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켄달 제너•카일리 제너가 취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준 한 사람은 누구?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꼭 필요한 이유

프로필 by 윤혜연 2024.04.04
줄리아 폭스와 스타일리스트 브리아나 안달로르. 제니퍼 로렌스 changed by 제이미 미즈라히. 헤일리 비버 changed by 다니 미셸. 켄들 제너 changed by 다니 미셸. 트로이 시반 changed by 멜 오텐버그. 엠마 코린 changed by 해리 램버트. 샘 스미스 changed by 벤 리어든. 젠데이아 콜먼과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
 로타 볼코바가 스타일링한 블루마린 2023 S/S 캠페인.

로타 볼코바가 스타일링한 블루마린 2023 S/S 캠페인.

지난가을, 켄들 제너가 힙한 이미지였던 이전과 사뭇 달라진 스타일로 등장하며 또 하나의 트렌드 공을 쏘아올렸다. 바로 ‘콰이어트 럭셔리’, 일명 ‘올드머니’ 패션이다. 당초 다수 매체는 이것이 실제 유행인지 소수의 전유물인지 ‘긴가민가’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이후 켄들 제너와 헤일리 비버, 카일리 제너가 비슷한 차림으로 등장하자 비로소 트렌드라고 단언했다. 패션계에 이토록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동일한 취향을 반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스타일리스트 다니 미셸(Dani Michelle)이었다.

 맥케나가 스타일링한 발렌티노 가라바니 2023 F/W 캠페인과 샤넬 2017 ‘루쥬 코코 글로스’ 캠페인.

맥케나가 스타일링한 발렌티노 가라바니 2023 F/W 캠페인과 샤넬 2017 ‘루쥬 코코 글로스’ 캠페인.

오늘날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더욱 빨라진 트렌드 흐름을 통찰해야 하며, 의상뿐 아니라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까지 포함해 더 넓어진 의미의 패션을 다뤄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서 클라이언트의 창의적 선택을 독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타일 변신으로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셀럽은 한둘이 아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최근 따라 입고 싶은 연예인으로 급부상했는데, 그녀가 갑작스레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노 하드 필링스>의 홍보 투어를 기점으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 제이미 미즈라히(Jamie Mizrahi)를 고용했기 때문. 미즈라히의 시그너처이기도 한 미니멀 스타일링엔 절제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으며, 이는 이제까지 패션으로 주목받은 적 없던 로렌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안겨줬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녀의 사복 패션 또한 일취월장했고. 샘 스미스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예고조차 없던 어느 날, 이전과 정반대로 달라진 음악 색깔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한 패션과 함께 등장한 그. 음악과 패션, 모두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던 스미스에게 스타일리스트 벤 리어든(Ben Reardon)이 함께했다. 스미스가 지난해 2월 SNS를 통해 “당신의 재능과 비전은 내 인생에서 전례가 없었다. 당신은 내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예술과 창의성을 제안해줬다. 내가 용감하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며 리어든에게 공개적인 인사를 남겼을 정도. 줄리아 폭스가 약 한 달간 칸예 웨스트를 만난 후 대담하게 이미지를 탈바꿈한 데에도 스타일리스트 브리아나 안달로르(Briana Andalore)의 역할이 크다. 중요 부위를 겨우 가리는 얇은 스트랩 톱과 콘돔을 장식한 백, 부츠 등 파격적인 아이템을 공수한 것. (사실 이들은 10대부터 친구 사이였으나 안달로르가 이토록 획기적으로 스타일링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줄리아가 유명세를 얻으면서부터라는 사실은 우연찮게 보인다.) 이외에도 해리 스타일스의 상징적 젠더리스 아이템이었던 진주 목걸이와 보아 목도리는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Harry Lambert)의 손길이 닿은 결과물이었으며, 트로이 시반은 특정 인물과 고정적으로 협업하진 않지만 지난 2021년 스타일리스트 멜 오텐버그(Mel Ottenberg)를 만나 기존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메트 갈라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데이비드 보위와 그의 무대의상을 담당한 스타일리스트이자 디자이너 야마모토 간사이.

데이비드 보위와 그의 무대의상을 담당한 스타일리스트이자 디자이너 야마모토 간사이.

