었고, 스스로 기록자가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가 되어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다정하게 전한다. 예술작품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 나아가 한 명의 장애인 미술관람자가 창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무장애 미술관을 표방하는 국내 공공 미술관들에게 빛나는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음은 다큐멘터리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 가다>의 공동연출 가와우치 아리오와 미요시 다이스케와의 대화.



가와우치 아리오 시라토리 씨는 워크숍을 진행해본 경험이 많은데, 많은 분들이 작품 설명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무엇이 연상되는지 질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라토리 씨에겐 특정한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걸 봐도 동일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미요시 다이스케 시라토리 씨와 함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5분, 10분, 20분 동안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종국에는 이 그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시라토리 씨가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이 그림을 어떻게 말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2021년 하지마리 미술관에서 전시 «겐지의 방»이 열렸죠. 이 전시는 시라토리 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미요시 다이스케 그가 그간 찍은 사진이 40만 장에 달해,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1초에 한 장씩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시했는데 일주일을 봐도 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흘러가는 시간이 시라토리 씨를 보여주는 테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겐지의 방»을 기획하기 전까지 그는 미술을 감상하는 쪽에 서 있었죠. 이 기획을 기점으로 자신을 사진활동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는 쪽에서 표현하는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의미가 있었죠. 촬영이 종료된 시점에는 스스로를 사진활동가로 명명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티스트나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난 미술이 아니라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시라토리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시라토리 겐지 씨와 감독님들이 꿈꾸는 미술관은 어떤 곳일까요?
가와우치 아리오 작품을 온라인(디지털)으로 감상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죠. “난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딘가 목적지까지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보고 같이 맥주도 한잔 하고 이런 것을 총망라해서 미술 감상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죠.
미요시 다이스케 영화에서 한 동행자가 추상적인 작품을 두고 시라토리 씨에게 오징어, 꽁치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막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품을 그린 작가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그렇게 보여질 거라고 예측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미술은 자유롭게 감상하면서 봐도 괜찮은 게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시라토리 씨는 정답을 원하지 않습니다. 같이 감상하면서 옆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때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해하고 침묵으로 주저하는 시간까지 굉장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내용은 뭔가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고 그 생각을 서로 인정해주는 꽤 기분 좋은 상황이 됩니다. 따라서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가운데 사이가 돈독해지면서 미술관을 함께 다니는 그룹이 생길 정도입니다. 함께 감상한다는 것의 즐거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새로운 인연으로 연결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퍼스 바자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 친구와 관람할 때 알아두어야 할 점을 조언해준다면요?
가와우치 아리오 조용히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전시도 있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보는 것이 잘 맞는 곳도 있기에 다르지만, 공간이 넓고 다이내믹한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면 대화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곳일 겁니다. 시라토리 씨는 동행자에게 작품 옆에 써 있는 캡션을 읽지 말고 그냥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인상이나 무엇이 보이는지를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작품을 너무 알게 되면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아예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요시 다이스케 일본에서도 미술관의 공기나 분위기가 변하고 있습니다. 가와우치 아리오의 책이 나온 영향도 있습니다. 조금씩 대화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죠.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다음 작품을 보러 넘어갈 때 타이틀이나 캡션을 보고 거기서 일어나는 의외성을 즐기는 것도 감상 포인트입니다. 어떤 점을 신경 써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만, 장애인 친구를 너무 배려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려하면 그 안에서 상하관계가 생깁니다. 그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Getty Image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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