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더욱 사실적으로 등장한 이번 시즌의 플라워 룩

만물이 생동하며 움트는 봄처럼, 2024 S/S 시즌 런웨이에 등장한 플라워 룩은 생기를 머금은 한 떨기 꽃과 같았다.

프로필 by 김경후 2024.05.02
Undercover Marni Christian Cowan
“Florals? For spring? Groundbreaking.(꽃무늬? 봄에? 정말 획기적이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한 장면에서 편집장 미란다 프레슬리는 뻔한 기획안을 낸 부하 직원에게 독설을 날린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은 매 봄/여름 시즌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지 않은가.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질리는 법. 지난 몇 시즌 동안 반복된 플라워 프린트에 우리 또한 미란다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플라워 룩은 기존과는 달리 고차원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실험적인 기법을 활용해 입체적인 실루엣을 지녔거나 다양한 소재와 디테일로 쿠튀르 버금가는 예술적인 룩들이 런웨이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단연 돋보였던 브랜드는 바로 디자이너 다카하시 준이 이끄는 언더커버! 얇은 튤 소재를 레이어드한 이번 컬렉션은 불이 꺼지며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이는 쇼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세 명의 모델이 생화와 나비로 꾸며진 ‘테라리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며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그는 20여 년 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강변에서 흰 나비를 마주한 경험을 계기로 나비에 대한 애착을 갖게 돼 이번 드레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생화를 옷에 접목시킨 디자이너가 또 있었으니. ‘드레스 리허설’이라는 콘셉트 아래 영국 국립발레단의 리허설 공간을 쇼장으로 선택한 시몬 로샤다. 그녀는 시어한 튤 드레스 속에 장미 꽃송이를 잔뜩 넣었는데 이를 두고 ‘사랑의 선언’이라 칭하며 우아하면서도 로맨틱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반짝이는 소재 혹은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플라워 룩을 아티스틱하게 승화시킨 하우스들도 눈길을 끈다. 메탈 소재에 크리스털이 빼곡히 박힌 꽃 모티프 브로치를 한겹 한겹 쌓아 올린 듯 예술작품 같은 피스를 완성한 로에베부터 시퀸 소재로 만든 꽃잎을 한땀 한땀 엮어 마치 한 떨기의 꽃을 드레스로 표현한 것 같은 크리스찬 코완, 파리 패션위크에서 처음으로 컬렉션을 공개한 마르니는 수십 개의 깡통으로 만든 금속 꽃 장식을 2D처럼 보이는 평면적인 드레스 위에 장식하면서 디자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4 S/S 파리 패션위크를 열흘 앞두고 컬렉션 피스를 도난당했던 발망의 올리비아 루스테잉은 쇼가 공개된 후 “결국 나는 미니멀리스트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이를 방증하듯 레드, 그린, 블루, 핑크 등 선명한 컬러를 활용하거나, 페이턴트 소재로 완성한 장미 모티프로 아플리케 기법을 옷에 적용하는 등 조용한 럭셔리로 더욱 강해진 미니멀리즘에 반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허나 이런 입체적인 디자인은 리얼웨이에서 활용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고심에 응답하듯 화려한 장식보다는 평면적인 기법 혹은 사실적인 프린트를 활용한 하우스들의 플라워 룩도 눈길을 끈다. 얼마 전 25년 만에 발렌티노를 떠난다는 소식을 알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가 선보인 2024 S/S 컬렉션. 천 조각을 오려 조각한 새로운 공예적 기법인 알토릴리에보(Altorilievo, 고부조)를 통해 정교한 꽃 장식을 구현한 화이트 톱과 데님 팬츠에 쿨한 슬라이드를 매치하면서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는 스타일링 팁을 제시했다. 13년간 알렉산더 맥퀸의 수장으로 함께했던 사라 버튼은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가 촬영한 핏빛의 장미꽃을 흰색 드레스 위에 그대로 옮겼고, 지방시 또한 드레스 위로 꽃을 프린트해 사실감을 더했다. 옷을 만드는 방식, 즉 장인정신에 입각한 컬렉션을 공개한 프라다는 유동적인 프린지 장식으로 플라워 프린트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패션은 드레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과 길거리에도 있으며 우리의 생각과 삶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라고 한 코코 샤넬의 말처럼 다시 찾아온 봄, 우리는 또다시 향기로운 꽃내음에 빠져들고 있다. 오색찬란한 빛깔로 만개한 꽃밭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일상에 지친 우리가 다시금 웃음과 행복을 찾기 위해 생생하고 형형한 자태로 등장한 플라워 룩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Credit

  • 사진/ Imaxtree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