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직장인에 의한, 직장인을 위한, '통근 코어'를 아세요?

직장인도 코어다. 틱톡과 퇴근길 지옥철 그 사이 통근 코어에 대한 모든 것.

프로필 by 박수지 2024.04.09
2024 S/S 컬렉션의 주인공은 '미우미우'다. 그중 커다란 가죽 톱 핸드백에 물건을 가득 채운 런웨이 룩이 오디언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브래지어 스트랩·탱크톱·하이힐··· 지퍼를 닫을 수 없을 만큼 꽉 차버린 가방 속. 미우미우가 선보인 ‘보부상’ 룩은 공개 직후 SNS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노트북·운동복·도시락을 토트백에 욱여넣은 채 출근길에 오르는 전 세계 모든 직장인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젠지 세대가 열광하는 ‘코어’ 트렌드의 미우미우의 런웨이는 또 다른 ‘코어’를 제안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름하여 ‘통근 코어(Made in TikTok)’. 각종 잡동사니와 출퇴근을 위한 아이템으로 가득 찬 가방은 물론, 블레이저&후드티·와이드 팬츠에 툭 걸친 셔츠, 운동화를 신는 것 역시 통근 코어의 상징. 여기에 “오늘 옷을 차려입긴 했는데, 땀 흘리거나 음식 튀는 거 따위 신경 안 써” 쿨하고 무심한 애티튜드까지(그러나 모든 ‘코어’가 그렇듯, 이 또한 패션 판타지의 영역을 벗어나진 못했다. 흰 셔츠에 김칫국물이 튀는 건 절대 괜찮은 일이 아니니까).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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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그리고 회사.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 속 ‘출퇴근’은 과연 언제부터 ‘코어’의 탈을 쓴 트렌드로 급부상한 것일까. 그 탄생 배경에는 지난 4년간 우리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주인공 코로나19가 있다. 그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사무실 대신 침대 to 책상 출근을, 지옥철의 굴레에서 벗어난 퇴근길에 익숙해졌기 때문. 그렇게 출퇴근 OOTD의 존재감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출퇴근길에 나섰고, 디자이너들은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새로워진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옷차림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쁜 출퇴근과 장거리 통근, 업무 효율성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오피스룩’에 걸맞으면서도, 다가올 패션 트렌드가 반영되어야 하며, 단정함과 편안함까지 충족하는, 느낌 아시죠?). 단언컨대 통근 코어는 2024년, 그들이 마주한 가장 까다롭고 복잡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걸어서 통근 코어 속으로


직장인을 위한, 즉 ‘출퇴근’ 룩은 1940년대 미국 스포츠 웨어의 대중화에 기여한 클레어 맥카델부터 앤 클라인, 도나 카란, 노마 카말리와 같은 디자이너로부터 시작됐다. 도나 카란은 실용성과 스타일리시함을 겸비한 Seven Easy Pieces를, 노마 카말리는 저지, 파라슈트, 면 소재를 통해 여성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일상 속 통근 코어를 선사했다.
편리함도 잠시.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 불편한 남성식 여성복을 칭하는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이 등장하게 되는데.
Gettyimages/도나 카란 가을 컬렉션(1991), <베이비 붐> 속 다이앤 키튼, <워킹 걸>의 멜라니 그리피스와 자마스포트 1988년 봄 컬렉션.

Gettyimages/도나 카란 가을 컬렉션(1991), <베이비 붐> 속 다이앤 키튼, <워킹 걸>의 멜라니 그리피스와 자마스포트 1988년 봄 컬렉션.

허리선을 강조한 벨트 블레이저와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가 출퇴근 룩의 기본이었던 그때 그 시절. 전쟁터 같은 출근길에는 운동화를, 사무실에 도착한 뒤에는 갈아신을 구두를 들고 다니는 것이 1970·80년대 통근코어의 ‘국룰’이었다.

여성이 직장에서 입을 수 있도록 허용된 옷의 범위가 이토록 제한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남성복을 기준으로 복장 규제를 지정하는 것이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라는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다소 1차원적이었던 그들의 논리는 가부장제의 억압을 완화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웃픈 비하인드까지.
한편, 영화 <워킹 걸(1990)>과 <베이비 붐(1987)>은 과거 여성 직장인들의 출퇴근·오피스룩·통근코어의 존재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베이비 붐> 속 경영 컨설턴트로 등장한 J.C.와트가 클래식한 무드의 스커트 정장과 블라우스를 입은 반면, <워킹 걸>의 테스 맥길을 연기한 멜라니 그리피스는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하거나 오프숄더로 스타일링 포인트를 더했다.


Since 1940 to 2024, 통근 코어를 향한 러브콜은 계속된다.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2024년 봄. 라울 로페즈, 제인 웨이드, 레이첼 코메이를 비롯한 뉴욕 디자이너들이 현대 여성의 출퇴근룩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때론 친근하고 편안하게, 때론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며 통근 코어 열풍에 합류한 그들.

이리저리 풀어헤친 셔츠와 미니 원피스의 조합으로 완성된 제인 웨이드의 'The Commute(출퇴근)' 컬렉션. 제인 웨이드는 “이 컨셉은 패션 업계에서 일했던 개인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라며 “기업 문화에 스스로를 맞추려다 보니 제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많았죠”라고 덧붙였다.
좀 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제 디자인 접근 방식은 다각화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에요. 변화를 위해 여성이 직접 뛰어들고,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해결하는 거죠,” 다니엘라 칼 마이어가 말했다. “출퇴근 시간 동안 옷 한 벌로 어떻게 여성의 품위를 높이고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을지, 저녁 식사를 할 때면 노트북과 운동복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이 어떻게 하면 세련되고 우아하게 보일지 상상해요.”
Gettyimages/제인 웨이드, 마크공, 칼 마이어의 24 스프링 컬렉션.

Gettyimages/제인 웨이드, 마크공, 칼 마이어의 24 스프링 컬렉션.


커다란 가방과 오버사이즈 코트로 통근 코어 수트 스타일링을 완성한 보테가 베테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레이지가 강조한 “일상의 극대화”. 그는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아우터, 디테일이 돋보이는 드레이프 톱과 드레스를 통해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방식을 보여줬다. 가방을 챙길 시간조차 없는 직장인을 위해 코트 안에 숄더백을 붙박이처럼 넣어버린 조나단 앤더슨까지.

Gettyimages/(왼쪽부터 시계 방향) 통근 코어를 선보이는 그레타 리, 아요 에데비리, 모델 최소라와 카이아 거버.

Gettyimages/(왼쪽부터 시계 방향) 통근 코어를 선보이는 그레타 리, 아요 에데비리, 모델 최소라와 카이아 거버.

청바지와 폴로 스웨터, 구겨진 빈티지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서둘러 사무실로 향하는 젊은 여성들로 가득한 뉴욕. 살로몬 스니커즈와 터질 것 같은 토트백을 둘러멘 이들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포착한 미우미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꾸안꾸, 혹은 꾸꾸를 실현하기 위한 직장인의 작은 욕구에서 비롯된 통근 코어는 어느새 손꼽히는 패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It’s not polished, but it’s cool'.

직장인과 디자이너 모두에게 끝나지 않을 고민을 안겨준 통근 코어 열풍은 다가올 가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몇 마디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이 ‘세련된 아름다움’을 위해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옷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결국 통근 코어는 출근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사무실에 도착해 업무를 수행하고, 길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든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위 기사는 바자 US 기사를 신디케이션하여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harpersbazaar.com/fashion/a60297833/commutercore-trend-runway-tiktok/

Credit

  • Image/Gettyimages
  • Text by/Brooke Bo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