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단언코 이번 시즌 가장 스포트라이트 받은 쇼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라는 세계

프로필 by 윤혜연 2024.02.20
최근 메종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2024 S/S 아티즈널 컬렉션이 “역사에 남을 쇼”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프런트 로에 앉은 카일리 제너, 벨라 손 등 셀러브리티마저 한 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며 기다리게 한 쇼였다. 빡빡한 컬렉션 일정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피날레가 끝난 뒤 감명받은 관람객(단순한 런웨이가 아니라 한 편의 연극 같았으니 이렇게 표현하겠다)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발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등장해달라는 무언의 메시지.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쇼의 여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올해 처음으로 파리 밤하늘에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그날의 쇼를 회상해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 갑작스레 조명이 꺼졌다. 외팔 아티스트 뤽 브루예르(Luc Bruyere)가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Now I don’t need your love.” 그는 왜 더 이상 사랑이 필요 없다며, 선글라스로 두 눈빛을 숨긴 채 그토록 고독하게 울부짖은 것일까. 이어 쇼장 벽면 사방에 티저 필름이 상영됐다. 마치 버려진 인형처럼, 여기저기 상처 난 채 피를 흘리며 고통받거나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해 방치된 이들의 모습. 외로움일지 고통일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던 영상 속 모델 레옹 데임은 그렇게 실체로 등장했다. 꽉 끼는 코르셋을 입은 채. 쇼 노트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우리 함께 오프라인으로 산책을 나가보면 어떨까?”
그의 오프닝 워킹에 맞춰 스피커에선 아델의 ‘Fastlove’가 흘러, 아니 터져 나왔다. “I miss my baby.” 이 도시에서 갈리아노는 무얼 그렇게 그리워하고 탐미했을지. 이번 컬렉션이 풍요로웠던 벨에포크 시대가 끝나갈 무렵 활동했던 사진가 브라사이(Brassai)의 작품에서 영감받았다는 점이 힌트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컬러 팔레트에 주목했는데, 어둠 속에 일렁이는 센강의 그림자나 차가운 물웅덩이에 달빛이 비춘 파리 거리 등이 그 예다. 갈리아노는 차가운 달빛에 희미해지거나 어두운 그늘에서 깊어지는 블랙과 그레이, 다크 그린, 베이지 등을 “전형적인 남성복의 색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드레스와 수트의 라벤더, 라일락 등의 컬러는 ‘여성스러운 색감’으로서 속옷의 파우더톤 페일 핑크와의 대비를 의도했다고도.
여타 젠더리스 트렌드에 반해, 이 같은 컬러 팔레트의 옷을 입은 모델들은 성별을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갈리아노는 쇼 노트에 “옷을 입는 의식이 곧 자아를 구성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개인은 신체를 캔버스 삼아 내면에 도사린 감정을 외부로 표출한다는 맥락으로, 개인을 형성하는 습관과 사건, 몸짓이 그가 입는 옷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는 주장이다. 이번 런웨이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후드를 뒤집어쓴 형상부터 얼굴을 가리기 위해 옷깃을 세우고, 물웅덩이에 젖지 않도록 바지를 걷어 올린 모습 또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메종 아틀리에는 장장 12개월에 걸쳐 이 컬렉션을 완성했다. 몇몇 기법을 소개하자면, 다양한 소재의 조각을 이어 붙여 옷 전체를 만드는 ‘심레이스(Seamlace)’는 솔기 하나 없이 매끄러운 형태가 특징이다. ‘리버스 스와칭(Reverse Swatching)’은 부적절한 것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는 메종의 철학 아래 갈리아노가 종종 활용하는 기법으로, 옷을 제작할 때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원단 대신 색다른 소재를 시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발포고무 소재를 오트 쿠튀르 의상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트위드, 헤링본, 거친 울 소재 등 클래식한 남성복에 쓰이는 소재의 질감을 프린트한 원단 아래 얇고 가벼운 옷감을 여러 장 겹치는 ‘밀트라주(Milletrage)’, 옷감을 물에 젖은 것처럼 보이도록 드레이핑하는 ‘아쿠아렐링(Aquarelling)’, 우산·모자·코트·재킷에 실리콘을 입히거나 크리스털을 손수 달아 비를 맞거나 물웅덩이에 빠져 젖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구투아 코팅(Gouttoir-coating)’ 등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옷 입는 의식’의 화룡점정에는 연극처럼 워킹한 모델들이 있었다.
쇼는 절정을 향했다. 아델의 ‘Hometown Glory’가 울려 퍼졌고, 한 소절이 내게 꽂혔다. “난 길을 잃은 게 아니에요, 단지 떠도는 중일 뿐이에요.” 그렇게 깨달았다. 이번 아티즈널 컬렉션은 모습을 숨긴 갈리아노의 ‘벨에포크’를 향한 갈망이라는 것. 추위에 떠는 것일지 술에 취한 것일지, 비틀비틀 걷는 모델에게 부여한 갈리아노의 메시지. 그의 세계는 얼굴을 감췄다 한들 런웨이 위에서 계속 몸짓하고 있었다. 코르셋과 같은 압박을 느끼든, 물웅덩이에 빠져 지쳤든, 어두운 그늘 속에서 화사한 핑크를 꿈꾸기도 하고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지켜내며 말이다. 아델의 노래가 끝났다. 런웨이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Credit

  • 사진/ ⓒ Maison Margiela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