한 인물의 이미지 메이킹에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사전적 의미로 ‘멋을 중시하는 사람’. 이전에 자주 언급되던 ‘패션 코디네이터’와 엄연히 다르다. 노호경의 논문 <패션 스타일리스트 분야와 역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패션 코디네이터는 기존 패션 제품을 재배치하는 조정자로 비교적 단순한 직무인 데 비해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패션 감각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분석하며 독창적인 콘셉트를 반영해 새 스타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렇다면 이 직업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패션 스타일링 업무가 전문적으로 행해진 건 1980년대 패션 잡지 제작 시스템이 변화하면서다. 당시 영국에서 새로운 출판물 장르로 ‘스타일 프레스’가 등장했고, 이렇게 스타일을 둘러싼 담론과 ‘스타일’이라는 용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언론·광고업계에서 스타일리스트가 하나의 역할이자 직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 잡지 부흥과 동시에 업무량이 많아진 패션 에디터들에게 외주 인력 고용이 필수불가결해졌는데, 당대 영국 신자유주의 보수 정부의 영향으로 프리랜서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형성된 분위기도 스타일리스트의 전문 직업화에 한몫하게 된다.

 맥케나가 스타일링한 발렌티노 가라바니 2023 F/W 캠페인과 샤넬 2017 ‘루쥬 코코 글로스’ 캠페인.

맥케나가 스타일링한 발렌티노 가라바니 2023 F/W 캠페인과 샤넬 2017 ‘루쥬 코코 글로스’ 캠페인.

이전에도 전설적인 스타일링 족적은 여럿 남아 있다. 1960년대 잡지 <노바>에서 경력을 시작해 향후 30년간 혁신적인 작업물을 만들어낸 캐롤라인 베이커(Caroline Baker)가 그 주인공. 그녀는 패션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로서 영국 패션 미디어 역사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데, 당시 다른 잡지가 주도하던 부르주아적 여성상 표현에 반기를 들며 군 보급품, 빈티지 작업복 등으로 커스터마이징한 여성복을 선보이며 진취적 여성상을 제안해서다.(심지어 패션계의 지속가능성이 전혀 화두가 아닐 때부터!) 일각에선 처음으로 스포츠웨어를 하이패션 아이템에 믹스 매치한 인물로 베이커를 꼽기도 한다. 그녀 덕에 독자들은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했다. 어떠한 공식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옷을 입는 창의적 영감을 준 것. 이후 주목받은 스타일리스트로는 소년들을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레이 페트리(Ray Petri)가 있다. 사진작가, 음악가, 시인, 모델 등 예술가로 구성한 영국 문화 집단 ‘버펄로 컬렉티브(Buffalo Collective)’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서브컬처를 아우르며 기존 스타일과 상징을 배제하거나 혼합해 당시 새로운 남성성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럭셔리 메종 아이템과 실용적인 작업복을 믹스 매치하거나 스포츠 의류에 주얼리와 오브제를 마구 장식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현대 남성상을 어떻게 구현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쉽게 말해, 당시 남자들의 세계에서 주먹다짐이 없어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패션으로 표현했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게이는 연약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작업물도 선보이며 페트리는 1980년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남성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근육질 남성이 어깨에 영국 국기를 둘러멘 채 치마를 입고 있는 매거진 <더 페이스> 커버가 그의 대표작이다.

레이 페트리의 버펄로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디올 맨 2024 봄 컬렉션.

레이 페트리의 버펄로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디올 맨 2024 봄 컬렉션.

오늘날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더욱 빨라진 트렌드 흐름을 통찰해야 하며, 의상뿐 아니라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까지 포함해 더 넓어진 의미의 패션을 다뤄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서 클라이언트의 창의적 선택을 독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가 기억하는 근사한 패션 이미지와 런웨이 스타일링을 완성해온 조 맥케나(Joe McKenna), 뎀나 바잘리아의 베트멍과 발렌시아가 컬렉션의 핵심 멤버로 일하며 명성을 떨친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 등은 여전히 패션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셀러브리티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마찬가지다. 영화 <바비> 속 마고 로비 패션을 연출한 앤드루 무카멜(Andrew Mukamal), 두아 리파의 데일리 룩부터 무대의상까지 8년째 책임지고 있는 로렌조 포소코(Lorenzo Posocco), 아리아나 그란데의 시그너처인 포니테일 헤어와 사이하이 부츠 룩을 제안한 로 로치(Law Roach), 레이디 가가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니콜라 포미체티(Nicola Formichetti), 여배우 레드 카펫 룩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정윤기, 블랙핑크가 시대적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박민희까지.
셀러브리티가 밤하늘 별처럼 눈부시게 빛나도록 하기 위해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단순히 옷을 조합하는 것을 넘어 사회·문화적 메시지를 포괄하는 시대정신을 제안한다. 누군가는 자본주의가 만연한 패션에 어떻게 예술을 담겠느냐 비난할 수 있겠지만, 미적 경제를 다룬 엔트위슬(Entwhistle)의 논문 한 구절을 남긴다. “모든 시장은 문화적이며 공유된 가치와 의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주목하자. 스타일리스트가 패션계, 아니 문화계를 움직이고 있다.

Credit

  • 사진/ Getty Images, @danixmichelle, © Blumarine, Chanel, Dior Men,Valentino Garavani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